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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년 째 식물인간 남편이지만 숨 쉬고 있기에 한없이 고마울 뿐총무원장상 - 윤애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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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8.05.15  14:0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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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림=근호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해 열린 제5회 신행수기 공모에서 윤애경 불자의 ‘살아계신 나의 부처님’이 대상인 총무원장상을 수상했다. 법보신문과 불교방송의 공동주관으로 진행된 신행수기 공모에는 총 130편이 접수됐다. 수상작 20편 중에 총무원장상을 비롯해 포교원장상, 중앙신도회장상 등 10편을 지면에 소개한다. 편집자주

교통사고로 다친 남편 돌보며
경찰병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

병원법당서 무릎 부서져라 절하며
남편·아이 위한 기도로 마음잡아

병불련 창립멤버로 의료봉사활동
마하의료회 활동에도 적극 동참

독송과 사경으로 끝없는 기도
사찰불사 보시하며 자비나눔도

퇴임 앞두고 복지사 자격증 취득
믿을 수 있는 시설 운영도 발원

1979년 친구의 소개로 남편을 소개받아 1983년 12월 결혼했다. 1984년 첫 딸을 출산했고 이듬해 남편은 경찰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당시 국가는 정치상황으로 어수선했지만 우리 가정은 단란하고 행복했다. 1987년 1월 아들을 출산하며 우리 가족의 행복은 배가 됐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둘째가 세상에 빛을 본지 5일 만에 남편은 큰 교통사고를 당했고, 무의식 상태로 경찰병원 중환자실에 입원했다.

올림픽 경기로 온 나라가 들떠 있던 1988년 남편은 일반병실로 옮겨졌고, 나와 어린 아들은 병실에서 24시간 남편을 간병하며 병원에서 생활했다. 이후에도 남편은 별다른 차도가 없었고, 결국 1996년 교통사고 9년 만에 식물인간 상태로 귀가했다. 남편은 31년째인 지금까지 여전히 투병 중이다.

아득한 세월이다. 사고 당시 남편의 동료들은 나에게 교통사고가 났다는 연락만 했을 뿐 상태가 어떠한지 말해주지 않았다. 출산 1주일 후 서울 성동구 왕십리에 있는 경찰병원으로 무작정 찾아갔다. 남편 이름으로 입원환자를 찾아보니 중환자실에 있다고 한다. 무섭고 두려웠다. 미동도 하지 않는 남편을 보는 순간 눈앞이 깜깜해졌다.

“왜 여기에 이러고 있는 거예요.”

눈물도 나지 않았다. 꼬집어도 반응이 없었고, 옆구리에는 튜브가 박혀 있었다. 외상은 없었는데 사고로 갈비뼈가 모두 부러져 내부 장기를 찔러 출혈이 계속되는 상황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담당의가 뇌진탕에 의한 혼수상태여서 의식만 회복하면 큰 문제가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핏덩이 아들과 4살 된 딸을 보면서 한없이 울었다.

사고 후 며칠 만에 엉덩이에 욕창이 발생했고, 이후 견갑골, 발뒤꿈치, 팔꿈치 등에 욕창이 생기기 시작했다. 몸은 점점 말라가고 뼈와 피부만 남을 정도로 앙상한 몸이 되어 버렸다. 욕창이 너무 심해 사망할 수도 있는 상태라고 했다. 시어머니와 친정엄마가 부처님께 기도를 올리자고 했다. 한겨울 핏덩이 아들을 업고 조계사 대웅전을 찾았다. 차가운 마룻바닥에 아들을 눕혀놓고 하염없이 울면서 절을 했다. 다리가 펴지지 않을 때까지 절을 하고 경찰병원 중환자실로 가기를 수개월간 지속했다.

교통사고 후 1년이 지나도 의식은 회복하지 못했고, 일반병실로 이동됐다. 당시 경찰병원에는 기독교인 직원들과 목사님이 찾아와 기도해 준다고 법석을 떨었는데 정작 불교에서는 찾아오는 이가 없었다. 남편을 혼자 두고 법당을 찾아 기도하러 갈 수도 없었다. TV와 라디오, 잡지를 통해 남편과 나의 병원 생활 사연이 소개되면서 이름 모를 보살님이 병실을 찾아오셔서 ‘금강경’을 주시면서 시간 되는대로 읽으라고 하고는 가셨다.

남편 병동의 수간호사님 추천으로 간호조무사 학원 야간반에 등록해 공부를 시작했다. 취업보다는 남편을 잘 간호하기 위한 공부를 한다고 생각했다. 1991년 경찰병원에 불교법당이 개설됐다. 경승실도 있었고 스님도 계셨다. 한없이 기뻤다. 간호학원을 마치고 남편 입원실에 도착하면 밤 11시가 넘었다. 남편을 생각하면 피워보지 못한 꽃 한 송이 같아 안타까웠고 아이들을 생각하면 부모 잘못 만나 고생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부처님 앞에서 참 많이 울었다.

틈틈이 법당을 찾아 절도 하고 불교 관련 책도 읽었다. 불교를 알아가는 재미에 환희심이 생기고, 무릎이 부서져라 절을 하면서 “남편을 끝까지 간병하며 살아가는 게 이번 생의 과제”라고 받아들였다. 받아들이고 나니 짜증도 근심도 내려놓을 수 있었고 내 옆에 살아 숨 쉬고 있는 남편이 한없이 고마웠고, 만져볼 수도 있음을 감사했다. 숨 쉬고 살아 있음에 ‘김종현’이라는 이름도 쓸 수 있고 눈이라도 마주치면 더없이 행복했다.

조금씩 빛이 보이기 시작했다. 1992년 9월 특별채용시험에 합격해 경찰병원 기능 10급 간호조무사로 근무를 시작했다. 32살에 공무원으로 근무할 수 있게 해준 남편에게 감사했다. 사고 당시 이 세상 사람이 아니었다면 간호조무사 공부도 할 수 없었고 공무원이 될 수 없었고 부처님 법을 받아 지닐 수도 없었을 것이다. 나는 같은 공간에서 간호조무사로 근무하고, 남편은 내 옆에서 숨 쉬며 살아 있고, 아이들은 학교생활 잘하고 있는 상황이 꿈만 같았다.

살아갈 집과 직장이 생긴 1992년은 행운의 해였다. 병원 근무를 마치고 저녁시간을 어떻게 보낼까 생각하다가 1993년 한국방송통신대 전산학과에 입학해 컴퓨터 공부를 시작했다. 시부모님과 살던 아이들을 데려와 같이 살게 됐다. 그러나 남편은 해 뜨면 눈뜨고 해가 지면 잠이 드는 상태 그대로였다. 병원에서도 특별히 해줄 게 없었다. 병원비도 큰 부담이 되고 눈에 띄는 변화를 보이지 않아 아이들과 한집에서 살도록 1996년 가을 영구임대 아파트로 남편을 옮겼다.

몸이 두 개라도 모자랄 지경이었다. 새벽 6시에 일어나 출근하기 전 남편을 석션튜브(suction tube)로 가래를 빼주고, 소변을 비워놓고, 대변도 치우고, 얼굴과 머리와 입안을 닦아주고 아침식사를 주고 나서 아이들 깨워 밥 먹여 학교를 보냈다. 점심시간에도 집으로 달려와 간병과 점심식사를 챙기고 다시 허겁지겁 병원으로 돌아가 오후 근무를 시작했다. 퇴근 후에도 똑같은 방식으로 식사와 간병, 아이들을 챙기고 나면 피곤이 몰려왔다. 그래도 휴일에는 남편과 아이들이 함께 있으니 마음이 편했다.

아이들이 사춘기 때는 생각지도 못한 일로 힘든 시간을 보내기도 했다. 친구들과 놀고 싶은데 아빠를 지켜야 하니 울면서 “아빠가 하늘나라로 갔으면 좋겠다”고 해 여러 번 울기도 했다.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복받쳐 치밀어 오를 때도 여러 번이었고, 그때마다 늘 누워서 말 한마디 못하고 눈도 맞추지 못하는 남편과 아이들을 위해 기도와 절을 하며 마음을 다잡았다.

과외와 보습학원도 보내보지 못했지만 아이들은 몸과 마음이 올바른 아이로 성장했다. 딸은 아동복지학과를 졸업하고 결혼해 2남을 두었고, 지금도 부처님 그늘아래 어린이집에서 천진불을 보살피는 보육교사로 근무 중이다.

아들은 육군 항공정비 부사관에 합격해 현재 중사로 근무하고 있다. 결혼해 2녀를 두고 있으며 무엇보다 군법당 일요법회 등에 열심히 참석하고 있다. 나는 건강이 안 좋은 어르신, 농촌지역에 거주하는 의료사각지대에 사는 어르신들, 장애인들을 보면 남의 일 같지 않아 2000년 전국병원불자연합회 창립멤버로 참여해 의료봉사활동에 동참했다. 또 2003년 경찰병원 나눔의료봉사단을 조직해 총무 소임을 맡아 이끌어 오고 있다. 불자들로 구성된 마하의료회에서 참여해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 가정, 복지시설 입소 어르신들, 사찰행사에 의료봉사활동, 해외 의료봉사 활동에 적극적으로 동참하고 있다. 올해도 2월말 네팔로 의료봉사 활동을 다녀왔다.

지금까지 우리 가족은 여행을 가본 일이 없다. 아이들은 늘 아버지 때문에 휴일을 반납하고 아버지를 살펴왔다. 아들과 딸 내외는 주말이면 아이들을 데리고 아버지를 보러온다. 할아버지는 왜 말도 안 하느냐고 손녀와 외손자는 물어본다. 그럴 때마다 마음이 시리다. 대답 없는 메아리이지만 나는 여전히 남편에게 말을 건넨다.

30년이 흐르도록 의식을 회복하지 못하리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남편의 동기들은 이제 정년퇴임을 했다. 경찰병원에 진료받으러 와서는 나를 찾아와 지금도 남편의 안부를 물어본다. “집에서 건강하게 잘 지내고 있어요” 하면 많이 놀란다. 우리 마누라 같으면 나 버리고 벌써 도망갔다고 하면서 너스레를 떤다. 아버지의 사랑도 받아보지 못하고 성장한 나의 아들과 딸에게 나까지 짐이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나는 끊임없는 운동으로 건강을 관리하며 ‘금강경’ ‘본불정존승다라니경’ 독송과 사경, 108참회 등 끊임없이 기도와 인연 닿는 사찰의 불사에도 지속적으로 보시하면서 자비나눔을 실천한다.

2021년 말이면 나 역시 정년퇴임이다. 퇴임 후에는 남편과 같은 상태의 환자들을 위한 시설을 운영해 볼 계획이다. 그래서 사회복지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남편이 언제까지 내 옆에서 숨 쉬고 살아갈 수 있는지 모르지만 남편과 같은 상태의 환자들은 갈 곳이 없다. 장애인시설에서도 의사표현을 못하는 식물인간 상태의 장애인은 받아주지도 않는다. 나와 같은 가족들이 마음 편히 믿고 의지하고 맡길 수 있는 안정되고 신뢰감이 있는 시설을 운영해 보고 싶다. 이 모든 발원이 원만히 성취되기를 부처님 전에 기도 올린다.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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