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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영희 칼럼-뉴스를 읽고 보는 당신의 IQ는?

기자명 리영희
  • 사설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소설은 실제보다도 사실 같다'고들 한다. 작가의 머리속에서 만들어진줄거리가 현실의 실제보다도 훨씬 더 사실다워 보인다는 뜻이리라. 우리들누구나가 그 맛으로 소설을 읽고 있다. 말하자면 '조작된 거짓'의 속임수이다.

소설만이 그런 줄 알고 있던 어수룩한 나는 우리나라의 신문·텔레비전·라디오 등 대중매체의 뉴스도 그렇다는 것을 최근에야 깨달았다. 뒤늦은 깨달음이기는 했지만 여태껏 세상사를 잘못 인식하고 곧이곧대로 믿어 온 깊은 미몽에서 깨어난 셈이어서 그 기쁨은 한량없다.

신문을 읽거나 라디오를 듣거나 텔레비전을 보는데도 높은 IQ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미처 몰랐었다. 보통수준의 IQ여서는 안된다고 한다. 나는 주눅이 든채로 나의 IQ수치를 생각해 보았다.

서양에는 '보는 것이 믿는 것'이라는 격언이 있고, 우리에게는 '백문이불여 일견'이라고 해서 백번 듣는 것 보다 한 번 보는 것이 확실하다고 말한다. 바로 얼마전까지의 수천년 동안 사람들은 활자로 된 글은 모두 '사실'로 믿어 왔다. 지난날에는 책(서적)이 그랬고 지금의 우리에게는 신문이그렇다. '신문기사를 읽었다'는 말은 곧 '그대로 믿는다'는 뜻이다.

최근에는 텔레비전이라는 전자 매체가 그 '믿음'의 자리를 차지하고 나섰다. '텔레비전에서 보았다'는 곧 '절대로 틀림없다'는 보증서로 통한다. 전파 매체인 라디오는 조금 덜하지만 그래도 '믿음'의 전달자로서의 권위를잃지 않고 있다. 결론적으로 말해서 신문· 텔레비전· 라디오의 뉴스는'진실'이고 '절대'이고 '믿음'으로 통해 있다.

신문· 라디오· 텔레비전의 뉴스를 이처럼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있던나에게 지난주에 일어난 일은 청천벽력이었다. 뉴스는 소설이고, 특히 북한에 관한 뉴스는 소설의 수준을 넘어서 아예 처음부터 조작된 '거짓'일 수있다는 '진실'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1월 22일 저녁 텔레비전 방송사들은 일제히 안기부 발표의 '특보 뉴스'라고 북한 주민 김영진·유송일 두 가족 8명의 '극적 귀순' 장면을 대대적으로 방영했다. 어느 방송사의 채널을 돌려도 그날 밤은 이 뉴스로 세상이 뒤집힐 것만 같은 법석이었다. 이 뉴스들은 각 장면마다 이들 8명의 탈출이베트남 통일 직후의 베트남인 대거탈출 현상인 '보트피플'의 '북한판 보트피플'의 시작이라고 별의별 낡은 필름을 재탕 삼탕해가며 소란을 피웠다.

마치 현장을 촬영한 것처럼 중국쪽에서 밀항선이 나타나고, 폭풍을 무릅쓰고 황해바다를 가로질러 서해의 무인도에 도착한 뒤 우리의 수산물 운반선에 '우연히' 발견되어 경비정이 출동, 이어서 해군 구축함에 의해 이송되고 헬리콥터로 수송되는 컴퓨터 조작 화면이 되풀이 비쳐졌다. 아주 그럴싸해 보였다. 언제나 그랬듯이.

나는 그것들을 보면서 신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야! 북한이 금세 무너지려나 보다 !'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도 틀림없이 그 날 그 시간에 그 뉴스를 보면서 그러했으리라고 생각한다. 나나 당신이나 뉴스는 "믿는 것"이라고 믿고 살아온, 의심할 줄 모르는 선량한 시민이니까. 특히 북한 관계의 뉴스는 말이다.

그런데 이튿날의 어떤 신문을 본 나는 도무지 무슨 일인지 종잡을 수가없었다. 여타의 대부분의 조간신문들이 언제나 그랬듯이 어제 저녁 안기부발표 내용을 몇 배로 확대하고 과장하여 상투적인 반북한 반공적 선전내용을 곁들여서 '소설'을 쓰고 있는 가운데 유독 언제나 곧은 소리하는 것으로정평있는 한 신문이 안기부 발표의 진실여부를 조목조목 따지고 나온 것이다.

안기부 발표에 따르면 무엇이든 '사실'로 활자화되고 영상화되어 온 데순치 된 나는 어리둥절해질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날 저녁부터는 이 한신문이 제기한 안기부 발표 내용의 진실여부에 대한 문제들이 다른 신문들에서도 조심스럽게 비치기 시작했다. '소설'과 '진실' 사이에서 나는 어리둥절해지고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소설'이 아닌 '실제'는 이러했다는 것이다. 탈북가족이 서해의 무인도에서 '우연히 발견'되어 우리의 해경과 해군의 '구출작전'이 끝났다는 시각보다 먼저 귀순자들의 탈북경위·배경·인적사항 등에 관한 상세하고도 장문의 안기부발표 보도자료가 각 보도기관 편집국에 이미 송달된 문제이다. 다음은 14세의 소년이 썼다는 '탈출일기'를 어떤 특정의 신문과 방송이 밝힐수 없는 '어떤 사람'으로부터 입수하여 각기 작년 가을에 기사화하고 방송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이 밝히지 못할 '어떤 사람'이란 누구이며 무엇을하는 사람일까? 소년의 '일기'에는 신변에 관한 사실이나 탈북경로가 교묘하게 감춰져 있었는데 14세의 북한소년의 솜씨치고는 너무 '지능적'이라는 지적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그 신문(조선일보)과 그 방송(MBC)이 작년 입수했다는일기의 필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도 그렇다. 남한(한국) 사정에 어두울 그들의 '일기'라는 것을 남한에서의 '언론 플레이용'으로 여러 필사본이 만들어졌으리라는 의혹도 제기되었다. 무인도에서 나온 두 가족 8명이 입은 옷들은 중국에서의 고난에 찬 10개월 동안의 빈궁에는 어울리지 않게 한결같이 신품이었다. 구출된 순간부터 남한식 표현을 거의 유창하게 쓴 사실도 지적되었다.

이전에는 귀순자들의 밀실조사가 끝난 한참 뒤에 공식 기자회견을 마련했던 전례와 달리, '구출'현장에서의 보도기관 취재·사진촬영을 알선한 것도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북한의 집권자와 '사돈간'이라는 안기부발표로 우리의 신문방송들은 '거물귀순' 선전을 했지만 그것도 사실이 아님이 1주일뒤의 기자회견에서 본인의 입으로 밝혀졌다. 22일은 서해에 초속 14∼18미터의 강풍이 불었는데 어떻게 작은 밀선으로 중국에서 올 수 있었을까하는 의혹도 있다.

그밖에도 해명되지 않은 의혹이 많다. 왜 그럴까? 안기부의 해명이 궁색해지자 각신문들의 지면에는 의혹의 소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 어느 신문인은 "안기부에서 준비한 공작 일정에 맞추어서 터뜨린 것"이라고 말한다.어떤 신문의 논평은 과거의 중앙정보부의 방식대로 안기부가 일찍부터 김씨가족을 관리하고 있다가 노동법·안기부법·한보사태 등등 제반 정황이 정권에 불리하게 돌아가니까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서 이 시점을 택했을것이라는 해석이다. '정보공작정치'의 일종이라는 말이다. 지난날 군부통치시대에 신물나게 경험한 그것이다. '문민'시대에 되살아난 망령이라는 비판도 있다.

이만하면 '보는 것이 믿는 것'도 아닌 성싶다. 소설보다 해괴한 신문·텔레비전·뉴스의 뒤를 꿰뚫어 보기 위해서 당신도 자신의 IQ를 검사해 보기를 권한다.


리영희/본지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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