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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배용균 감독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기자명 문학산
작년 한국영화는 과거 어느 해보다도 3대 해외영화제에서의 수상에 대한 기대감이 높았었다. 심지어는 모 영화의 경우 수상 후 축하 만찬장까지 미리 예약해놓았다는 소문이 나돌 정도였다. 하지만 뚜껑을 열고 보니 모두 무관의 영예를 안았고 다만 특별언급만으로 만족해야했다.

그래도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이 칸느 본선에 진출한 것과 국내에서 평가와 흥행 양면에서 섭섭한 대접을 받았던 김기덕 감독의 ‘섬’이 베니스 영화제 경쟁부문에 진출했던 것은 한국영화의 가능성을 보여준 쾌거였다.

10년 전 한 편의 한국영화가 해외 영화제에서 그랑프리를 수상하여 언론에 주목을 받은 바 있다. 그 영화는 한 사람의 손에 의해 각본이 쓰여졌으며 촬영과 조명과 편집까지 마쳤다는 제작의 이면이 공개되자 더욱 더 세인의 관심을 증폭시켰다. 문제의 그 영화는 1989년 제 42회 로카르노 영화제에서 최우수작품상을 수상한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이라는 영화는 2년여의 제작기간과 이름없는 프로덕션과 비충무로 영화인력에 의해 완성되었다는 점에서 한국독립영화에 새로운 이력을 덧붙였다.

작년에는 단편영화의 성공에 힘입은 16mm영화가 극장에 개봉되어 한국영화계를 떠들썩하게 했다. 그 영화에 대한 찬사의 어구는 ‘진정한 영상세대의 출현’과 ‘진정한 한국형 독립영화의 전범’, ‘영화 천재의 출현’ 등으로 도배되었다. 이 표현은 한 신인 감독의 출현에 대한 환영의 의미에서 감정과잉의 수사적 찬사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엄밀하게 한국영화사를 뒤적거려보면 이미 10년 전에 독립영화의 모범을 보인 배용균의 존재를 간과한 처사로 여겨진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독자적인 프로덕션에서 독자적인 촬영. 편집. 조명작업과 해외 수상을 통한 상영관 확보라는 순서를 따져 볼 때 진정한 의미에서 한국형 독립영화의 모범을 보인 셈이다.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은 그 동안 제작된 불교소재 영화에서 소재적 한계를 벗어나 영화적 완성도를 높인 작품으로 평가되었다. 이 영화가 성취한 영화 세계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새삼스럽다. 한국영화사에서 볼 때 이 영화는 불교영화의 가능성과 함께 한국영화의 수준향상에 일조한 작품으로 분류된다. 이 영화는 창호지의 붉은색과 하늘과 계곡물의 푸른색의 배합, 마을 아이들에게 집단 구타를 당한 해진의 상징적인 죽음과 삶, 계곡물에 빠진 기봉의 죽음과 삶, 새의 죽음과 죽음의 흔적 없음을 통한 생과 사의 경계 없음, 시작과 끝의 부재 등 무수한 불교적인 가르침으로 가득 차 있다.

영화가 시작되면 ‘그는 진리를 묻는 제자 앞에 말없이 한 송이 꽃을 들어보였다’라는 자막이 나온다. 교과서적으로 말하자면 염화미소의 경지. 배용균은 관객에게 한송이 꽃으로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을 들어보인 것이다.

지난해 필자가 영화의 이해를 강의한 동국대에 스님 한 분이 수강하셨다. 그 스님께 특별히 불교영화 발표와 동시에 학생들에게 설법을 곁들여주실 것을 부탁드렸다. 강의는 편집한 비디오 클립을 본 후 영화에 대한 발표를 하는 방식이었다. 스님께서 영화를 편집할 수 없으셔서 필자가 대신하게 되었다. 꼭 필요한 장면을 여쭤봤더니 소의 장면과 혜곡스님 다비식 장면은 포함시켜 달라는 말씀을 하셨다. 소는 짧은 소견으로 심우도와 연관되어 그렇다 치고 다비식은 왜 그럴까 의문이 들었다. 스님께서 다비식은 생과 사, 성과 속의 구분을 지우는 깨달음을 주기 때문에 기봉의 길떠남에 개연성을 준다는 말씀을 덧붙이셨다. 아 그렇구나 싶어 고개를 끄덕거렸던 기억이 새로워 사족으로 붙여둔다.


문학산/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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