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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커스 - 25년째 도보 순례 원 공 스님

기자명 이재형

'빨리빨리가 자연-사람 다 망쳐놓지'

'걷는 스님' 원공 스님을 만나기 위해 기자가 서울 도봉산 자락의 선각사(蟬覺寺)을 찾았을 때는 마침 점심 때였다.

절을 하려는 기자에게 스님은 '절은 부처님이 아니면 죽은 사람에게나 하는 것'이라며 악수나 한번 하자고 손을 내민다.

지난해 8월 도봉산 천축사에서 거처를 옮겨 작은 토굴을 마련한 스님의 도량은 말 그대로의 무소유의 공간이었다. 이사 오던 날 매미떼가 하도 울어 매미 선(蟬)자를 써서 선각사로 이름을 지었다는 이곳에는 손수 짠 엉성한 책상 하나가 전부였다.

그 흔하디흔한 시계나 달력도 없었고 그림 한 점 걸려 있지 않아 이런 것이 바로 '텅빈 충만'이란 생각을 절로 자아내게 했다.

무문관 이후 도보 수행

다소 막힌 공간인 까닭에 도량 안은 약간 어두웠지만 불은 켜지 않았다. 심지어 한밤중에도 작은 손전등으로 대신한다는 것이 스님의 말이다.

점심 공양물은 콩밥에 김칫국, 나물반찬 몇 가지, 거기에 밥상도 없애버려 바닥에 놓고 먹어야 했다. 하나라도 남기면 안된다며 반찬까지 깨끗이 비운 스님은 빈 그릇에 물을 담은 뒤 손가락으로 한번 휘젓고 들이켰다.



큰절에서도 일정한 의식처럼 행해지는 발우공양이 스님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상의 하나였던 것이다.서울 도봉산 산자락에서 30여년 넘게 생활하고 있는 스님은 요즘 사람들의 관점에서 본다면 기인(奇人)이거나 지극히 한가한 사람으로 비춰질 수도 있다.

고속버스와 기차, 심지어 비행기조차 보편화된 요즘 세상에 걸어서 온 세상을 활보하고 있기 때문이다. 간혹 일이 있어 서울시내라도 한번 나올라치면 새벽부터 길을 나서야 하고, 지방에 갈 때면 몇날 며칠씩 걸리기 일수다.

'요즘 사람들은 속도의 노예가 돼버렸어. 뭐든지 빨리빨리 하려고 하지. 그러다보니 과정은 생략되고 결과만 남는 거야. '빠르게 빠르게'는 우리의 삶을 삭막하게 하고 자연을 망치게 하는 원인이지.'

원공 스님이 '걷는 스님'으로 세상에 알려지면서 웬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면 스님을 부르지도 또 나가지도 않는다. 그런 스님이지만 일년에 절반 정도는 길에서 지낼 정도로 늘 걷는다.

걷는 것이 곧 수행

통일-청정국토 염원

산-강 훼손말고

돌아가고 넘어가라

지난 79년부터 스님은 155마일 휴전선 순례, 통일기원 180일 국토순례, 통일염원 북한 농민을 위한 비료지원모금 123일 백두대간 종주, 한민족 동질성 회복기원 108일 도보순례, 이산가족 고향자유왕래 염원 220일 순례 등 지금까지 수차례 보행수행을 해왔다. 특히 지난해 초에는 서울 상암동 월드컵경기장을 출발해 한국과 일본의 월드컵 개최 도시 20곳을 걸어서 순례하는 총 4000km의 '환경과 평화를 위한 평화도보 행진'을 가졌다.

'월드컵 때문에 환경을 해쳐선 안된다고 걸었는데 일부 언론에서는 이 때문에 월드컵 4강까지 갔다고 말을 하는 곳도 있더군. 그러나 멀쩡한 산을 허물어 경기장을 만들어서야 되겠어. 안타까울 뿐이지. 그러나 어차피 지은 경기장이니까 이제라도 전국의 많은 경기장들을 장애인이나 노인들을 위한 시설로 전환되기를 바랄 뿐이야.'

스님이 걷기 시작한 것은 70년대 무문관(無門關) 수행을 마치고 난 직후부터였다. 무문관 수행법은 문을 걸어 잠근 채 몇 년이고 바깥세상을 안 나오며 '이 자리에서 깨치지 못한다면 일어서지 않으리라'는 각오로 수행정진하는 한국 선불교의 상징이다. 천축사 무문관의 마지막 수행자인 원공 스님은 이곳을 나오며 좌선에서 행선(行禪)으로 바꿨다.

'걷는 것이 색다른 수행은 아냐. 옛날 스님들도 안거가 끝나면 만행(卍行)이라고 다 걸어다니며 수행하셨잖아. 출가자는 걸식하는 사람이고 얻어먹는 사람인데 그런 사람이 편리한 것만 찾는다면 바람직하지 않지.'

북 동포 돕기에도 앞장

스님은 통일을 발원하며 걷고, 환경을 되살리기 위해 걷고, 깨달음을 위해 걸었다. 80년대초 군부독재 하에서 '피는 사상보다 진하다'는 다소 과격한(?) 슬로건으로 도보행진을 할 때는 안기부가 스님을 24시간 감시하기도 했단다. 그런 스님이 이번에는 금강산까지 다녀오는 대장정을 다시 떠난다.

대한적십자사와 환경정의시민연대 등이 주최하는 '한민족 도보대행진'의 행진단 고문을 맡은 것이다. 스님은 3월 30일 서울에서 출발해 서해안→제주도→남해안→동해안→금강산→155마일 민통선→서울에 이르는 거리를 100일 동안 걷게 된다. 이번 도보행진의 특징은 스님이 걸을 때마다 늘 그랬듯이 해안선을 따라 돌며 널린 쓰레기를 줍는 환경도보행진이기도 하다.

또 전국 각지에 우리 약초인 도라지를 심는 일을 10여 년째 해오고 있는 스님은 이번 도보행진에서도 참가자들과 함께 도라지꽃 심기 운동을 전개한다. 특히 구간구간마다 동참자를 신청 받아 여기서 나오는 돈으로 북한 어린이들을 도울 예정이다.

25년째 산천을 걷다보니 그 동안 변해 가는 우리 국토에 대해 느끼는 스님의 이해도 남다르다.

'걷다보면 산천초목과 친해지지. 또 나중에는 모든 곳이 고향처럼 느껴져. 그러나 갈수록 이 땅이 난도질당하는 것 같아. 개울이 있으면 돌아가고 산이 있으면 넘어가면 될 것을 굳이 산에다 구멍을 뚫고 다리를 놓거든. 자연과 인간은 공존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데도 말이야.'

3월 30일 또 대장정 떠나

올해부터 스님은 저녁공양을 하지 않는다. 한 끼를 굶는 대신 매일 3000∼4000원씩 저금해 이를 굶주린 북한 어린이를 돕기 위해서다. '무작정 돈을 주는 것보다 고통을 나누는 것이 더욱 의미 있는 것이 아니냐'는 원공 스님. 느림이 게으름이나 무능의 상징처럼 돼 버리고, '빠름'과 '편리함'이 첨단과학과 문명의 지향점 마냥 간주되는 세태. 그 속에서 스님의 '시대에의 역행'은 오늘날 진정한 불제자의 자세가 무엇인지를 곱씹게 하기에 충분했다.



글·사진=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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