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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불교 자긍심 성역화 불사에 수희동참 기대

기자명 법보신문
  • 사설
  • 입력 2018.05.22 10:40
  • 댓글 1

조계종 총본산 성역화를 위한 모연불사가 5월18일 시작됐다. 조계종의 위상제고와 한국불교의 자긍심을 새롭게 다질 수 있는 의미 깊은 불사라고 본다. 그 이유는 지난 80년 동안 총본사의 역할을 수행해온 조계사의 역사가 방증한다.

1905년 을사늑약이 체결된 직후인 1906년 통감부의 지원 속에 이 땅에는 1911년까지 진·일련·정토·진언·조동·임제종 등 6개 종파가 설립한 별원과 포교소만도 167개나 세워졌다. 그들의 주 임무는 조선 침략의 당위성과 조선인의 저항의식을 약화시키는 데 있었다. 일본의 야욕을 간파한 뜻있는 전국 스님들은 의연금을 모아 중동중학교 자리에 각황사를 창건(1910)하며 일본불교에 맞서기 시작했다. 1911년, 사찰을 병합, 이전(移轉) 또는 폐지하려면 조선총독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 ‘사찰령’을 발표했는데 지방장관의 허가를 받지 않고는 사찰에서도 전법(傳法), 포교, 법요집행(法要執行)조차 할 수 없게 했다. 조선의 사찰 행정은 물론 종교활동 자체도 통제했던 일본이다.

일본불교의 대척점에 서서 조선불교의 정통성을 지켜가며 민족의 자긍심을 키워내야 할 상징적인 사찰의 필요성을 절감한 한국불교계는 1937년 3월 각황사 이전을 포함한 총본산 대작불사 추진을 최종 가결했다. 눈여겨 볼 점은 보천교의 십일전을 옮겨와 총본사의 대웅전으로 삼았다는 사실이다. 제주도 항일봉기, 물산장려운동을 지원과 함께 민족해방운동가들과의 긴밀한 연대를 통해 독립을 갈구하는 열망을 불어 넣고 있던 단체가 보천교였다. 총본산 성지에 민족자존의 정신을 더욱 더 분명하게 밝혀 보려 했음이다. 근·현대를 잇는 역사 속에서의 전법은 이때부터 시작됐다. 1920년대 불자인구는 15만도 안 됐지만 총본산 건립 후인 1942년에는 25만명에 이르렀다.

불교진흥과 함께 한반도의 평화와 번영의 힘을 응집하는 도량으로도 거듭나게 하는 불사다. 사부대중의 수희동참을 기대한다.


[1441호 / 2018년 5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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