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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말랄라의 나이

기자명 김정빈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꿉니다”

▲ 그림=근호

2005년, 광신적인 이슬람 근본주의 조직인 탈레반의 지도자 마울라나 파즐울라가 파키스탄의 스와트 지역에서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는데, 그는 탈레반의 창시자인 무함마드 오마르의 사위였다.

최연소 노벨평화상 수상자 말랄라
10세 때 부토 전 총리 연설 듣고
자국의 평화 위해 싸우겠다 다짐

웹사이트에 일기 올리며 큰 반향
하굣길 탈레반에 총상 입기도

“절망 속에서 힘과 용기 태어난다”
뉴욕 UN본부 연설로 기립박수

붓다 “나이로 위아래 나눌 수 없어”
큰 뜻 가진 이 나이는 숫자에 불과

파즐울라 추종자들에게 서양에서 들어온 모든 것은 비난과 저주의 대상이었다. 그들의 신념에 따르면 예방 접종을 해서는 안 되었고, 서양식으로 머리를 잘라서도 안됐다. 그들에 의해 음반을 파는 상점들이 파괴됐다. 정부는 파즐울라와 협상을 벌였지만 스와트 지역에서 공권력을 무시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그들을 제어하기에는 역부족이었다.

2007년 10월, 파키스탄 최초의 여성 총리였던 베나지르 부토가 망명지인 영국에서 돌아오고 있었다. 그는 TV를 통해 지지자들에게 말했다. “우리는 극단주의와 무장 세력을 국민의 힘으로 물리쳐야 합니다.” 두 달 뒤에 암살당한 그녀는 자신의 연설에 귀 기울이는 한 소녀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스와트 지역에 살고 있던 그 소녀 말랄라 유사프자이(Malala Yousafzai)는 부토의 연설을 들으며 마음속으로 약속했다.

‘나는 우리나라의 평화와 민주주의를 위해 싸울 거야.’

2008년 12월 말, 파즐울라는 내년 1월15일 이후 모든 여자는 학교에 다녀서는 안 되며, 이를 어길 경우 부모와 교장에게 책임을 묻겠다고 선언했다. 말랄라가 다니는 학교의 창립자이자 교장은 그녀의 아버지였다. 고민에 빠져 있는 그에게 영국 BBC방송 특파원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탈레반 치하에서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를 웹사이트에 일기 형식으로 써줄 사람을 찾고 있었다.

“난 안 돼요?”하고 아버지에게 물었다. 두려움에 떨며 모든 사람이 거절한 다음이었다. 방송국 측이 자신보다 나이 많은 사람을 원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그러나 열한 살 소녀 말랄라는 생각했다. ‘어쩌면 내 글이 파키스탄 밖에 있는 사람들에게 읽힐지도 몰라.’

그녀가 가명으로 웹사이트에 올린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다. 말랄라는 TV 인터뷰에 나가 당당히 말했다.

“나는 어느 누구도 두렵지 않습니다. 어떤 일이 있더라도 내게 필요한 교육을 받을 것입니다.”

마침내 그녀의 신분이 밝혀졌다. 곤봉을 들고 도시를 순찰하다가 여자를 붙잡아 태형을 가하는 짓을 예사로 하는 탈레반에게 말랄라와 그녀 가족의 신분은 바람 앞의 등잔불 처지였다. 그녀가 가족과 함께 고향을 떠났다가 돌아오는 동안 정부군에 의해 탈레반 세력이 약화되어 학교에 복학할 수 있었던 것은 그나마 다행이었다.

2011년 10월,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국제아동인권평화상을 받았다. 같은 해, 그녀는 파키스탄 정부가 수여하는 최초의 평화상을 수상했다. 2012년 초, 탈레반은 포털사이트 구글에 “말랄라 유사프자이는 죽어야 마땅하다”라는 경고의 글을 올렸다.

그해 여름, 탈레반은 ‘천박하고 음란하게’ 소풍을 가기도 하는 여학생들을 비난하는 내용의 벽보를 시내 곳곳에 붙였다. 2012년 10월 9일, 말랄라는 학교에서 시험을 치른 후 친구들과 함께 트럭을 타고 하굣길에 올랐다. 중간에 젊은 남자 한 사람이 트럭을 가로막고 이 차가 쿠샬학교 통학차인지를 물었다. 또 다른 남자가 뒤쪽으로 뛰어 올라오더니 소리쳤다.

“말랄라가 누구냐?”

탕, 탕, 탕. 세 발의 총성이 울렸고, 그중 한 발이 말랄라의 왼쪽눈 옆 관자놀이를 뚫고 들어가 46cm를 이동한 후 왼쪽 어깨에 박혔다. 그로부터 7일 후, 말랄라는 영국의 한 병원에서 의식을 회복했다. 대통령의 특별한 배려를 받아 영국으로 긴급 후송되었던 것이다.

그녀가 잃었던 언어 능력을 회복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세계 각지에서 위로 전문이 속속 날아들었다. 주소 대신 ‘버밍엄의, 머리에 총을 맞은 소녀에게’라고 쓰인 편지도 있었다. 베르나르 부토의 자녀들은 평소 부토 총리가 머리에 썼던 스카프 두 장을 보내왔다.

2013년 7월12일, 말랄라는 자신의 열여섯 번째 생일에 뉴욕 UN 본부에서 반기문 사무총장을 비롯한 각국 대표 앞에서 연설하여 기립박수를 받았다. 그 연설에서 그녀는 말했다. “탈레반은 제 이마에 총을 쐈습니다. 제 친구들도 쐈습니다. 그들은 그 총알로 우리 입을 막을 수 있을 거로 생각했겠죠. 하지만 변한 건 없습니다. 죽은 건 약함, 두려움, 절망의 사망이었고, 그 사망으로부터 힘, 능력, 용기가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말의 힘과 파급력을 믿습니다. 책과 펜을 듭시다. 그것이야말로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한 아이, 한 선생님, 한 권의 책, 한 자루의 펜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교육이 오직 해결책이며, 교육이 우선입니다”

2014년, 말랄라 아사프자이는 열일곱 살의 나이로 노벨평화상을 수상했다.

노벨상은 모든 사람들이 가장 영광스럽게 여기는 상이다. 노벨상 수상자들의 대부분은 나이가 지긋이 든 다음에 이 상을 받는다.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대단한 업적을 젊은 나이에 이루기는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 점에서 말랄라 아사프제이의 사례는 놀랍다. 아니, 놀라울 정도가 아니라 경악할 정도이다. 열일곱 살이라니! 열일곱 살에 노벨평화상 수상자가 되다니! 그게 가능한가? 정말로 그게 가능한가?

열일곱 살이라면 우리로 보면 고등학교 2학년 학생에 불과하다. 고등학생을 무시할 생각은 없지만 우리의 고등학교 2학년생은 대학입시, 당장 이번 달에 치러질 시험에 관심을 기울일지언정 노벨상이라는 거창한 목표를 향해 달려가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말랄라가 노벨상을 목표로 활동한 것은 아니다. 필자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그녀가 그 나이에 노벨상을 받을 정도의 전 인류가 보편적으로 갖는 관심사에 자신의 생명을 내맡겼다는 사실이다.

부처님께서는 빔비사라 왕과의 만남에서 세자와 붓다는 나이로써 위아래를 나눌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세자는 장차 왕이 될 것이기 때문에, 각자는 범속을 뛰어넘은 지혜를 갖고 있기 때문에 나이를 초월하여 존경받게 된다는 뜻에서 하신 말씀이었다. 그 점에서 말랄라 아사프제이는 제자와도 같았다. 아니, 그녀는 미래의 왕이 아닌 현재의 왕이 되었다. 말랄라 유사프제이는 뜻이 아주 큰 사람, 큰 뜻에 목숨을 건 사람에게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뚜렷한 모습으로 보여준 당차고도 명랑 유쾌한 소녀였다.

김정빈 소설가 jeongbin22@hanmail.net
 


[1441호 / 2018년 5월 2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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