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6. 범일의 ‘모난 돌’
76. 범일의 ‘모난 돌’
  • 김형중
  • 승인 2018.04.24 11:0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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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행없이 깨달음도 성자도 없는 법
중생 부처되는 구도자 수행론 시화

모난 돌이 바다로 가려면
모난 곳이 다 닳아서
둥글어져야 한답니다.
누군가의 흉허물이 보이십니까?
아직 바다는 멀었습니다.

시단에 등단하지 않았음에도
수행면모·선적품격 나타낸 시
모난 돌은 투철한 수행정진 끝
내면서 흘러나온 깨달음 소리


범일(1957~현재) 스님의 ‘모난 돌’은 2017년 12월 부산 지하철에 게시된 ‘풍경소리’에 실린 시이다. 짧고 간결하지만 선시처럼 깊은 여운을 주는 시이다. 시단에 등단하지 않은 스님의 시지만 구도자로서 수행의 면모와 선적인 품격을 나타내고 있어 좋은 불교시로 선택하였다. 범일 스님의 ‘모난 돌’은 우연히 걷다가 길가에서 주운 보석이다.

범일 스님은 부산 운수사 주지스님으로 ‘조아질라고’ ‘통과통과’ 2권의 에세이집을 낸 작가로, 일상에서 깨달은 부처의 지혜를 여유와 유머있는 문체로 대중으로부터 인기를 얻고 있다. 누구나 시를 쓸 수 있고 소설을 쓸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시인이고 소설가이다. 우리 어머니들은 당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글로 쓰면 소설이 몇 권 된다고 한다. 그러나 전문적인 시인이나 소설가가 되려면 공식적인 등단 절차와 과정을 밟아야 인정을 받는다.

‘모난 돌’의 시는 수행을 통해 중생이 부처가 되는 구도자의 수행론을 시화한 것이다. 일반인들도 인격자가 되기 위해서는 상당 기간 수행이 필요함을 강조하고 있다. 수행 없이는 깨달음도 없고 성자도 없다.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아는 생이지지(生而知之) 하는 천재가 있다고 하지만 말(명칭)이 그렇지, 어떻게 배우지 않고 수행하지 않고 다른 사람의 지자(知者)가 되고 스승이 될 수 있겠는가? 석가모니 부처님도 천상천하에 제일가는 천재였지만 6년 고행 끝에 성불하지 않았는가?

비록 중생이 부처의 지혜와 복덕을 모두 구족했다고 하지만 어린 새가 수없이 날개 짓을 해야 날아갈 수 있듯이 성태(聖胎)를 끊임없이 잘 양육시켜야 성인이 될 수 있다. 태어나자마자 세상의 이치를 어떻게 다 알 수 있으며, 새로운 정보와 기술을 이해할 수 있겠는가?

젊은 사람은 괄시하면 안 된다는 말이 있다. 그만큼 변화될 수 있는 시간이 많다는 뜻이다. 괄목상대(刮目相對)란 사자성어가 있다. 매일 사람을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달라진 모습을 관찰하라는 뜻이다. 처음부터 성자는 없다. 부처도 예수도 공자도 처음에는 기존 사상과 종교교단으로부터 배척을 받은 이단이었다.

처음부터 큰스님이 된 분도 없다. 수많은 역경과 고행을 극복하면서 갈고 닦은 수행력으로 중생을 교화했기 때문에 고승의 이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누구나 흉허물이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채우려고 노력하는 사람, 고질적인 자신의 허물을 수행으로 극복하는 수행자는 언젠가는 청정한 마하보살의 완성체가 된다.

시인은 “누군가의 흉허물이 보이십니까? 아직 바다는 멀었습니다” 하고 읊고 있다. 모든 중생은 수행 중이다. 그러나 본래 부처였기 때문에 언젠가 깨달음의 눈을 뜨게 될 것이다. 그때까지 기다려 주어야 한다.

바다에 이르면 모난 돌이 모두가 둥글둥글해진다. 세월이 사람을 만든다는 말이 있다. 나이가 들어 늙으면 천하에 망나니도 유순해진다. 나이가 선생이고 양반이라는 말이 있다. 수행자는 나이가 많으면 많을수록 값이 나간다. 많은 시간 도를 닦았다는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문둥이처럼 발톱도 빠지고 눈썹도 빠져서 원만 보살님이 된다.

범일 스님의 ‘모난 돌’은 투철한 수행 끝에 목구멍 속에서 흘러나온 깨달음의 소리이다. 세공하지 않은 원석의 투박한 선시이다. 문자반야(文字般若)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37호 / 2018년 4월 25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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