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윤 스님은 1958년 김천 직지사에서 관응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인제 백담사와 의정부 쌍용사 주지를 역임했으며 쌍용사 주지 시절 석주 스님을 도와 중앙승가대학을 설립, 2대학장을 지냈다.
동국대 사학과를 졸업한 스님은 출가하기 전 농촌문맹퇴치와 농로개발 등을 위해 2년 간 농사를 지으며 농촌계몽운동을 했다. 이후 공주 마곡사 복천암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으며 김천 직지사, 수원 용주사 등에서 관응 스님을 모시고 교학에 힘쓰기도 했다.
강원도 적조암에서 선방을 개원한 것이 인연이 돼 수좌의 길에 들어섰다. 이후 인적이 없는 암자와 사찰을 찾아 자급자족하며 주경야선했다. 스님은 “세상에 공짜란 것은 없다”며 정선 향적사, 적조암, 설악산 오세암, 봉정암, 화성 신흥사 등 당시 토굴에 가까운 사찰에서 지내며 정진했다.
사찰불사에도 매진했다. 물욕에 빠질 것을 경계해 ‘일궈 놓으면 떠난다’는 원칙을 세우고 오세암, 영시암, 봉정암 등 내설악 불교성지를 복원했다. 백담사와 쌍용사 주지 역임 이후에는 주지 소임을 맡지 않았다. “물질에서 안락을 구하면 물질의 노예가 될 수 있기에 수행자는 물질에 대한 집착을 늘 경계해야 한다”며 입적하는 순간까지 영시암에서 무소유의 삶을 실천하며 살아갔다.
조장희 기자 banya@beopbo.com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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