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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산 스님이 마지막 남긴 열반송 의미는

기자명 법보신문
  • 기고
  • 입력 2018.05.29 10:55
  • 수정 2018.05.29 14:37
  • 댓글 1

김형중 문학평론가(동대부여중 교장·문학박사)가 5월29일 설악무산 스님의 원적을 추모하는 글을 보내왔다. 김형중 평론가는 ‘상(相)이 없는 무심(無心)한 도인, 경계가 없는 무애자유한 탈속한(脫俗漢) 아득한 성자 오현 큰스님을 애도합니다’라는 글을 통해 무산 스님과의 오랜 인연을 소개하고, 무산 스님이 남긴 열반송에 담긴 의미를 새롭게 해석했다. 편집자

만해 이후 가장 큰 문학적 성과
수많은 문인들의 자녀도 후원
법어로 국민들에 청량감 선사
열반송은 부끄럽다는 표현 아닌
사량분별 하지 말라는 가르침

 
천하의 영웅도 세월은 이기지 못한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불교의 큰 별인 설악 오현 큰스님께서 2018년 5월 26일 오후 5시 11분에 신흥사에서 87세에 돌아가셨습니다. 부처님의 수복(壽福)인 불세(佛歲)보다도 7년을 더한 천수를 누렸으나 큰스님의 원적(圓寂) 부음을 접한 문재인 대통령에서 강원도 인제의 촌부에 이르기까지 국민들의 마음은 한결같이 애통해 하고 있습니다.

한국불교를 지탱한 성철 큰스님, 법정 큰스님이 떠나시고 큰스님마저 기미도 없이 우리 곁을 떠나시니 우리 불자들은 누구를 의지하고 등불 삼아서 신행해야 하는지 황망하여 슬픔을 감당할 수가 없습니다. 작금에 우리 교단에 어려운 일이 많아서 큰스님의 가르침과 지혜가 어느 때보다도 필요한 때인데 무엇이 그쪽 일이 바쁘시다고 홀연히 가셨습니까?

큰스님, 신문과 TV에서 ‘이 시대 마지막 도인이 떠났다’, ‘무애도인 오현 스님이 떠났다’, ‘영원한 수행자, 설악산 큰 별 오현 스님 입적’, ‘아득한 경지에서 격외가 부르던 무산 오현 스님 입적’ 등의 제호로 연일 큰스님의 서거를 안타까워하며 보도하고 있습니다. 큰스님의 소탈하고 평등하게 사람들을 교화하신 덕화와 경계를 초월하여 걸림이 없는 무애자유한 도력을 그리워하는 모양입니다.

큰스님을 만해 한용운 스님 이후 가장 큰 문학적 업적과 성과를 이룬 승려 시인이라고 평가합니다. 만해의 후예로서 한문으로 된 선시를 알기 쉬운 한글 선시(오도시)로 표현한 시인으로 한국문학사에서 시조선시의 영역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조의 보급 운동에도 이바지하였습니다. 그 공로로 정지용문학상, 공초문학상, 고산문학상, 한국문학상 등을 수상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만해문학을 선양하기 위하여 만해마을을 조성하고, 매년 8월에 만해축전을 열어 만해대상과 유심문학상을 제정하여 수여하였습니다.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웰레 소잉카 시인을 비롯한 한국의 문학대가들이 이 상을 받은 것을 자랑으로 삼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저에게도 ‘유심(만해 스님이 창간한 문학지를 복간함)’에 선시(禪詩)를 발표할 기회를 주셨습니다. 제자는 처음 큰스님을 뵀을 때를 기억하며 한없이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습니다. 중국에서 선시 연구로 문학박사학위를 받아왔을 때 스님께서 저를 불러서 격려해 주시고 다른 글을 쓰지 말고 선시에 대한 공부만 계속하면 앞으로 전망이 좋다고 하명과 계시해 주셨습니다. 선물로 받은 스님의 최초의 시집인 ‘십우도’와 직접 쓰신 서예글씨 한 폭은 저의 가보로 서실에 걸려있습니다.

그때 “내가 주위의 어려운 사람에게 장학금을 주고 있는데, 네 새끼에게도 줘야겠다. 통장번호를 적어주라”고 하셨습니다. 아들인 문수의 서울대 입학등록금과 지수의 외국어대 로스쿨 입학등록금을 대주시면서 그렇게 기뻐해주셨습니다. 두 아들은 큰스님의 사랑과 가피로 격동되어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기획재정부에 근무하고 있습니다. 그때 큰스님께 감사의 인사를 드리러 간다고 했을 때 “우리가 서로 마음이 통하고 있는데 바쁜 사람들이 멀리서 올 것 없다.” 하시며 합격 격려금까지 보내주셨습니다.

제자는 큰스님이 참으로 무심(無心)한 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당신이 키운 손자가 행정 고시와 로스쿨에 합격한 것을 자랑하고 싶었는데, ‘아뿔사, 큰스님께서 이렇게 빨리 가실 줄은’ 대통령님과 똑같은 탄식을 합니다. 저희 식구에게는 스님은 ‘아버지스님’이십니다. 큰스님께서는 저희 말고도 수많은 문인들의 자녀들과 어려운 사람들을 후원하신 자비행에 대하여 모든 국민들이 감복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후로 미디어붓다에 ‘선시 백선’을 3년 동안 연재하였고, 법보신문에 ‘내가 좋아하는 불교시’를 3년 동안 연재하고 있는 중입니다. 큰스님께서는 저의 문학적 스승이십니다. 저는 ‘큰스님의 시를 한글선시’라고 최초로 규정한 문학평론가가 되었고, 큰스님의 선시를 가장 많이 평론한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큰스님께는 도도 깨달음도 없다고 하시면서도 만년에 유독 조계종기본선원 조실의 역할만은 마음을 쓰셨습니다. 젊은 스님들도 힘들어 하는 ‘무문관’에서 동안거, 하안거 6개월을 수행하는 일은 연로하신 몸으로 감당하기 힘드셨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큰스님은 그것을 젊은 구도승에게 몸소 보여드리고 싶어 했습니다.

안거 해제일의 스님의 해제법문은 스님뿐만 아니라 국민들에게도 청량감과 통쾌한 기쁨을 주었습니다. 그것은 여타의 일반인이 알아들을 수 없는 법어나 법문에서 벗어나 누구든지 알아들을 수 있는 쉽고 멋진 법문 때문에 신문방송기자들이 해제일에는 백담사 무금선원으로 몰려갔습니다.

조계종기본선원 조실을 추대할 때 젊은 수좌스님들의 평가 기준에 대하여 전해들은 풍월입니다. ‘깨달음을 얻은 사람의 기준’이 다음과 같았다고 합니다.

첫째는 큰스님 가운데 그 분의 저서(법어집, 시집)나 행적의 내용, 실제가 선 사상과 가장 잘 부합하는가? 조계종의 소의경전인 ‘금강경’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마땅히 과거 지난 생각에 머무는 마음이 없이 그 마음을 내라)’의 사상에 어긋나지 않는가? 집착하는 마음이 없는 분은 누구인가?

둘째는 상(相)이 없는 사람이 누구인가? 겸양하고 하심하여, 완전히 마음을 내려놓은 분은 누구인가? 무심(無心)한 사람이 누구인가?

셋째는 경계가 없는 초탈한 분은 누구인가? 그래서 걸림이 없어 무장무애하여 자유로운 분이 누구인가? 세속에 초탈한 분이 누구인가?

넷째가 고통 받고 있는 중생 곁에서 소통하며 자비행을 실천하는 분이 누구인가?

이 평가에서 큰스님이 선택되어 추대되었다고 들었습니다. 큰스님은 위의 네 가지 조건을 잘 갖추신 선지식입니다. 그러하니 어찌 큰스님께서 수좌들 앞에서 위법망구(爲法忘軀) 몸을 돌볼 수가 있겠습니까?

아, 큰스님께서는 가장 거룩하고 영광된 열반상을 보이시고, 천화(遷化)를 보이신 것입니다. 많이 슬프지만 큰스님의 수행과 덕화만을 항상 기억하며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열심히 살아가겠습니다.

큰스님의 마지막 말씀인 열반송을 새기면서 추모의 글을 갈무리하렵니다.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로 살다보니/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 억!”

전반부 ‘천방지축 기고만장 허장성세’는 중생들의 대표적인 행위입니다. 후반부 ‘온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는구나’는 큰스님께서 평상시에 많이 하신 말씀입니다. ‘선림승보전’에 나오는 조산 본적(曹山本寂) 선사의 ‘피모대각(披毛戴角)’의 법문입니다.

‘몸에 털이 나고 이마에 뿔이 돋아 있는’ 것은 동물이지요. 짐승이 된 것 같아 부끄럽다고 겸손을 표현한 것이라고 이해한 기자들이 있습니다. 물론 아상이 있으면 겸손이 생길 수가 없지요. 어찌 천하의 우리 큰스님께서 그런 뜻으로 마지막 말씀을 하셨겠습니까?

동물과 같이 사량분별이나 집착하는 일이 없이 수행하라는 가르침이지요. 사람들은 욕심이 많아서 금세 깨달음을 얻으려고, 시비와 차별이 많습니다. 그래서 단순한 동물처럼 초발심을 유지하며, 생각이 혼잡하지 않고 깨달음을 구해야 한다는 가르침이지요.

 
큰스님께서는 만해스님의 문학과 사상을 선양하고 기리다가 스스로 만해처럼 큰 바위 얼굴이 되어 승가의 모델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저희들은 큰스님의 가르침대로 ‘남의 눈에서 눈물을 내지 않는’ 모든 사람에게 이익을 주는 좋은 불자로 살겠습니다. 큰스님, 다시 저희 곁으로 빛으로 오소서. 가을에 오동잎이 떨어지면 그때 스님이 오시는 소리로 듣겠습니다.

불초(不肖) 제자 김형중은 곡배(哭拜)하며 추도의 글을 올립니다.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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