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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끝 마을 이색 당산제

기자명 김태형
1년중 팔월한가위와 더불어 가장 밝은 달을 볼 수 있다는 정월대보름. 전국각지에서는 각 지역의 특성과 역사가 깃든 민속놀이를 실시한다. 그중에서 가장 많이 실시하고 있는 민속행사중 하나가 바로 `당산굿 혹은 당산제'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당산제는 그 마을에서 생기복덕을 기려서 부정이 없는 깨끗한사람을 제관으로 선정, 제사를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한반도 땅끝 전라남도 해남군 송지면에서는 타지역의 일반적인 관례를 깨고 제관을 스님이 맡고 있다.

송지면 주민들이 스님을 제관으로 선정하게된 것은 바로 당산제의 금기사항을 깨기위한 혁신이었다고 한다. 매년 정월대보름이 되면 송지면에서는 다른 지역에서 볼 수 없는 스님이 제관이 되는 이색 `당산제'와 함께 이 지역에서만 전승되고 있는 12채군고 혹은 진법군고라 불리는 풍물을 친다.

송지면 서정리 마을회관 앞 당나무에서는 올해도 미황사스님을 제관으로 한 당산제를 지난 3일 정월보름달이 달마산 머리에 휘영청 밝아올 무렵 지냈다. 수령이 5백년된 당나무(은행나무) 주변에는 대나무 깃대와 새끼줄로된 금줄이 쳐져있고, 금줄이 쳐진곳에는 붉은색 황토흙이 뿌려져 잡귀의 범접을 막았다. 저녁 6시50분경 당나무 앞에는 작은 초롱이 밝혀지고 곧이어 당나무 옆에 마련된 천막에서는 정성스럽게 마련된 제수와 함께 향촉이 밝혀졌다.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올해로 8년째 송지면 제관으로 당산제를 주관하는 미황사 금강스님의 천수경 독경이 당나무 주변에 은은히 울려퍼지고, 마을 대표인 집사들의 헌향과 헌다가 이어졌다.

40여분 남짓 스님의 독경과 함께 진행된 당산제는 7시40분경 세번의 긴나발소리가 울려퍼지면서 △배큰애기 △천추만 △고대일로 불리어지는 삼신과 당나무 할머니에게 지낸 제사를 끝낸다.

수령이 5백년된 이 당나무는 신묘한 영험을 지니고 있다. 2백여년전 어느 여름날 밤 마을 사람들이 당나무 아래서 더위를 피하고 있을때 어디선가 호랑이가 나타나 그 앞에서 어슬렁거리다가 그냥 지나갔다고 한다. 이 호랑이는 당나무 아래에 있던 사람들에게 해꼬지를 하지 않고 마을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외딴집의 한 여인을 물어갔다고 한다. 그래서 마을 사람들은 당나무 아래에 있으면 당나무할머니가 지켜주기 때문에 어떠한 환란도 피할 수 있다고 믿고 있으며 매년 정월보름이 되면 당나무할머니와 삼신에게 제사를 지낸다.

이와 함께 마을 사람들이 스님을 제관으로 모시게 된 것은 당산제 준비에 따른 여러가지의 금기사항으로 인한 불편함을 해소하고자 함이었다.

매년 송지면 당산제의 풍물에서 상쇠를 맡아온 유공준옹(76세)에 따르면 유옹이 증조부가 당시 마을의 존호(지금의 이장)를 맡으면서 당산제 제관으로 선정돼, 제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그의 아내가 제사 하루전날인 정월 열사흘날에 유옹의 작은아버지를 낳아 당산제를 지내지 못한적이 있다고 한다.

이때문에 유옹은 3개월간 두문불출하며 근신을 해야만했고, 결국 속세의 금기를 초월한 스님을 제관으로 선정키로 했으며, 제수는 마을사람들이 갹출해서 마련하고 있다. 이후 마을의 당산제는 해마다 스님의 독경과 함께 차질없이 진행됐고, 스님이 제관이 되어서인지는 몰라도 마을은 그 어느때보다도 평안하다고 한다
.

한편 송지면에서 유일하게 전승되고 있는 12채군고 혹은 진법군고는 1백50여년전만 하더라도 미황사 스님들에 의해 맥을 이어왔으나 불사를 위해 제주도로 탁발을 나간 스님 40여명이 완도 인근 청산도에서 풍랑을 만나 모두 실종되면서 그 맥은 단절의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설장고를 치던 스님 1명이 구사일생으로 살아남아 진법군고를 마을사람들에게 전수했고, 지금은 마을 노인회회장인 유공준옹 등에 의해 맥을 이어가고 있다.

일반적으로 농악의 장단은 삼채와 7채가 주류를 이루고 있지만 송지면의 장단은 12채로 되어있다. 북, 장고, 꽹과리, 징, 나발의 전통악기를 사용하는 진법군고는 굿거리, 자진모리, 휘모리 등 일반적인 농악의 장단과 함께 이를 변형시킨 특유의 장단이 어우러져 타지역의 농악과는 달리 빠르고 경쾌한 것이 특징이다.

40여명이 한조를 이룬 진법군고는 본래 해남일대를 방어하던 승군이 사용하던 군사적 신호체계의 일종이었다고 한다. 임란직후 서산스님의 유품이 두륜산 대흥사로 모셔지면서 해안과 가장 인접해 있는 미황사는 해안방어의 전초기지로 활용됐다. 마을사람들과 함께 군사적 행동을 같이해야 했던 스님들은 매년 정월보름이 되면 진법군고를 통한 군사훈련과 함께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했다고 한다.

이와함께 마을사람들은 가뭄이 들면 미황사 괘불을 꺼내 기우제를 지내는데 반드시 영험이 있다고 한다. 실제 1992년도에는 이 지역에 30여년만의 큰 가뭄이 들어 미황사 쾌불을 꺼내 기우제를 지냈는데 다음날인 음력 6월21일 비가 내렸다고 한다.

삭막한 시멘트 더미위로 머슥한 얼굴을 내미는 달을 보기 민망할 정도로 도시에서는 올바로된 정월대보름 풍속을 보기힘들지만 그래도 반도의 땅끝 마을과 같은 시골에서는 아직도 그 풍속이 면면히 이어져오고 있다.

그러나 이것도 얼마나 오래갈지는 알 수 없다. 서구문물과 사상의 범람으로 민족문화가 수장되고 있는 현실에서 미황사스님들이 전승했다는 진법군고를 볼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을 하니더 더욱 정월대보름달을 보기가 미안할 따름이다.


김태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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