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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장로의 ‘습득도(拾得圖)’

기자명 김영욱

깨달음, 마음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 장로 作 ‘습득도’, 명대, 비단에 먹, 158.2×89.2㎝, Freer Gallery of Art.

性如鏡體心如光(성여경체심여광)
性若澄淸心自彰(성여징창심자창)
風掃宿雲千里盡(풍소숙운천리진)
碧天孤月曉蒼蒼(벽천고월효창창)

달은 마음의 거울, 달빛은 척도
만법은 마음서 나오는 법이니
달을 본다는 건 마음 본다는 것
절벽아래 습득 달 기다리는 이유

성품이 거울의 본체라면 마음은 빛과 같고 성품이 만약 맑고 깨끗하면 마음은 저절로 드러나네. 바람이 머문 구름 쓸자 천 리가 말끔하니 푸른 하늘 외로운 달이 새벽까지 푸르디푸르구나. 취여(取如, 1720~1789)의 ‘성심 노숙에게 답하다(答性心老宿)’.

달은 마음의 거울이다. 차면 충만(充滿)하나 비면 진공(眞空)하다. 그리고 달빛은 마음의 척도다. 밝은 달빛은 늘 변함이 없고, 달빛을 받은 모든 존재는 자신을 명백히 드러낸다. 옛사람들은 밝은 달빛 아래에 서서 자신을 보고, 달을 보며 자신의 마음을 읽었다.

한 사내가 뒷짐 지고 고개 들어 달을 바라본다. 둥그런 흰 달이 내뿜는 달빛에 취한 듯 입을 크게 벌리며 헤벌쭉 웃고 있다. 달과 달빛을 보며 편안히 즐거워한다. 정돈되지 않은 산발한 머리에 굵고 강렬한 필치로 그린 투박한 의복에서 겉모습에 신경 쓰지 않는 그의 성품을 읽을 수 있다.

먹의 농담으로 거대하게 메워진 수직의 절벽과 텅 빈 공간을 구현한 화면 구성은 참으로 대담하다. 수묵의 대조를 통한 차고 비워진 공간은 마치 달을 보는 사내의 마음을 보는 듯하다. 그림을 그린 명대 화가 장로(張路, 1464~1538)는 사내를 화면 중앙에 위치시켜 큰 의미와 존재감을 부여했다. 바닥에 놓인 빗자루는 사내의 정체가 당나라 때의 승려 습득(拾得)임을 넌지시 알려준다.

습득은 천태산 국청사의 미천한 승려였다. 풍간 선사가 길을 가다가 우연히 어린 습득을 만나 사찰로 데려와 키웠다. 습득은 매일 경내를 빗자루로 쓸다가 한순간 불가의 가르침을 깨우쳤고 그 깨달음의 경지가 매우 높았다고 전한다.

그는 절집에 놀러 오는 한산의 지우(知友)이며 그와 늘 함께 시간을 보냈다. 한산이 파초잎과 붓을 쥐거나 시를 쓰면 습득은 벼루에 먹을 갈았다. 한산이 경을 들면 습득은 빗자루를 쥐고 바닥을 쓸었다. 그리고 두 사람은 매일 달을 바라보거나 손을 들어 달을 가리키며 함박웃음을 짓거나 호탕한 웃음을 터트렸다.

화면 속 습득은 눈으로 달을 보고 귀로 바람 소리를 듣고 있다. 몸은 편안하고 마음은 평안해 보인다. 이내 그는 달에 걸린 시선 너머로 충만하고 진공한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본다. 그 마음은 마치 원명(圓明)한 달과 같다.

달은 마음의 거울이다. 성품의 온도와 마음의 밝기에 따라 차고 이지러진다. 따라서 달을 본다는 것은 곧 자신의 마음을 보고 깨닫는 것과 같다. 만법(萬法)은 마음에서 나오는 법이니 깨달음은 마음을 보는 것에서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습득이 절벽 아래에 서서 둥그런 흰 달이 솟는 순간을 기다려서 바라보는 이유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39호 / 2018년 5월 9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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