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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사 불교사의 주역] 2. 붓다를 만난 거사들

부처님, “수닷타와 지와카 불사<不死> 경지 발견했다” 선언

▲ 급고독장자로 알려진 수닷타 아나타핀디카가 부처님께 공양올린 기원정사.

부처님오신날이 코앞이다. 매년 맞이하는 오늘, 하지만 매번 다른 날이다. 사실 우리는 부처님이 정확히 언제 태어나셨는지 알지 못한다. 인도가 역사를 기록하지 않는 독특한 특징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고 감사드리며 축하한다. 부처님의 출현은 기적 가운데 기적이기 때문이다. 경전에서는 이를 “희유한 일”이라고 표현한다. 부처님의 출현이 기적인 것은 우리들 뭇 생명들[중생]에게 부처될 수 있음을, 부처됨의 방법을 알려주셨기 때문이다. 부처가 되고 안 되고는 이제 우리들 몫이다. 부처가 되지 못한 것을 부처님에게 탓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이 된다.

부처님 재세당시 거사는
경제영역서 주도권 가져
땀 흘리지않는 부처님과
수행자들에 부정적 견해
이로 인해 부처님과 논쟁

부처님은 ‘대반열반경’서
사부대중 모두에 차별없이
동일한 수행 성취 기대해

거사란 신행 실천하면서도
승가외호 넘어 수행하면서
전법의 역할까지 매진해야

부처님, 21명 거사 호명하며
불사 발견하고 실현했다 인정

우리는 초기경전을 통해 붓다를 만난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 중에는 부처님의 가르침에 따라 수행정진하여 부처를 이룬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부처님 재세 시에 깨달음을 얻은 수행자들이 많았다는 사실에서 우리는 희망을 품을 수 있게 된다. 여기에는 어떠한 차별도 존재하지 않는다. 부처님은 당신의 제자들을 어떻게 바라보았을까. 우리는 그 일단의 모습을 ‘대반열반경’에서 볼 수 있다.

“파피만이여! 나의 비구들이, 비구니들이, 남자 재가신자들이, 여자 재가신자들이 제자로서 유능하고 훈련되고 두려움이 없고 속박에서 벗어나 안온을 성취하고 많이 배우고 진리를 수호하고 가르침에 따라 실천하고 바른 방법으로 실천하며 가르침을 맞게 행하며, 스스로 스승의 가르침을 배워 그것을 설명하고 가르치고 시설하고 확립하고 개현하고 분석하여 명확히 밝히고 다른 사람들과의 논쟁을 여법하게 잘 논박할 수 있고 효과적으로 가르침을 설하기까지 나는 열반에 들지 않을 것이다.(‘대반열반경’)”

‘대반열반경’에서 악마 파피만이 부처님께 열반을 재촉하면서 부처님께서 정각 이후 하신 말씀을 상기한 내용이다. 부처님은 비구, 비구니, 우바새, 우바이의 네 부류의 제자에 대해서 어떠한 차별도 없이 동일한 성취를 기대했음을 알 수 있다. 사부대중이 올바르게 부처님의 가르침을 배우고 실천하면, 모두 똑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명확히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으며, 나아가 다른 사람을 위해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음을 선언한 것에 다름 아니다. 여기에 출가중, 재가중의 차별, 남녀의 차별은 존재하지 않는다. 모두 부처님의 ‘제자’만이 존재할 뿐이다.

이 사부대중 가운데, 우바새 그 중에서 부처님을 만난 ‘거사’들의 이야기를 해보고자 한다. 거사(gahapati)는 부처님 당시 사회적으로 급부상한 사회 계층을 지시하는 용어이다. 본래 이 말의 뜻은 ‘가장’이란 의미로 해석되었지만, 단순한 가장의 의미 이상을 가리킨다. 율장의 정의를 따르면 “왕과 왕에게 봉사하는 자, 바라문을 제외하고 남은 자가 거사”이다. 율장의 이 개념이 가장 광의의 정의가 된다. 그렇다면 거사란 왕과 관련 없는 귀족(크샤트리야) 및 평민(바이샤)은 물론 수드라(노예)와 불가촉천민도 포함될 여지가 남는다. 그러나 거사 개념을 제한적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즉 바라문은 종교 영역, 크샤트리야는 경제영역, 왕과 신하는 정치영역을 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한다.

하지만 ‘대반열반경’에서는 우파사카(Upāsaka), 즉 남자 재가신자를 거사(gahapati)라고도 부르고 있다. “그때 세존께서는 파탈리 마을의 우바새(Upāsake)들에게 말씀하셨다. 거사들이여(gahapatayo), 계행이 나쁘고 계를 파한 자들에게 다섯 가지 위험이 있다…”라는 문장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한편 ‘상윳따 니까야’ 제1권에 보면, ‘남자재가신자의 품(Upāsakavagga)’이 있다. 이 품의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바라문’이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경전의 이러한 기술들을 근거로 거사는 경제영역에서 주도권을 쥔 신흥계층인 장자는 물론 부처님께 귀의한 바라문, 왕족, 평민들도 포함하는 개념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 부처님께서는 많은 사람들과 만나 대화를 나누셨다. 그 내용들을 경전에서 확인해 볼 수 있다. 일반적으로 거사라고 할 수 있는 남자 재가신자들은 처음에는 부처님이나 그 출가제자들에 대해 부정적인 인식을 갖고 있거나 이교도로서 부처님과 논쟁을 하러 오는 경우도 있었다.

“부정적인 인식 : 땀 흘려 일해서 스스로 먹을 것을 마련해라. 자꾸 음식을 빌러 와 귀찮다.(카시 바라드와자, 바라문 우다야, 바라문 다니야 등), 논쟁 : 자이나교도로서 붓다와 논쟁을 하러 옴.(장자 우팔리, 아바야 왕자, 시하장군 등)”

이는 걸식 탁발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는 것에 대해 부정적 인식이 당시에도 널리 퍼졌음을 짐작하게 한다. 그리고 논쟁이란 방식이 널리 일반화되어 있었음도 확인하게 된다.

경전에서 전하는 내용들을 보게 되면, 당시 재가신자들의 관심사와 고민은 다양했음을 볼 수 있다. 세속적인 관심사에서 철학적인 관심과 수행에 대한 관심까지 다양하다. 세속적인 관심은 신통력과 관련된 것이나 자식들에게 재산을 빼앗기고 버림받은 늙은 바라문의 하소연, 사람들 관계에 대한 내용 등이 있다.

철학적인 질문의 경우는 행위하는 자와 경험하는 자는 같은지 다른지에 대한 질문, 모든 것은 존재하는가 존재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이나 세계의 다양성의 원인에 대한 질문 등이다.

수행 관련 질문도 많다. 성스러운 제자들은 어떤 수행을 자주 닦아야 하는지, 현세에서 완전한 열반에 들지 못하는 원인과 조건은 무엇인지와 청정한 삶의 원인과 조건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도 있다. 그리고 바른 길은 무엇이며, 해탈로 인도하는 길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보시와 보시의 공덕에 대한 질문도 있다.

이러한 내용 이외에도 허물없는 음식에 대한 질문, 고행을 통해 행복을 얻을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 청정함은 무엇인지에 대한 질문, 걸식의 의미는 무엇인지, 세속일의 포기란 무엇인지 등의 질문들이 나온다.

경전에 나오는 이러한 내용들을 보면, 지금 우리가 사는 현재에도 여전히 통용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지금 우리들도 신통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고, 사람들 관계 때문에 고민하기도 한다. 한편 철학적인 내용에 특히 관심을 갖기도 하고, 수행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있지 않은가.

경전에서 이들은 대부분 부처님의 가르침을 듣고 올바른 믿음과 이해를 갖추게 되면서, 거사로서의 삶을 선택하게 된다. 그들은 그 감동을 눈이 떠지고, 귀가 들리고, 어둠속에서 등불을 만난 것과 같은 기쁨으로 표현하고 있다.

경전에서는 부처님이 재가제자들을 위해 도덕의 중요함, 즉 계의 공덕을 말씀하신 것도 많다. 대표적으로 ‘앙굿따라니까야’의 ‘남자 재가신자의 품’과 ‘상윳따니까야’의 ‘거사의 품’에서는 5계의 중요성과 그로 인해 삼악도를 벗어나 깨달음의 길로 나아갈 수 있다는 가르침이 설해지고 있다.

한편 조금 특별한 내용의 경전도 전한다. 부처님이 거사들의 이름을 나열하면서 그들이 불사, 즉 죽음이 없는 경지를 발견하고 실현했다고 선언하시는 내용이다. 우리들에게 익숙한 급고독장자로 알려진 수닷타 아나타핀디카, 부처님의 주치의였던 지와카 코마라밧차 등을 비롯한 21명의 장자들이 여섯 가지 원리를 갖추어서 구경에 이르고, 불사를 발견하고 불사를 실현하며 지낸다는 선언이다.

▲ 이필원
동국대 파라미타칼리지 교수

 

 

 

글의 앞에서 ‘대반열반경’의 내용, 즉 사부대중이 모두 스승의 가르침을 잘 이해하고, 실천하며, 남에게 훌륭하게 설명할 수 있게 되면 열반에 들겠다는 부처님의 말씀을 소개했다. 이를 토대로 생각해 보면, 거사란 단순히 신행을 실천하며 승가를 외호하는 역할에 그치는 것은 아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수행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전법의 역할도 주어져 있음을 확인하게 된다. 올바른 수행을 지향하는 스님들과 불교를 외호하는 것도 훌륭한 일이지만, 그것만으로는 부처님의 제자 된 도리를 다했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거사의 삶을 사는 자는 한편으로 수행자이기도 해야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을 올바로 배우고 이해하려 노력도 하고, 널리 알리려는 노력도 해야 한다. 이를 간결하게 표현하면, ‘끊임없이 공부하고, 수행하며, 회향한다’가 될 것이다. 거사가 이렇게 자리매김할 때, 한국불교가 더욱 튼튼해지고 건강해 질 것이다. 거사들 스스로는 자신들의 역할을 너무 축소해서 인식해서는 안 되고, 종단에서는 거사들이 활동할 수 있는 영역을 확대해 가는 적극성이 필요하다. 그것이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 땅에 실현하는 하나의 중요한 방법이 될 것이다.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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