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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벨상은 됐고, 우리에게는 평화

기자명 이중남

지난 4월27일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 통일을 위한 판문점 선언’이 나왔다. 남북 정상은 이로써 ‘완전한 비핵화’를 통해 핵 없는 한반도를 실현하고 정전협정을 평화협정으로 전환해 항구적인 평화체제를 구축할 것을 공표했다. 공동번영을 위한 교류협력과 군사적 긴장상태 완화를 우선 실천하기로 약속했음은 물론이다.

이전에도 남북 정상간 합의에 따른 공동선언이 두 번 있었지만, 이번에는 특히 시한까지 정해 평화협정 전환을 명시했을 뿐만 아니라 미국, 혹은 미국과 중국이 함께 참여하는 3자 내지 4자회담을 통해 이를 보증할 입체적인 계획까지 못 박았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각별하다. 한반도는 늘 중동과 더불어 지구상에서 군사적 긴장이 가장 높은 곳으로 지목되어 왔는데, 이제 드디어 그런 처지를 벗어날 문턱에 다다른 것인가? 일부 호사가들은 벌써 노벨평화상 수상자를 점치고 있다.

한반도의 명운과 노벨평화상이 거론되다 보니 떠오르는 일화가 있다. 대한제국 말기인 1905년 9월의 일이다. 일본은 러일전쟁을 이긴 뒤 조선에 대한 야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 시작했고, 고립무원의 고종 황제는 백방으로 도움을 구하고 있었다. 당시 미국 대통령이던 시어도어 루즈벨트는 아시아 각국으로 장관들을 보내 외교를 지휘하고 있었는데, 마침 그의 21살 먹은 큰딸 앨리스 루즈벨트가 사절단 일행 18명을 이끌고 조선을 찾은 것이다.

고종 황제는 크게 고무되어 미국과의 군사동맹까지 고대하며 ‘칙사’의 예로써 ‘앨리스 공주’ 일행을 환대했다. 하지만 사절단의 태도는 방약무인했다. 특히 ‘앨리스 공주’는 황실이 마련한 공식 연회에 말을 타고서 나타났는데, 승마복에 반짝이는 장화를 신고 입에는 시가까지 물고 있어 내외빈들을 크게 당혹시켰다고 한다. 그런 식으로 분방하게 술 마시고 떠드는 나날을 보내는 가운데 목적 불명의 사절단 방문은 끝났고, 결국 조선은 동맹의 ‘동’자도 꺼내보지 못한 채 그들이 떠나는 뒷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사실 그 방문이 있기 두 달 전에 미국과 일본은 ‘가쓰라-태프트 밀약’을 맺은 상태였다. 그 내용인 즉, 미국이 일본의 조선 지배를 인정해 주는 대신에 일본은 미국의 필리핀 지배를 인정해 준다는 식민지 거래였다. 사절단이 돌아가고 난 뒤 일본은 거리낌 없이 대한제국을 압박해 을사늑약을 맺어 외교권을 박탈하는 수순을 밟았다.

이처럼 조선을 일본에 내어주며 친일 노선으로 일관하던 루즈벨트는 러일 강화조약 주선 등 ‘평화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그 이듬해 노벨상을 받았다. 110여년 전 일이다. 그런 것이 노벨상이니, “노벨상은 트럼프 주고, 우리는 평화만 가져오자”는 우리 대통령의 발언이 단순한 겸양으로만 들리지 않는 것이다.

지난해 7월6일 문 대통령이 ‘베를린 선언’을 발표하던 상황을 떠올려 보면, 지금 이룬 성과가 얼마나 값진 것인지 여실해진다. 남북이 뜻을 모아 한반도 운명을 주도해 나가자는 대통령의 제안은 그 현실성이 의문시되었고, 안팎의 반응은 선언 이틀 전 북한이 발사한 대륙간탄도미사일 때문에 말할 수 없이 냉랭했다. 그런데 어느덧 그 제안이 현실이 되어 남북 정상회담을 성공적으로 마치고, 이제 그 성과에 실체적인 내용을 부여할 역사적인 북미 회담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기대와 추세에서 절반의 결실만 얻어내더라도 ‘판문점 선언’은 아마도 유례를 다시 찾기 어려운 외교적 쾌거가 될 것이다. 정치권에서는 이처럼 진귀한 성과가 무산되지 않도록 여야 할 것 없이 국회 비준으로 뒷받침할 책무를 엄중하게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 실로 가슴 벅찬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삼계를 편안케 하시는 부처님의 가피에 힘입어 이 땅에 평화가 깃들고 뿌리내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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