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참괴의 의미

불기 2562년 부처님오신날을 기념하는 연등회 제등행렬 행사가 5월12일 봉행되었다. 이날 하염없이 내리는 비를 바라보는 우리 불자들의 마음은 더욱 무거울 수밖에 없었다. 한국불교계의 가장 큰 축제를 앞두고 방영된 ‘큰스님께 묻습니다’라는 시사프로그램, 사실 여부를 떠나 이같은 내용이 방송되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한국불교는 씻기 어려운 상처를 입게 되었기 때문이다.

그리 오래된 일이 아니다. 지난 2012년 부처님오신날을 앞두고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여러 명의 승려들이 호텔 방에서 도박을 하는 동영상이 방송되었고, 그해의 봉축행사 역시 어수선한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꼭 6년 만에 조계종은 또다시 세인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상황에 처하고 말았다. 그리고 마치 데자뷰 현상처럼 조계종단은 5월16일 종무회의를 통해 ‘교권 자주 및 혁신위원회 설치 운영에 관한 령’을 제정 공포하면서 이 사태의 수습에 나서고 있는 모양새다.

종단의 행정과 교육을 책임지는 최고 수장들에 관계된 내용이 방송되었다는 점에서 이번 사태의 심각성은 그 어느 때보다 더하다고 하겠다. 종단 일각의 주장처럼, 만약 이번의 방송 내용이 왜곡 조작된 것이라고 한다면, 이는 한국불교 전체의 명운을 걸고 이 땅의 불교도 모두가 나서야 할 일임이 분명하다. 하지만 방송 제작자들의 편향성을 탓하기 이전에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사항이 하나 있다. 이미 작년 총무원장 선거 과정에서부터 제기되었던 각종 의혹을 왜 여태껏 방치하고 있었는가 하는 책임 소재와 관련한 문제이다. 총무원장스님 본인이 되었든, 아니면 그를 보좌하고 있는 종단 집행부 구성원이 되었든 이런 사태를 야기한 책임은 반드시 누군가가 지어야 한다. 그래야 우리는 비로소 그 다음 단계의 발전적 논의를 진행할 수 있을 것이다.

언제인가부터 잘 쓰이지 않는 불교 수행의 덕목이 있다. 바로 ‘참괴(慚愧)’라고 하는 수행 덕목이다. 아마도 참괴는 참회와 비슷한 뜻을 지니고 있는 단어로 인식되었던 것 같으며, 그 결과 오늘의 불교 수행자들에게는 그 의미조차 생경한 단어가 되어버렸다. 참괴는 참회와 그 뜻이 다르다. 부끄럽다, 수치스럽다는 의미의 ‘괴(愧)’자가 붙어있기 때문이다.

참괴는 특히 ‘열반경’에서 강조되었던 수행 덕목이다. 진정한 참괴의 의미를 되새겨보기 위해 경구 일부를 옮기면 이러하다. “참은 마음속으로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괴는 남을 향하여 부끄러운 일을 드러내어 말하는 것이니라. 참은 사람에게 부끄러워하는 것이고, 괴는 하늘에 부끄러워하는 것이니라. 이것을 참괴라 하느니라. 참괴가 없는 자는 사람이라 할 수 없고 축생이라 할 것이니, 부끄러움이 있는 까닭에 사람이라 하느니라.”

온몸에 전율을 느끼게 하는 경구이다. 부처님께서는 짐승만도 못한 사람이 되지 않으려면 부끄러움을 지녀야한다고 하셨다. 그것도 그냥 자신 안에서 느끼고 마는 부끄러움이 아니라, 남을 향하여 자신의 부끄러움을 분명하게 드러내놓고 말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계신 것이다. 또한 같은 경에서 부처님은 “설령 죄를 지었더라도 덮어두지 말고 감추지 말라. 덮어두지 않음으로써 죄가 곧 가벼워지는 것이며, 부끄러운 마음을 가지면 죄도 곧 소멸되리라”고도 하셨다. 부끄러운 마음을 느끼고, 그 부끄러움을 남에게 내보이면 죄도 곧 소멸된다는 이 ‘열반경’의 경구는 단지 수행자뿐 아니라, 오늘을 사는 우리들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연등회 날 내리는 비를 ‘우화(雨花)’로 미화하는 태도는 옳지 못하다. 방송사를 상대로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는 조작된 것이라고 따져드는 일도 급하지 않다. 2018년 현재의 승단과 재가불자 모두에게 가장 필요한 일은 바로 오늘부터 ‘참괴’하는 일이다. 이 글을 쓴 논자부터 다시금 참괴의 가르침을 받들고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해본다.

김상영 중앙승가대 교수 kimsea98@hanmail.net
 


[1441호 / 2018년 5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 이 기사를 응원해주세요 : 후원 ARS 060-707-1080, 한 통에 5000원

저작권자 © 불교언론 법보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광고문의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

매체정보

  • 서울특별시 종로구 종로 19 르메이에르 종로타운 A동 1501호
  • 대표전화 : 02-725-7010
  • 팩스 : 02-725-7017
  • 법인명 : ㈜법보신문사
  • 제호 : 불교언론 법보신문
  • 등록번호 : 서울 다 07229
  • 등록일 : 2005-11-29
  • 발행일 : 2005-11-29
  • 발행인 : 이재형
  • 편집인 : 남수연
  • 청소년보호책임자 : 이재형
불교언론 법보신문 모든 콘텐츠(영상,기사, 사진)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와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ND소프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