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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의 성보] 3. 남북 이어주는 닮은꼴 성보문화재

남북 불자들 신심 깃든 성보, 어쩜 이렇게도 닮았을까

▲ 북한 내금강에 자리 잡은 묘길상 마애불. 조계종 민추본 제공

▲ 남한 경주 남산 상선암 마애불. 불교문화재연구소 제공

4월27일 제3차 남북 정상회담과 역사적인 ‘4·27 판문점 선언’으로 남북 문화교류에 청신호가 켜지고 있다. 남북 정상들은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문화유산 교류를 통해 남북의 역사와 문화적 동질성을 회복하고 끊어진 핏줄을 하나로 잇는 노력을 재개하겠다고 약속했다. 선조들이 빚은 문화유산을 함께 살피고 연구하면서 한민족의 정체성을 계승해 나가겠다는 취지다. 사실 남북의 일체감을 확인시켜 주는 것은 남북 불자들이 신심으로 조성한 성보문화재를 통해서도 쉽게 확인된다. 남과 북이라는 거리를 두고 있지만 쌍둥이처럼 빼닮은 성보들이 적지 않다.

내금강 묘길상과 상선암 마애불
얼굴 쪽 입체감 살린 부조 같아

금장암 사자탑과 화엄사 사자탑
고려초기 건축술 보여주는 유물

보현사8각탑과 월정사 석탑은
추녀끝의 풍경 장식까지 일치
다각형 다층석탑 전통 만들어

정양사 육각등과 계성리 석등
양식 흡사해 ‘쌍둥이’로 불려

내금강 심장부에 자리 잡은 묘길상 마애불과 경주 남산 상선암 마애불은 쌍둥이처럼 닮은 대표적인 성보문화재이다. 북한 국보유적 제102호 묘길상 마애불은 앉은키가 15m에 이른다. 얼굴과 손발 길이만 각각 3m가 넘어 웅장함에 압도당한다. 암벽을 돔 형식으로 쪼아 그 안에 부조해 넣은 좌상으로 양 무릎의 폭이 9.4m다. 고려시대 마애불로는 가장 큰 규모다.

두 마애불은 얼굴과 손은 입체감을 살린 환조식 부조 묘사인 데 비해 양어깨에 걸친 법의의 옷 주름과 발은 얕은 저부조로 표현돼있다. 의습은 깊은 음각 선묘이고 눈·코·입, 손과 손톱, 발가락 등은 입체감이 살아있다. 또 상체가 긴 비례와 도식화된 의습 처리는 신라 석불형식을 탈피한 고려전기 경향을 뚜렷이 보여주는 것으로 10~11세기 전형적인 돌부처, 거불(巨佛)양식을 따른 마애불이다.

북한 국보유적 제100호인 금강산 금장암(金藏庵) 사자탑과 남한 국보 제35호 구례 화엄사 사사자3층석탑은 조성 양식에서 닮은꼴 문화재다. 두 석탑은 화강암으로 만든 3층탑으로 사각형 지대석 위 네 귀퉁이에 돌사자를 한 마리씩 앉히고 그 가운데에 불상을 놓았다.

▲ 북한 국보 제144호 묘향산 보현사8각13층 탑.

▲ 한 국보 제48-1호 월정사8각9층석탑.

금장암 사자탑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금장골 금장암터에 있는 고려 초기 이형 탑이다. 높이는 3.87m로 돌사자와 돌부처 다듬새가 매우 정교한 것은 아니나 두 다리를 힘차게 버티고 앉은 늠름한 체구와 용맹스러운 돌사자 모양은 다른 탑의 기단보다 견고하고 위엄 있는 모습을 보여준다. 금장암 사자탑은 고려 초기 석탑 양식과 건축술을 잘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남한의 사자탑은 통일신라시대에 건조한 전라남도 구례군 화엄사의 사사자3층석탑을 필두로 몇 기가 남아있다. 높이 5.5m의 국보 제35호 화엄사 사사자3층석탑은 화엄사를 창건한 연기조사의 효심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는 전설도 있다. 전체적인 탑 모양은 연기조사가 편단우견 우슬착지한 자세로 머리에 석등을 이고 있는데, 왼손으로 찻잔을 들고 찻잔 위에 여의주를 받쳐 어머니에게는 진리를 공양하고 부처님에게는 차 공양을 올리는 모습을 하고 있어 세간과 출세간이 둘이 아닌 경지를 느끼게 해준다.

수행자에게는 용맹정진과 반야의 힘을, 불효자에게는 효의 정신을 일깨워주는 이 탑은 능숙한 기법과 균제된 조형미를 지닌 신앙의 결정체로서 불국사의 다보탑과 더불어 통일신라 석탑예술의 극치로 평가받고 있다. 각 부분의 조각이 뛰어나며, 지붕돌에서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고 있어 통일신라 전성기인 8세기 중엽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러한 조성 양식은 월악산 사자빈신사터와 홍천 괘석리 사사자석탑으로 그 맥이 이어졌다.

▲ 북한 국보 제100호 금강산 금장암 사자탑.

▲ 남한 국보 제35호 화엄사 사사자3층석탑.

북한 국보유적 제144호 묘향산 보현사8각13층탑과 남한 국보 제48호 평창 월정사 팔각구층석탑도 같은 형식으로 조성됐다. 두 탑 모두 기단과 탑신부, 탑머리 장식인 상륜부 등 크게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형식과 장식 등에서 고려 초부터 유행하기 시작한 다각다층 석탑의 특징을 보여 주고 있다. 여기에 청동으로 만들어진 풍경과 금동으로 만들어진 머리 장식은 고려시대의 뛰어난 금속 공예 기술을 자랑한다. 고려시대 때 4각형 평면에서 벗어난 다각형 다층석탑이 우리나라 북쪽지방에서 주로 유행했는데 이들 탑도 그런 흐름 속에서 만들어졌다.

보현사 주불전인 대웅전 앞뜰에 세워진 8.58m 높이의 보현사 8각13층탑은 북한 돌탑 가운데 층수가 가장 많으며 완전한 형태를 보이는 석탑 중 하나다. 6.58m의 탑신은 위로 올라가면서 그 돌의 높이와 너비를 차례로 줄여서 높지만 안정된 느낌을 준다. 8각으로 된 층 추녀 끝마다 풍경이 달려있는데 한국전쟁 때 파괴됐던 것을 최근 복원했다.

남한 국보 제48-1호인 월정사 8각9층석탑은 우리나라 다각다층탑 중 가장 높은 것으로 높이가 15.2m에 달한다. 보현사8각13층탑과 마찬가지로 추녀 끝에 동으로 만든 풍경이 달려 바람이 스치고 지나가면 맑은소리가 오대산에 울려 퍼진다. 한국전쟁 때 절이 불에 타면서 큰 피해를 입었는데 보수 공사 중 탑신부 1층에서 사리공과 사리 장치가, 5층에서는 은으로 도금된 여래입상이 나와 눈길을 끌었다.

금강산 정양사 육각석등과 화천 계성리 석등도 양식적인 면에서 매우 흡사해 쌍둥이 석등으로 불린다. 일반적으로 석등은 불을 밝혀두는 화사석(火舍石)을 중심으로 아래로는 이를 받쳐주는 3단의 받침돌을 쌓고, 위로는 지붕돌과 머리장식을 얹었다. 하지만 이 둘 석등은 신라시대에는 8각, 고려시대에는 4각인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6각의 형태를 취하고 있다. 정양사 육각석등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에 소재한 정양사 경내에 건립된 높이 3m 규모의 석등이다. 하대석부터 옥개석까지 모든 부재가 육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보물 제496호 화천 계성리 석등은 강원도 화천군 하남면 계성리 폐사지에 있는 높이 2.3m 규모의 고복형 석등이다. 전체적인 면에서는 육각형 석등 양식을 지니고 있어 통일신라 때 전라도 지역에서 성행했던 양식인 실상사 석등과 담양 개선사지 석등에서 영향을 받았다. 제반 양식은 앞 시대 석등 양식을 변형시켜 고려시대에 새롭게 탄생시킨 석등의 한 유형이다. 계성리 석등과 정양사 석등은 고복형 간주석을 제외하면 여러 면에서 양식적인 공통점이 존재하고 있어 강원도에서 유행하던 특수양식으로 보인다.

이현수 불교문화재연구소 팀장은 “남북이 함께 꽃피워 온 불교문화를 살피는 것은 한민족의 동질성을 찾아가는 과정이 될 것”이라며 “남북관계가 하루빨리 개선돼 문화재에 대한 체계적인 연구와 학술교류를 통해 남북 불교문화에 대한 새로운 정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임은호 기자 eunholic@beopbo.com
 

[1440호 / 2018년 5월 1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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