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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방에서 죽고 다시 사는 스님들 이야기

  • 불서
  • 입력 2018.05.08 11:37
  • 댓글 0

‘선원일기’ / 지범 스님 지음 / 사유수

▲ ‘선원일기’
‘이곳은 스님들의 수행공간이오니 출입을 삼가 하시기 바랍니다.’

선원이 있는 사찰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문구다. 그래서 궁금하다. 도대체 저 안에서는 누가 무엇을 하고 있으며, 어떤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선방에 방부를 들이기 시작한지 40년이 다된 지범 스님이 미지의 세계로만 보여 지는 그 선방에서 직접 겪고 보고 느낀 이야기들을 풀어내 대중의 눈길을 끌고 있다. 스님이 전하는 자전적 이야기에는 넘어지고 쓰러지고 죽고 싶을 때도 여러 번 있지만, 그때마다 화두와 치열하게 싸우며 몸을 던지는 선방스님들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겼다.

1993년 스님은 죽을 생각으로 계룡산 대자암 무문관에 들었다. “이렇게 살다가 공부 시늉만 하고 죽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괴로웠던 스님은 ‘무문관에서 죽으리라’ 다짐하며 무문관에 들어선 후 엉덩이가 헐어 진물이 나고 진물과 피가 좌복에 붙도록 정진했다. 매일 코피가 흐를 만큼 가열 차게 매진했음에도 진전이 없자, 급기야 더는 못 견딜 것 같아 자살 충동을 느끼기도 했다. 결국 모든 것을 포기하고 쇠약해진 몸을 옆으로 뉘였다.

그때, 문틈 사이로 개미들이 짐을 나르는 모습이 보였다. 개미들이 옮기던 짐에서 떨어지기를 반복하면서도 기어코 다 옮기는 것을 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 후 매일 천배를 하면서 화두가 들리기 시작했고 환희심이 절로 났다. 진물도 아물고 코피도 멈췄다. 그해 추석 날 아침. 문 없는 문이 열리고 죽으러 간 무문관에서 그렇게 살아 나왔다.

그런가 하면 살기 위해 다시 무문관을 찾기도 했다. 2005년 봄 어느 날 갑자기 어지러워지더니 곧장 바닥에 쓰러져 병원으로 실려 갔다. 주지로 살아오는 동안 공부가 소홀했다는 생각에 후회가 막급했다. 간단하게 짐을 꾸려 이번에는 살기 위해 지리산 진귀암 무문관으로 들어갔다. 좌선과 포행을 반복하면서도 공부할 수 있는 인연을 주신 제불보살에게 절하며 더위를 이겼고, 한여름 밤 달빛을 보며 살아있음에 감사했다.

▲ 지범 스님은 예나 지금이나 수행자의 산실이요 선사들에게 마음의 고향으로 불리는 각화사에서 고우 스님에게 매일 ‘서장’ ‘선요’ 법문을 듣기도 했다.

이처럼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마침내 자신의 경계를 튼튼히 세운 스님은 입산출가 40년 동안 틈틈이 써온 일기를 한 권 책으로 엮었다. 그래서 ‘선원일기’에는 현재 제방 선원에서 홀로, 또는 함께 수행 정진하는 스님들의 이야기가 적나라하게 펼쳐진다.

‘선원일기’의 1부는 계를 받고 처음 갔던 월명암에서의 춥고 힘들었던 이야기를 시작으로, 주변에서 ‘지범 스님을 사람 만들었다’고 말할 정도로 수행자로 거듭나게 된 칠불사, 각화사, 태안사 등 선원에서의 추억이 고스란히 담겼다. 이어 2부에서는 출가 인연과 속가 인연을 간단하게 밝히고, 용상방을 짜고 죽비를 내리는 모습 등 선원 일상을 담았다. 또 지대방, 대중공양, 해제비, 객스님, 토굴 등 선객들의 일상에서 중요한 문제들을 솔직하게 짚어보면서 이를 함께 고민해야 할 화두로 던지고 있다.

그리고 3부와 4부에서 선원을 지켜온 수좌들 모습을 전하며 지금도 선원이 오롯이 살아 있음을 말한다. 물론, 이 대목은 지범 스님이 개인적으로 겪은 이야기들이기에 그 안에 소개된 일부 스님들에 대한 평가는 보는 이들에 따라 엇갈릴 수 있다. 그럼에도 무여, 고우, 청화, 서옹, 서암, 성철 스님 등 내로라하는 선지식들 문하에서 공부한 이야기들은 공감을 넘어 감동을 나누고 한국불교의 희망을 찾기에 부족함이 없다. 1만5000원.

심정섭 전문위원 sjs88@beopbo.com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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