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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경의 차별적 언어

서울시가 장애인의 날을 나흘 앞둔 4월16일 무심코 쓰는 차별적 행정용어를 고치겠다고 밝혔다. 언어가 사람들의 의식에 큰 영향을 미치는 만큼 적절치 못한 용어를 없애기 위한 조처라고 한다. 국어바르게쓰기위원회 심의를 거쳐 이번에 수정된 차별적 용어는 모두 8개로 △미망인 △학부형 △편부·편모 △불우이웃 △결손가정 △정상인 △장애우 △조선족이다.

법화경 등 한글 불경에
장애인 차별 용어 난무
불교 평등사상과 위배

남편이 세상을 떠날 때 같이 죽었어야 하는데 아직 살아있다는 ‘미망인(未亡人)’은 ‘고(故) ○○○씨의 부인’으로 순화했다. 양성평등에 어긋나는 ‘학부형(學父兄)’은 ‘학부모(學父母)’, 어머니나 아버지가 죽거나 이혼한 가정에 쓰던 ‘편부·편모’는 ‘한부모’, 동정의 시선이 담긴 ‘불우이웃’은 ‘어려운 이웃’, 불완전한 의미의 ‘결손가정’은 ‘한부모가족’이나 ‘조손가족’, 장애인과 대비되던 의미로 쓰던 ‘정상인’은 ‘비장애인’, 장애인을 의존적인 존재로 비치게 할 수 있는 ‘장애우’는 ‘장애인’, 중국에 사는 우리 겨레인 ‘조선족’은 ‘조선동포’로 각각 수정했다.

언어 사용은 그 사회의 성숙도와 인권수준을 반영한다. 전통사회에서 차별은 일상적이었다. 특히 장애인은 봉사, 소경, 고자, 장님, 벙어리, 귀머거리, 미치광이, 앉은뱅이, 꼽추 등 비하와 차별이 담긴 용어들로 불렸다. 우리나라에서 이런 풍토가 바뀌기 시작한 것은 1981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제정되면서부터다. 맹인이나 농아 대신 시각장애인, 청각장애인을 사용하도록 했고, 1989년 심신장애자복지법이 장애인복지법으로 바뀌면서 심신장애자가 장애인으로 개정되는 등 크게 변화했다. 장애인복지법의 제·개정은 더디지만 우리 사회를 변화시켰다. 차별적인 용어들도 서서히 줄고 있는 추세다.

하지만 세상의 변화와 무관한 곳이 있다. 바로 종교계다. 타인의 고통을 감싸줘야 할 종교계가 되레 상처를 주거나 편견을 고집하는 일들이 적지 않다. 이는 불교계도 마찬가지다. ‘법화경’을 비롯한 한글불경 곳곳에 ‘벙어리’ ‘말더듬이’ ‘귀머거리’ ‘불구자’ ‘미치광이’ ‘꼽추’ ‘문둥이’ 등 용어들이 수두룩하다. 불경을 번역할 때 차별적인 요소가 있으면 의역이나 역주를 통해 진의를 드러내지는 못하더라도 시대에 뒤떨어진 용어를 사용해 누군가에게 상처와 거부감을 주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금강경’에는 ‘불법은 평등해서 높고 낮음이 없다(是法平等 無有高下)’고 했다. 부처님 제자 중에도 시각장애인 아나율을 비롯해 지적장애인 주리반특, 척추장애인 웃다라 등이 등장한다. 불경은 이들 장애인이 최고의 수행 경지에 올랐거나 큰 공덕을 쌓았음을 보여준다.

사실 불교에서는 범부중생 모두가 장애인이다. 부처님처럼 육신통을 갖추지 못한 불완전한 존재이며, 위없는 진리를 깨치지 못했기에 정신적으로 숱한 애착과 번민을 안고 살아간다. 부처님이 이 땅에 오신 것은 잘났든 못났든, 장애가 있든 없든, 전생에 무슨 일이 있었든 없었든 그 누구라도 행복할 수 있음을 일러주기 위해서였다.

시대의 눈높이에 맞춘 언어라야 동시대인에게 감동을 주고 시대를 이끌 수 있다. 불경 번역인의 역할이 더욱 막중한 때다.

이재형 mitra@beopbo.com

[1438호 / 2018년 5월 2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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