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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자연의 이치에 맡기고 산다

기자명 법상 스님

'내 일’ 아닌 ‘부처님 일’로 아는 것

비가 온다. 이런 날 나는 방안 널찍한 창문을 활짝 열고 차 한 잔 마시며, 생기로운 채소밭을 바라보곤 한다. 비가 오고 나면 채소도 채소지만 온갖 야생풀들이 한뼘은 족히 자란다. 채소밭에 너무 큰 풀들은 뽑아 주는데 한참 풀들을 뽑아주다 보면 뿌리가 얼마나 길고 굵은지 세상 위로 올라온 것의 몇 배 이상은 됨직한 뿌리를 보면 섬짓 이네들의 생명력에 놀라게 된다.

이렇게 뽑아낸다는 것이 어떨 때는 참 미안하기도 하고 저 녀석들도 다 이유가 있어 피어오르는 것인데 하고 생각하면 풀 뽑는 일도 잠시 머뭇거리게 된다. 그래서 될 수 있다면 풀도 그대로 함께 자랄 수 있도록 내버려 둔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는 것이 저 채소들에게도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도 될 것이고, 또한 함께 자라주는 따뜻한 이웃이고 도반이 될 수도 있지 않겠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이렇게 여러 가지 풀들이 함께 자라고 이웃 풀들과 함께 경쟁도 하고 또 서로 도와 주기도 하면서 그렇게 자라난 채소들은 겉으로 보기에는 부실하고 열매가 적을지 몰라도 그 생명력은 더욱 강인하며 실제로 병해충으로부터의 예방에도 큰 도움이 된다고 한다. 채소도 생명인데 우리 사람들하고 사는 것이 다를 리야 있겠나!

사람도 늘상 온실 속에서 자란 채소들처럼 온갖 시련과 힘겨운 경계를 당해 보지 못하고 늘 풍족하게만, 늘 보호 속에서만 자란다면 그 사람의 내적인 생명력은 빛을 잃게 되고 말 것이다. 시련과 역경 속에서 실패도 맛보면서 주춤주춤 거리다가 그래도 딱 버티며 일어서기를 몇 번이고 반복할수록 우리들의 내적인 삶의 빛은 더 생기를 띨 수 있는 법.

채소도 키워 보니까 우리하고 똑같다. 처음에 자랄 때 오이에 진딧물이 자꾸 붙길래 손으로 떼어주고 떼어주고 하다가 그래 너도 먹고 살아야지 싶어 그냥 내 버려 두었더니 며칠이 지나고 보니까 진딧물이 많이 붙은 오이에만 개미들이며, 무당벌레들이 모여 진딧물을 잡아 먹어 줌으로써 내 일손을 덜어주고 있다. 그런데 여기다가 진딧물 싫다고 농약을 막 쳐 놓았다면 개미들도 무당벌레도 모두 함께 전멸했을 것이다.

사람의 일도 마찬가지. 시련과 역경이, 힘겨운 일이 생기면 그거 이겨내려고 발버둥치다가 도저히 안 되겠다 싶을 때 그냥 주저 않아 버리지만, 그 상황이 아무리 최악이다 싶더라도 대자연 법신 부처님의 숨결에 일체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 수 있다면 분명 대자연 우주 법계에서는 해답을 내려 줄 것이다. 아무리 관찰해 보아도 자연은 참으로 신비롭고 또 정확하다는 걸 느낀다. 정확하게 그 일이 바로 그 때 정확하게 일어나고 있다. 필요한 일이 필요한 때 필요한 만큼 생겨나는 것.

우리들 머리로 그 위대한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려고만 하지 않고, 자연과 함께 그 이치에 모든 것을 맡기고 살아갈 수 있다면 저 숲 속의 생기어린 생명력과 포근함을 우리 사람들 내면에서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연의 이치에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산다는 것은 흡사 ‘내 일’이 아닌 ‘부처님 일’로 알 고 산다는 말이고, 자성불 주인공 자리에 일체 모든 것 을 맡기고 산다는 말이다. 대자연 우주가 그대로 법신 비로자나 부처님의 화신이기 때문.

이 대자연의 숨결에 일체 우리의 모든 것을 내맡기고 살면, 그래서 내 일로 잡고 살지 말고 대자연 법신 부처님의 일로 돌려 놓고 살면 우리 사람들에게서도 저 대자연의, 저 청청한 숲의 향을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법상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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