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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화통일과 점수(漸修)

북한과 북한의 지도자들을 요괴나 악마로 보던 시각이 이제는 좀 많이 누그러진 것 같다. 아니 누그러진 정도를 넘어서 너무 급격하게 경계 심리마저 무너지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여러 번 북한을 제대로 보아야 한다고 강조하고, 북한과 함께 통일을 이루는 주체가 되어야 함을 말하면서, “요괴와 보살의 뿌리가 같은 것”이라는 서유기의 이야기를 인용하기까지 한 필자로서는 너무 짧은 사이에 변한 상황이 어리둥절하기까지 하다. 그 이야기를 할 때만 하더라도 굉장히 강한 비판을 각오하고, 좌익 빨갱이라 비난하는 돌팔매를 각오했던 것을 생각하면 참으로 세상 인심이 이렇게 바뀔 수도 있나 싶을 정도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당혹스럽고 어리둥절한 느낌을 넘어, 참으로 넘치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하여 환호를 지르고 싶은 나날이다. 우리 민족이 남북관계를 보는 시각에서 ‘돈오(頓悟)’를 이룩한 것 같다고 말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혹자는 성급한 축배에 경계를 보내기도 하고, 또 필자도 그러한 경계에 공감을 하지만 이번 급진적인 남북관계의 변화에는 한때의 소란스런 사건으로 넘어가지 않을, 정말로 커다란 발전의 계기가 숨어 있다.

이전에도 남북관계에는 커다란 발전의 징검돌들이 있었고 그것들이 이번의 성과로 이어졌겠지만, 분명히 다른 실제적인 비약이 있다는 말이다. 이전의 중요한 성과 가운데서도 가장 중요하며 평화 통일의 원칙과 여정을 제시한 것은 6·15 남북 공동선언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성과는 그 뒤의 정권들에 의해 그 의미가 축소되고 왜곡되어 제대로 계승되지 못한 부끄러운 역사의 장으로 남아 있게 되었다. 자주적 통일 원칙을 확실하게 천명하고, 상대방의 체제를 인정하는 통일의 방안, 남북 교류의 활성화 방안 등에 합의를 이룩하였음에도 현실에서 절실히 요구되는 가장 중요한 것들이 부족하였던 것도 그 한계였다. 그리고 그러한 가운데도 가장 아쉬웠던 점들은 실제적으로 전쟁 상황을 종식시키는 군사적 대립을 어떻게 극복하느냐에 대한 방안이 제시되지 못하였던 점이었다. 이는 단지 남북한 정상의 합의만으로는 넘어설 수 없는 국제적 힘의 관계가 그 이상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참으로 그러한 한계를 극복하는 중요한 일들이 이번에 이루어진 것이다. 남북한의 만남에 그치지 않고 전 세계인의 관심을 모아내면서, 미국 중국 등 남북한 문제에 결정적인 열쇠를 쥐고 있는 주요 국가들이 함께 나아가게끔 하는 커다란 평화의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정전에서 종전으로 더 나아가 평화조약에까지 이르는 가장 중요한 가시적 장치들을 만들어 낼 흐름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이 땅에 전쟁 상황이 사라지고 평화를 정착시키는 확고한 걸음을 내디딘 것이라 할 수 있으니 그 기쁨을 어디 비길 수 있겠는가? 혹시라도 이러한 기쁨에 동티가 나는 나쁜 일이 생길까 조심조심 걱정하는 마음이 드는 것은 필자 하나 뿐이 아닐 것이다.

좋은 상황에서는 “잃을까 걱정하여 무리지어 난 뽕나무 뿌리에 붙들어 매듯 한다”고 하였다. 걱정이 드는 것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참으로 걱정하는 조심스런 마음으로 이 큰 흐름을 완성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앞에 ‘돈오’를 말했지만, 보조 스님이 말했듯이 봄날 햇볕이 쬔다 하며 한 겨우내 얼었던 얼음이 한 번에 녹아내리지는 않는다.

그 동안 얼마나 긴 세월 동안 불신과 증오의 탑을 쌓아 왔던가? 그런 불신과 증오를 부추긴 세력이 있고, 자기도 모르게 세뇌된 수많은 의식들이 있지 않은가? 평화의 명분에는 동조할 수밖에 없지만, 실제적으로는 우리 한반도의 평화통일을 바라지 않을 수도 있는 주변국들의 견제 또한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러하기에 참으로 조심스럽게 평화 통일을 향한 우리의 뜻을 더욱 굳게 하면서, 지나친 기대나 성급함으로 오히려 그 큰 흐름을 흩뜨리는 일이 없도록 하는 ‘점수(漸修)’의 자세를 가져야 할 것이다.

성태용 건국대 명예교수 tysung@hanmail.net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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