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 웁팔라반나 ③
20. 웁팔라반나 ③
  • 김규보
  • 승인 2018.05.22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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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착하는 마음이 곧 괴로움이다”

첫 번째 남편은 어머니와, 두 번째 남편은 딸과 정을 통했다. 웁팔라반나는 마음속으로 절규했다. 첫 번째 남편과 엄마의 관계를 알면서도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딸의 존재 때문이었다. 누워만 있던 아이가 옹알이를 시작하고 몸을 뒤집고 일어나 걷고 뛰는 모든 과정이 기쁨이었다. 그것이 아니라면 지옥 같은 집에서 7년이라는 세월을 보낼 이유가 없었다. 그만큼 사랑했다. 사랑한다고 믿었다. 그런 딸이 지금 남편의 두 번째 부인이 되어 나타나다니. 누굴 탓해야 하나, 감도 잡히지 않았다. 차마 딸의 얼굴을 보지 못하고 고개를 떨구었다. 처음 집을 나설 때 잠든 딸의 얼굴을 어루만졌던 것처럼 딸의 얼굴에 살며시 손을 갖다 댄 뒤 고개를 숙인 채로 집 밖으로 뛰쳐나갔다. 고통스럽고 두려웠다.

사랑하는 딸 두고 집 뛰쳐나와
고통 속 거리 헤매다 붓다 만나
깨달음 얻어 애욕·집착 버리니
번뇌 여의고 아라한 경지 올라


살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죽을 힘도 없었다. 너저분하게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얼굴에 덮고 길바닥에 누워 잠을 잤다. 아침이건 밤이건 눈을 뜨면 몸을 흐느적거리며 돌아다녔다. 잊고 싶었으나 잊을 방법을 찾지 못하여 자꾸 떠오르는 얼굴들에 저주 섞인 말을 뱉곤 했다. 그러다 딸이 생각나면 주저앉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두 명의 남편과 엄마와 딸이 번갈아가며 웁팔라반나의 머릿속을 흔들었다. 뜨거운 불덩이가 목구멍을 거슬러 올라가 머리끝까지 닿을 때면 웁팔라반나는 견디지 못하고 혼절했다. 정신을 차려도 다시 뜨거운 불덩이가 올리오기를 반복했다. 너무나 큰 고통이었다.

어느 날, 북적이는 길을 걷고 있는데 웅성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완전한 깨달음을 얻은 붓다에게 설법을 들으러 간다는 이야기였다. 도대체 어떤 이유로 지옥보다 절망적인 삶을 살게 된 건지, 고통을 조금이라도 덜어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물어보고 싶었다. 웁팔라반나는 붓다에게로 가는 사람들의 뒤를 따랐다. 몇날며칠을 걸어 승원에 도착했다. 이미 군중이 모여 설법을 듣고 있었다. 그들을 헤치고 앞으로 나아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반드시 물어보아야 했다. 멀리서 붓다가 보였다.

“태어나서 늙고 병드는 것은 고통이다. 사는 것은 괴로움이다. 이 진리를 잊지 말라.”

세상 모든 고통이 자신의 어깨에만 포개진 것 같아 더욱 고통스러웠던 나날이었다. 절망할수록 세상은 멀어져갔다. 그들은 자신의 불행과는 상관없이 늘 행복해 보였다. 그런데 산다는 것 자체가 고통이라니, 이게 무슨 말일까. 붓다 앞까지 나아가 세 번 절하고 고개를 들었다. 떨어지는 눈물을 닦아내며 그간의 기구한 세월을 이야기했다.

“붓다시여. 죄를 짓지 않고 살아왔는데도 엄청난 괴로움을 겪고 있습니다. 왜 저에게 이런 불행이 찾아온 것입니까.”
“웁팔라반나여.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 태어나서 늙고 병드는 것만이 고통은 아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집착하는 마음이 곧 괴로움이다.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것도 고통이다. 이것은 욕망에서 비롯됐으니 갈애라고 한다. 갈애를 없애지 않는다면 그대는 앞으로도 고통받을 것이다. 갈애를 없앤다면 그대는 행복할 것이다.”

붓다의 말을 듣고 깨달았다. 두 남편과 엄마 그리고 딸의 애욕과 집착뿐 아니라 자신의 집착도 이토록 커다란 괴로움을 만든 원인이었다는 사실을 비로소 알 수 있었다. 눈물이 쏟아졌으나 더 이상의 괴로움은 없었다. 대신에 기쁨이 샘솟았다. 붓다에게 출가를 청했다. 붓다가 미소를 지으며 허락했다. 다른 비구니와 함께 정진에 정진을 거듭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모든 번뇌와 고통을 여의고 아라한의 경지에 올랐다.

“마음을 제어했고 여섯 가지 바른 앎을 얻었다. 붓다의 법을 실현했다. 쾌락과 욕망은 이제 나에겐 불쾌한 것이다. 쾌락은 모든 곳에서 파괴되었고 무명이라는 암흑은 부수어졌으니 악마여 이와 같이 알라. 내게 두려움은 없다. 너는 패배했다.” <끝>

김규보 법보신문 전문위원 dawn-to-dust@hanmail.net
 


[1441호 / 2018년 5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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