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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신동헌의 ‘돌아온 영웅 홍길동’

기자명 이종승

1995년 작품 일본풍 캐릭터로 표현된 ‘호국불교’

우리에게 ‘홍길동’이라는 이름만큼 친숙하고 잘 알려진 이름이 있을까. 아직도 동사무소나 구청 등지에 마련해 놓은 각종 문서양식에는 어김없이 ‘홍길동’이라는 이름 석자가 적혀있고 금융실명제가 있기 전 가명으로 가장 많이 쓰였던 이름이 바로 ‘홍길동’이라고 한다. 흥미로운 점은 다른 이름도 아닌 왜 하필이면 ‘홍길동’이냐는 것이다. 그것은 아마도 역사 속의 다른 영웅들이 주로 국가와 민족 전체를 대변하는 거시 영웅적 이미지인데 반해, ‘홍길동’이라는 인물은 남녀노소 누구나 쉽고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는 민중을 위한, 민중에 의한 민중의 영웅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 때문인지 우리의 눈과 귀에 너무나 친숙하게 다가오는 ‘홍길동’이라는 존재는 각종 예술 매체에 단골 소재로 사용되었다. 우선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은 최초의 한글소설이며 신동우 화백이 당시 「소년 조선일보」에 연재하던 ‘풍운아 홍길동’은 신문에 연재된 최장수 아동만화이다. 곧이어 신동우 화백의 형인 신동헌 감독은 동생의 인기 연재만화를 한국 최초의 장편만화영화로 제작하여 한국 만화영화사에 길이 남을 걸작‘홍길동전’(1967)을 탄생시키기도 하였다. 그로부터 28년이 지난 1995년, 홍길동은 다시 우리 곁에 돌아왔다.

그러나 ‘돌아온 영웅 홍길동’(1995)은 ‘홍길동전’의 리메이크판이라기 보다는 일본판 홍길동 외전(外傳)에 가깝다. 캐릭터 디자인, 스토리 각색, 배경 미술, 원화, 음악에 걸친 거의 모든 작업이 일본에서 이루어진 작품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엄격하게 말하자면 한국 애니메이션의 개척자 신동헌 감독은 단지 감수하는 역할밖에 한 것이 없고 정작 작품의 연출은 ‘드래곤 볼’의 감독인 야마우치 시게야스가 맡았다. 사정이 이러다 보니 신동우 화백의 독특한 스타일인 둥글둥글한 인물 캐릭터는 균형잡힌 일본식 캐릭터로 변화되었고 투박하지만 서정적이었던 시각적 배경은 화려한 액션장면과 빠른 편집으로 대체되었다. 또한 양반 사회를 비판하는 해학적인 내용보다는 선과 악의 대결이라는 환타지가 강화되었다. 이러한 재패니메이션식 연출로 인해 국적불명의 작품이라는 오명을 뒤집어쓰기도 했지만 아이러니컬하게도 이러한 요소가 재패니메이션에 익숙해진 관객에게는 크게 호응을 얻어 흥행에는 성공하였다.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점은 따로 있다. 바로 민중의 영웅 홍길동의 이미지와 ‘호국불교’의 정신을 결합하였다는 점이다.

고통받고 있는 민중의 상심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호국불교의 정신은 정의의 기를 상징하는 홍길동과 사악한 기를 상징하는 골반도사의 대결로 형상화된다. 골반도사는 세상을 지배하기 위해 절을 불사르고 고승들을 살해한다. 조선팔도를 수호하고 있는 8명의 선사를 제거하면 조선을 지키는 선한 기는 모두 사라지고 사악한 기가 지배하기 때문이다. 마침내 백운도사에게 맑은 영혼의 기를 전수받은 홍길동은 골반도사의 사악한 기에 맞서 조선을 구한다. 비록 지나친 환타지의 사용으로 인해 보살행(菩薩行)의 참모습을 적절하게 보여주지는 못했지만 홍길동이라는 전통적 캐릭터에 창의적인 상상력을 결합시킨 시도는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국내 애니메이션계가 한번쯤 타산지석으로 여겨야 할 교훈이 아닐까 한다. 전통과 상상력의 근접 조우. 그것이야말로 불황을 돌파해나갈 가장 큰 무기이다.



이종승 애니메이션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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