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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로 내 곁에 가득한 가피의 힘 모아 ‘나’ 찾고 자살위기 극복

기자명 법보신문

108산사순례회 회주상 - 이희주

▲ 그림=근호

나는 수화통역사다. 조계사 원심회에 수화통역 자원봉사를 하러 갔다가 남편을 만났다. 남편은 탱화를 그리는 농인(聾人)이었다. 농인은 청각장애인을 말한다. 다들 불심으로 이어진 인연이라며 축하해주었고 결혼 전부터 쭉 해왔던 기도는 결혼 후 귀한 아이를 만나고 싶다는 의지로 지장기도로 이어졌다.

산후 우울증에 자살충동 심각
출산 3개월 때 다리까지 장애
손가락 관철통증에 수화 포기
기도하다 “살려 달라” 울기도

간절히 다라니 시작 1년 만에
몸 회복되고 알아차림 빨라져
매순간 감사한 마음 갖게 되고
남편·아이 함께 관음기도 시작

부모 기도가 아이 지혜 밝혀줄
가장 훌륭한 자산임도 깨달아

남편은 고운 석채로 지장보살님을 그렸고 나는 그 지장탱화를 보며 매일 지장기도를 했다. 남편은 농인이지만 두꺼운 ‘지장경’을 매일매일 하루도 거르지 않고 사경했다. 지극하면 하늘에 닿는다는 말을 늘 느끼며 살고 있어서인지 기도를 할 때 욕심이 앞서기보다는 편안함과 부처님을 믿는 마음과 잘 될 것이라는 자신감으로 충만했다. 사실 임신을 하고 회사를 다니며 사회복지사 공부까지 하는 내내 기도를 하루도 거르지 않기란 쉽지 않았다. 졸음이 쏟아져 ‘천수경’을 제대로 읽지 못해 ‘정구업진언’을 몇 번이나 다시하기 일쑤였다. 그래서 시간과 장소를 가리지 않는 기도를 시작했다.

아침에 일어나서, 화장실에서, 버스에서, 지하철에서, 누가 보든지 말든지 기도를 했고 어떤 때는 쫓기듯이, 또 어떤 때는 속성으로 했지만, 하루도 거르지 않고 기도를 했다. 그 기도의 결과는 엄청났다. 임신 내내 아픈 곳이 하나도 없었고 갑자기 여기저기서 아기 선물과 다양한 일거리가 들어오고 더할 나위 없는 풍요와 원만함이 가득했다. 아이도 물론 순산을 했다. 다들 청각장애인과 결혼해 어떤 아이가 나올까 내심 궁금했던 모양이었다. 태명이 ‘반야’였는데 낳아보니 아주 예쁘고 지혜로운 공주님이었다. 아기를 낳고서는 지장기도를 멈추고 관세음보살 염불과 신묘장구대다라니 주력에 매진했다.

그런데 기도를 하며 그 어떤 어려움이 있어도 능히 해냈었던 나인데…. 육아를 하는 과정에서 산후우울증이 생겼다. 그 정도가 심각해 수개월간 자살을 생각하고, 살도 어마어마하게 찌고,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출산 후 3개월 되던 때 아이를 안고 넘어져 지금도 오른쪽 다리가 약간 불편하다.

기도 하는 것도 싫었다. 기도, 불교, 부처님, 내 자신 등 30년 넘게 확신하고 살았던 믿음과 자신감이 모두 사라졌다. 남편도 보기 싫었고, 수화도 싫었다. 특히 손을 쓰는 수화통역사가 관절이 아파 손가락을 구부릴 수가 없으니 앞으로 수화를 하지 못할 수도 있다는 두려움과 오만가지 걱정이 나를 뒤덮었다. 지금껏 살아오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은 것이다. 기도를 한다고는 하지만, 그저 형식적으로 입으로만 웅얼거릴 뿐, 지루함 속에 시간은 더디게 흘러만 갔다. 반면 마음속에는 오로지 ‘죽음’ 두 글자만 가득 떠올랐다. ‘큰일 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도 우울증은 생각보다 오래갔고 몸도 쉽게 회복되지 않았다.

절에 가면 좀 괜찮아질 것 같았지만 아기가 어리니 데리고 다니기 힘들 것 같았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온전히 걸을 수 없었다는 것이다. 어디를 가려고 할 때는 남편에게 의지해 자동차로 이동해야 했고, 그나마도 계단을 오르내리는 건 거의 불가능했다. 대부분의 절은 계단이 많고 바닥에 앉아야하기 때문에 그 공간상의 제약이 나를 더욱더 부처님과 멀어지게 했다.

어떻게 기도를 해야 내가 나를 치료하고 부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을까 고민했다. 아기가 잠들면 기도를 하다가 울면서 제발 살려달라고 외치다 잠이 들곤 했다. 부처님은 아주 오랜 후에 답을 주셨다. 아이가 백일이 지나고 점점 커 가는데 나는 회복될 기미가 안보이고 폭염보다 더 혹독하고 뜨거운 미칠 것 같은 나날들이 흘렀다.

가을이 되던 무렵 나는 그동안 하던 기도를 대폭 축소했다. 육아로 시간이 거의 없으니 내가 자신 있게 외워서 할 수 있는 신묘장구대다라니에만 집중하기 시작했다. 해가 있는 낮에는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했다가도 어두운 밤이 오면 다시 온갖 망상과 우울감이 찾아왔다. 답이 없었다. 이 말을 도대체 얼마나 많이 했었는지…. 다리가 불편해 삼배조차 할 수 없었다. 조계사는 아이의 100일이 지나고 부처님오신날 즈음에 한번 찾았다. 그날도 절에 다녀왔다는 기쁨 뒤에 바로 엄청난 통증이 찾아왔다. ‘결혼과 임신, 출산이 원만하더니 그간 내가 나도 모르게 자만했던 마음이 있었나보다’ 하고 생각했다. 그게 이런 크나큰 아픔으로 부처님을 내 마음속에서 몰아낼 정도로 뿌리를 흔드는 고통으로 찾아오다니….

그런데 아이가 돌이 될 무렵, 몸이 서서히 회복되기 시작했다. 하루에 딱 한번 하는 기도는 중심을 잡아갔고 자기 전에 아이에게 젖을 물리며 하루를 정리하는 감사의 말을 하고 신묘장구대다라니를 외웠다. 그리고 다시 감사의 말을 한다. 어찌 보면 내가 살면서 가장 짧은 기도를 1년 넘게 하고 있지만 기도는 길고 짧음에 상관없이 그 절실함과 집중력이 전부라는 걸 이제야 깨닫게 되었다.

많이 잃었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고작 1년이었다. 물론 그 1년이란 시간 속에서 겪은 고통은 아주 농밀했지만 그만큼 깨닫게 된 것도 아주 크고 귀했다. 내 자신이 바뀌었다. 두려움이 사라지고 좀 더 명확하고 간결해졌다. 자신감도 다시 되찾았고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알아차리는 시간이 전보다 빨라졌다. 매순간 감사하는 횟수와 그 진심이 훨씬 증가했다.

기도를 해본 사람은 안다. 절실하게 목숨 걸고 기도를 해본 사람은 더욱 명확하다. 잘난 체가 없어지고 자연스러워지면서 지금 숨 쉬는 이 순간이 얼마나 감사한 것인지를. 그리고 정말 중요한 것은 부처님 법을 만나 기도를 하고 그 가피를 받는 엄청난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사람으로 살아가며 가장 큰 행복이고 기쁨인 것을.

아이는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고 있다. 나의 우울증은 완전히 사라졌다. 병원을 다닌 시간은 꽤 길었지만 좋은 인연들도 생기고 남편은 여전히 우리 가족을 대표해 조계사 원심회를 잘 다니고 있다. 남편 역시 관세음보살 기도를 매일매일 하고 있다. 사실 남편은 청각장애인이라 그런지 경전 내용이 어렵다며 크게 흥미를 갖지 않았다. 탱화를 그릴 때는 온 우주의 불심을 끌어 모아 집중해서 그리던데, 왜 기도는 따로 안하는지 늘 궁금했었다. 그래서 연애시절부터 ‘반야심경’을 외우면 결혼 하겠다 등의 다소 유치한 조건들을 내걸어 부처님 말씀에 좀 더 가까워지도록 유도했었다.

남편은 우직해서 한번 시작하면 쉽게 포기하는 성격이 아니다. 지금은 너무도 훌륭하게 매일매일 기도를 잘하고 있다. 여행갈 때도 사경 책을 챙겨가고 아무리 졸려도 기도는 꼭 하고 잠들 정도니 이만하면 백점 만점이다. 이제 17개월인 나의 소중한 딸도 내가 자기 전 기도를 하려고 관세음보살 염불을 시작하면 젖을 쭉 빼곤 내 눈을 마주치며 ‘앙앙아앙’이라고 말한다. 나는 그것이 관세음보살을 부르는 소리라고 믿는다.

돌 즈음부터 아빠의 그림을 보며 합장 인사를 하고 스님들을 보면 합장 반배를 하고, 불상을 보면 합장을 하고 법보신문에 나와 있는 많은 사진들 중 스님들 사진만 보면 합장인사를 하니 이 아이가 말하는 ‘앙앙아앙’이 어찌 관세음보살이 아니겠는가! 사실 신기한 일이다. 지인들은 이런 딸아이를 보며 감탄사를 연발한다. 내가 그리 하라고 가르친 것도 아니고, 본인이 부모를 보고 자연스레 익힌 것이고, 뱃속에서부터 늘 듣던 기도이고, 보아왔던 부처님과 탱화이니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부처님의 가피를 받으며 살고 있지만 이렇게 크나큰 인생의 변화가 생겼을 때는 ‘가피’란 단어로 표현하기에 부족함을 느낀다. 그리고 이 감사한 마음을 어떻게 회향해야 할지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오랜 시간 불자임을 자랑스럽게 여기다 불과 1년 만에 출산과 육아에 지쳐 부처님과 이별할 뻔 했던 일을 생각해보면 참으로 부끄러울 따름이다.

기도는 나 혼자 만의 것이 아니고 가족 모두의 것이며 가피로 이루어진 한 가정이 밝은 등불이 되어 다른 사람들을 밝히고 또 밝히고 그것이 포교가 된다고 믿는다. 태어나 처음으로 ‘부처님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아프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 기도는 그동안 마음속으로 ‘나만을 위한, 내 가족만을 위한 기도는 하지 않을 거야’ 했던 자기모순에서 벗어나 어쩌면 가장 인간적이고 솔직한 기도가 아니었나 생각해본다.

부처님은 아시니까. 내가 어떤 마음으로 기도하는지 아시니까. 기도를 해서 가피를 주시는 것이 아니고 늘 주시는 그 가피를 기도를 통해 내가 좀 더 끌어당겨 모아 나를 위해 쓰게 되는 것임을 이제 알게 됐다. 부처님의 가피는 보지 못할 뿐, 늘 공기처럼 내 곁에 있고 진심어린 기도는 결코 헛되지 않는다는 것도 확인했다. 아이의 맑은 마음과 지혜를 위해 부모가 매일 하는 기도가 가장 훌륭한 저축이고 자산임도 새삼 깨달았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아기를 안고 재우며 기도를 할 것이다. 남편도 혼자 있는 시간에 기도를 할 것이다. 아기도 내 목소리를 들으며 기도를 할 것이다. 기도할 수 있어서 행복하다. 부처님과 헤어지지 않아서 행복하다. 내가 나라서 행복하다. 감사하다.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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