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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7. 김형영의 ‘나’

기자명 김형중

게송처럼 짧은 시구로 울림 준 시

나 같은 것
나 같은 것
밤새 원망을 해도
나를 아는 사람 나밖에 없다

자기를 인식한 존재는 인간뿐
나 자신 아는 사람 역시 자신
부처를 먼 곳에서 찾는 행위는
모래알로 밥을 짓는 어리석음

나는 누구인가? 알쏭달쏭 나를 알기가 쉽지 않다. 나를 알면 부처이다. 부처님은 ‘아함경’에서 “나는 오온의 화합체이다. 오온(五蘊)은 색수상행식을 말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오온은 실체가 없고 자신을 구성하는 고유한 성질인 자성(自性)이 없이 여러 가지 요소들이 인연 따라 화합하여 잠시 나의 모습(형상)을 이루고 있을 뿐이다. 인연이 끝나면 나는 형체가 없이 자연으로 되돌아 가버린다. 그래서 나의 실체는 없다고 하여 무아(無我)라고 하고, 오온가합(五蘊假合)이라고 한다. ‘반야심경’에서는 “오온이 모두 공하다(五蘊皆空)”고 하였다.

천 길 물길 속은 알 수 있어도 사람의 마음속은 알 수 없다고 한다. 형상이 없는 남의 마음속 생각을 알 수 없는 것은 당연하다.

한용운의 ‘님의 침묵’에서처럼 마음은 ‘알 수 없어요’ 이다. 그렇다. 본래가 없는 마음을 무엇이라고 말해 보았자 그것은 그 사람의 생각일 뿐이다. 실재 하지 않는 신을 무엇이라고 말해 보았자 역시 자신의 생각을 말할 뿐이다. 극락도 천국도 그렇다. 본래 없는 곳을 가보지도 않은 사람이 그곳의 세계를 무엇이라고 말해 보았자 어린아이를 달래기 위한 동화일 뿐이다.

신이나 천국 이야기는 인간의 인식 밖 세계이므로 알 수 없는 세계이고, 인간의 몸과 마음은 현상에 나타난 가상체(假像體)라고 하지만 어쨌든 가상(假像)이라도 있으니 전혀 없는 세계는 아니며 인식을 전혀 할 수 없는 세계도 아니다.

시인은 ‘나를 알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나를 아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고 하였다. 나를 아는 사람은 부처이다. “나 같은 것/ 나 같은 것/ 밤새 원망을 해도”는 중생상(衆生相)이다. 중생상은 스스로 중생이라고 열등하게 생각하고 퇴굴심과 비굴심을 갖는다. 그러나 땡감이 홍시가 되듯이 중생이 부처가 된다.

김형영(1944~현재)은 1980년대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골수이식을 한 경험으로 죽음을 등에 짊어지고 사는 사람처럼 그의 시는 인생에 대한 관조와 성찰이 깃들어 있다. ‘나’는 26자의 짧은 시지만 우리에게 벼락 치는 일깨움과 용기를 주는 시이다. 큰 깨침을 주는 시는 게송처럼 한 마디 시구로서 큰 울림을 준다.

인간은 스스로 못났다고 생각하여 ‘나는 안 된다’는 퇴굴심(退屈心)을 가진 사람과 자신이 잘났다고 지나치게 자만심(自慢心)을 가진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이 수행해서 깨달음을 얻으면 전미개오(轉迷開悟)한 부처가 된다. 중생이 부처이다. 삼라만상 육도중생 가운데에서 누가 부처가 될 수 있겠는가? 인간이 위대하고 불가사의한 공덕과 인연으로 존재하는 천상천하의 유일한 영장(靈長)이다.

시인은 스스로 못났느니 잘못 태어났느니 원망하고 저주해도 자기 자신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존재는 인간 밖에 없고 나 자신을 아는 사람은 유일하게 자기 자신 밖에 없다고 읊고 있다. 내가 부처임을 깨닫는 순간 나의 삶이 부처의 삶으로 변화하고, 내 스스로 불쌍한 중생이라는 생각을 가지면 영원한 중생의 삶이다.

부처와 극락정토가 다른 곳에 있지 않다. 내 한 생각이 바뀌면 그 자리가 바로 정토요, 내 자신이 부처이다. 산꼭대기에서는 연꽃이 필 수 없다. 부처를 먼 곳에서 찾는 행위는 모래로 밥을 짓는 어리석은 행위다. 나의 우주는 내 마음과 생각의 세계이다.

5월 22일은 부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날이다. 부처님이 오신 뜻은 무지한 중생을 일깨우기 위함이다. “중생이 부처이다. 인간이 부처이다. 내가 부처이다. 내 마음이 부처이다.”

김형중 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 ililsihoil1026@hanmail.net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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