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지 않는 국민에게는 미래가 없다는 사실은 언제나, 또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진리였으나 이러한 철칙이 오늘처럼 현실화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다. 우리의 출판시장이 최근과 같은 유의미한 변화를 얼마나 오랜 시간 동안 유지 할 수 있을 지는 의문이지만 적어도 오늘의 변화를 이끈 원인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면에서 이야기를 전개할 수 있을 것 같다. 혹자는 전문 편집기획자의 폭넓은 출현이 오늘의 출판시장을 이끌고 있다고 분석하기도 하고 혹자는 국민들의 독서욕구를 살피는 철저한 시장조사 및 경영의 전문화가 국민들로 하여금 책을 가까이 하게 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나는 좀 더 다른 각도에서 지금의 현상을 일으킨 원인을 찾고 싶다. 책을 읽는 것 역시 사람의 문제라고 보고 싶은 것이다. 오늘날 출판 시장의 주요 고객은 30대와 40대 독자층이다. 이들은 암울한 80년대를 온 몸으로 부대끼며 관통한 세대로 책을 통해 얻은 의식-지식이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다른 어떤 세대보다도 절실히 체득한 세대이다. 그들의 부모가 산업화의 시대를 열고 부를 정착시키느라 책에서 자연 멀리 떨어져 살았다면 이들은 머리에 쥐가 날 정도로 어려운 사회과학 서적들을 손에 쥔 채 자신의 삶의 방향을 고민해온 세대들이다. 지금 30대 이상 40대가 된 이들은 이제 그들 자신의 삶과 자녀들의 삶을 보다 양서와 가깝게 놓아두려 애를 쓴다.
이러한 조류는 비단 우리 한국 내에서뿐만 아니라 지성적 문제에 관한 한 탁월한 이력을 지니고 있는 서구 유럽에서도 찾아 볼 수 있다.
그러나 불교계의 상황을 돌아보면 마음이 무거워 진다. ‘불교계=책맹 집단’이라는 등식이 여전히 성립하기 때문이다. 교계에서 출판부문을 담당하는 인사들의 입에서 과거와 전혀 다르지 않은 고뇌에 찬 하소연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 사회가 책에 관심을 돌리는 이때에 왜 불자들만은 유독 책을 멀리하는 것일까. 필자는 이것을 신도교육의 중요한 허점으로 지적하고 싶다. 우리 민족은 경전을 펴내기 위해서 세계 최초로 금속활자를 발명할 정도였다. 책을 읽지 않는 불자란 곧 경전마저도 멀리하는 불자라는 뜻이다. 경전과 각종 불교서적은 부처님께 다가가는 지름길이며 깨달음을 향해 가는 일종의 지도라고 할 수 있는데 불자들은 왜 이 길을 멀리하는 것일까. 그것은 불교계의 지도자들이, 스승들이 불자들에게 불서 읽기의 중요성을 강조하지 않는 데서 비롯된 것이다.
승속을 막론하고 부처님 법을 배우고 실천하는 불자들에게 있어 불서는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중한 지혜의 보고이다. 그러한 양식을 스님들부터 먼저 가까이 하고 부모가 자식에게 책을 권하듯 불자대중들에게 권해야 하는 것은 두 말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지금보다 더욱 많은 양질의 불교서적이 출간되려면 우선 불서가 불자들의 손에 들려져야 한다. 불교출판 시장의 봄은 그냥 오지 않는다. 사부대중 전체의 각성이 있을 때 불교출판은 재활의 날개짓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여기서 기독교와 불교의 출판 시장을 비교하거나 우열을 따지고 싶지는 않다. 그 격차가 하도 커 엄두가 나지 않거니와 그것으로 불자들의 의식이 변할 것이라는 기대를 할 수 없는 불교상황을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책맹 집단에게 미래는 없다. 같은 이유로 지금처럼 불자들이 책을 읽지 않는데에도 불구하고 불교의 미래를 낙관하는 불자가 있다면 그것이야말로 인과의 법칙을 무시하는 사고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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