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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 웁팔라반나 ①

기자명 김규보

“추한 일에 나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웁팔라반나가 결혼한다는 소식이 사위성 곳곳으로 퍼져 나갔다. 이전까지 웁팔라반나를 떠올리며 밤을 지새던 남성들이 이번엔 쓰라린 마음을 달래지 못하고 뜬눈으로 밤을 보냈다. 웁팔라반나는 그만큼 아름다웠고 어디서든 이목을 집중시켰다. 검디검은 머리카락과 새하얀 피부, 깊은 눈빛은 사람을 홀리는 듯했는데, 성정까지 단아하여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았다. 게다가 사위성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부잣집의 외동딸이라니, 웁팔라반나를 아는 이라면 한 번쯤은 그녀의 남편이 되는 꿈을 그려보곤 했었다.

아름답고 단아한 웁팔라반나
첫눈에 반한 부호아들과 혼인
더없이 다정한 남편이었지만
어머니와 부정 관계 알게 돼

“네가 결혼한다는 이야기에 사람들이 꽤나 놀란 모양이구나. 남편이 누구냐고 어찌나 물어들 보는지 요샌 어딜 나갈 수가 없지 뭐냐. 그래도 그만한 사윗감을 얻게 되었으니 엄마는 참으로 행복하단다.”

엄마가 웁팔라반나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말했다. 웁팔라반나 역시 한쪽 눈을 찡긋 감고 엄마의 눈을 사랑스럽게 바라보았다. 이런저런 남자들의 청혼을 모두 고사했던 웁팔라반나의 마음을 대번에 사로잡은 이는 이웃 도시의 한 청년이었다. 부모와 시내를 거닐던 중 우연히 그 청년을 보았을 때 웁팔라반나는 첫눈에 반하여 그가 자신의 남편이 될 거라고 확신했다. 그날 밤에 부모를 붙잡고 말했다.

“아버님 어머님. 지금껏 혼사를 거부하여 부모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딱히 결혼 생각이 없었던 건 아니었으나 마땅한 남자가 보이지 않아 그랬던 것입니다. 이제 생각이 있어 결혼을 하려 합니다. 다만, 남편감은 제가 고르겠으니 부디 헤아려 주시기 바랍니다.”

혼기가 다가왔어도 줄기차게 혼사를 외면하는 딸 때문에 안절부절했던 터였다. 결혼하겠다는 말로도 기쁨이 샘솟는 듯한데, 남편감이라며 지목한 이 또한 이웃 마을 대부호의 아들이었으니 경사도 이만한 경사가 없었다. 이웃 도시에 서둘러 편지를 보냈고, 웁팔라반나의 소문을 익히 들어 알고 있던 청년의 부모도 환영의 뜻을 담은 답장을 보내왔다. 혼사는 일사천리였다. 두 가문의 자제가 결혼한다는 소문이 사위성 밖에까지 퍼져 온 나라가 들썩였다.

결혼식 이후, 웁팔라반나는 남편의 자상함에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냈다. 남자를 잘 봉양해야 한다는 말을 들으며 커왔고, 그에 대해 어떠한 의심조차 하지 않지만 남편은 달랐다. 항상 웁팔라반나가 불편함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히 보살피며 지극한 애정을 쏟았는데, 오히려 남편이 웁팔라반나를 받들어 모시는 것 같았다. 최고의 순간은 임신했다는 것을 알았을 때였다. 비극의 시작이었다.

산달이 오자 웁팔라반나는 관습에 따라 친정을 찾았고 며칠 뒤 건강한 아이를 낳았다. 아빠와 엄마를 쏙 빼닮은 예쁜 딸이었다. 남편이 웁팔라반나를 보살피기 위해 친정을 드나들기 시작했다. 행복한 시간만 계속될 줄 알았던 어느 날, 하인이 조심스럽게 방문을 두드리고 들어와 머뭇거리며 말 한마디를 건네고는 도망가듯 뛰쳐나갔다.

“어머님과 남편께서 정을 통하고 있어요.”

믿기지 않았고 믿을 수도 없었다. 못된 장난이겠거니 넘겨보려 했지만 의심이 일자 모른 채 가만히 있기 힘들었다. 여느 때처럼 남편은 딸을 보기 위해 친정집을 찾았고 그런 그를 웁팔라반나는 상냥하게 대했다. 점심 무렵 남편이 집을 떠나자 한동안 방에 있다가 곤히 자는 아이를 앉고 조용히 엄마의 방으로 갔다. 슬그머니 문을 연 웁팔라반나에게 기가 막힌 광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엄마와 남편이 벌거벗은 채 몸을 붙이고 누워있는 게 아닌가. 놀란 웁팔라반나가 저도 모르게 아이를 떨어뜨렸다. 탁자 모서리에 머리를 부딪친 아이가 피를 흘리며 울어댔다.

‘어머니와 딸이 한 남자를 남편으로 삼다니…. 끔찍하고 더럽고 추악한 일이다. 나는 이제 어떻게 살아야 한단 말인가.’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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