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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한시각의 ‘포대도(布袋圖)’

기자명 김영욱

중생 번뇌·고통 담긴 무소유의 포대

▲ 한시각 作 ‘포대도(布袋圖)’, 17세기 중반, 종이에 먹, 106.0×29.2㎝, 일본 경도고려미술관(출처: ‘大系 朝鮮通信使 第三卷’, 1995년).
摠收諸不足(총수제부족)
不足還爲足(부족환위족)
求足世間人(구족세간인)
不知不足足(부지부족족)

‘여러 가지 부족함을 모두 거둬들이면 부족함이 도리어 족하게 되는 것이라네. 만족만 추구하는 세상 사람들아 부족함이 만족함인 줄 알지 못하는구나.’ 해원(海源, 1691~1770)의 ‘만족함을 알다(知足)’.

포대에 중생 번뇌·고통 담고
웃음과 희망 주는 포대화상
행복에 잠긴 담백한 미소엔
욕심없는 고승 성정 엿보여

고담(枯淡)하다. 그림은 물론 화면 속 인물이 그러하다. 묽은 먹을 적당히 머금은 붓의 흔적에서 어떠한 기교도 찾을 수 없다. 속되지 않고 아취(雅趣)가 가득하다. 이내 그려진 승려의 형상은 고담한 필치의 정수를 보여준다.

지그시 두 눈 감은 화상이 포대 위로 두 손을 얹었다. 행복한 생각에 잠겨 달콤한 낮잠을 청한 듯 담박한 미소가 입가에 걸린다. 담담하고 담백한 미소 너머로 속세에 집착하지 않고 욕심 없는 그의 성정이 엿보인다. 포대에는 무엇이 담겨있는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화상의 몸을 반이나 가릴 만큼 큼지막하기만 하다.

도화서 화원인 한시각(韓時覺, 1621~?)이 그린 ‘포대도’의 주인공은 포대화상(布袋和尙)이다. 그는 당나라 때 명주 봉화현 사람으로 본래 이름은 계차(契此)이다. 늘 웃고 있는 얼굴로 풍선처럼 늘어진 배를 하고 돌아다녔다. 긴 지팡이에 둘러멘 큰 자루 안에 사람들에게 동냥한 것들을 넣고 다녔기 때문에 ‘포대화상’이라 불렸다. 자신이 동냥한 물건과 음식은 가난한 이들을 구제하는 데 사용했다. 그에게 도움받은 사람들은 가난을 면하고 병고가 사라졌다고 전한다. 당시 전란에 지쳐있던 사람들은 그가 미륵보살 혹은 미륵불의 화신이라고 여겼다.

어느 날, 한 사람이 포대화상에게 “과연 선(禪)의 진수는 무엇입니까?”라고 물었다. 이 말을 들은 포대화상은 자신의 지팡이에 멘 포대를 내려놓으며 “이것이 선의 진수이다”고 대답했다. 그 뜻을 헤아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다시 말하기를, “내가 짐을 내려놓은 것처럼 그대도 자신의 짐을 내려놓아라”고 했다. 그 후에 어떻게 해야 하는지 물으니, 포대화상은 곧 포대를 다시 짊어지고 다음처럼 말했다.

“이것이 다음으로 행하는 일이다. 나는 짐을 짊어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이 짐이 나의 짐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이제 나에게 이 세상의 모든 짐은 단지 어린아이들을 위한 장난감이 되어 버렸다.”

‘본래무일물(本來無一物)’이다. 누구나 아무것도 없이 이 세상에 와서, 다시 아무것도 없이 떠날 뿐이다. 하지만 누구나 이 세상에 오면 어떤 것에 집착하고 더 많이 소유하고자 한다. 만족은 일순간이다. 만족할수록 오히려 마음은 무겁다. 무거운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서는 스스로 부족해져야 한다. 부족할수록 마음은 홀가분하다. 부족함을 만족하게 되면 스스로 넉넉하고 평안해진다.

포대화상은 포대에 중생의 번뇌와 고통의 짐을 담는다. 그리고 포대를 열어 중생에게 웃음과 희망을 준다. 그가 포대를 메고 행복한 까닭이다. 조그만 무언가가 나를 속박하고 있다면 그저 내려놓으면 된다. 아무것도 갖지 않았을 때야말로 내가 만족하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될 따름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37호 / 2018년 4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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