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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성과 기다림이 복지를 바꾼다

기자명 이춘옥
회복지라는 영역에서 일을 하면서 다양한 공간과 긴 시간을 지나왔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그 시간과 공간 속에서 나를 가장 성숙시킨 것은 안될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단지 포기하지 않았을 뿐인데 기대하지 않았던 좋은 결과가 발생한 경험이었다.

하나의 상태를 유지해왔던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그 지점을 티핑 포인트(tipping point)라고 부른다. 이 전환점을 통하여 한 상황은 다른 상황으로 질적 변화를 겪게 된다. 계속되는 자극에 끄떡없이 지켜지던 균형상태가 어느 한 순간 여태까지의 자극의 총량보다 더 크면서도 질적으로 차이나는 변화를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흔히 우리가 계속 노력하면 언젠가 결실을 맺게 된다고 강조하는 것과 같은 현상이다.

오랫동안 한가지 일을 해왔던 장인이 가진 여유나 폭넓음도 이를 알고 있음에 대한 표현일 것이다. 많은 생을 거치면서 깨달음을 얻기 위해 수행해오시다가 마침내 열반을 증득한 석가모니 부처님이 우리들에게 바른 서원과 정진으로 꾸준히 길을 걸을 것을 거듭 부탁하신 것도 이것 때문일 것이다. 양적 성장단계와는 전혀 다른 질적 변혁.

내가 사회복지의 마당에서 터득한 것은 사건이나 사람에게나 이런 기다림이 필요하다는 사실이었다. 억지로 강요한다고 해서 얻어지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또 다른 강제가 다음 순서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렇다고 내버려두는 것만도 능사가 아니었다. 오히려 함께 살아가면서 희망과 절망을 다 보여주고 그 과정에서도 첫마음을 버리지 않는 기다림의 모습이 자연스럽게 우리를 질적으로 성숙하도록 유도하였다.

그 꾸미지 않는 기다림의 모습은 세상의 부나 명예보다는 정신적 풍요로움과 자유가 더 중요한 가치임을 알게 하였다. 그 자연스러운 기다림은 보채지 않는 정성이 결국은 우리를 감동시킨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래서 나도 넘어지기를 거듭하다가 마침내 완전히 자유로운 붓다가 될 것을 확신하고 서원하며, 그 길을 같이 가고 있는 사회복지 마당의 많은 붓다들의 모습에 귀기울이고 그들을 기다릴 줄 알게 되어가고 있다.

어떤 사회복지정책이 우리 모두를 평화롭고 풍요롭게 해주겠는가? 사회제도가 환경을 좀더 수월하게 만들어 줄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그것이 행복을 제공할 수는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사회복지 마당에서 일을 하는 우리가 필요한 이들을 위하여 좀 나은 물리적 조건을 마련해줄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그 조건이 그들에게 영원한 행복을 주지는 못할 것이다.

나는 불교적 관점에서의 사회복지활동은 불교의 향기와 맛이 모두를 편안하고 행복하게 하고 나아가 자신의 삶이 얼마나 의미 있는 것인가를 알게 해 주었기에, 스스로 좋아하게 되는 목적과 방법론으로 진행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이제 내가 원하게 된 불교 사회복지활동의 형태는, 우선은 세상에 대한 원망과 편견이 너무 깊숙이 자리잡지 못하게 하도록 하기 위해 기본적인 생존의 조건을 갖추도록 노력하는 것이다. 다음으로 이 노력 못지 않게 중요한 것은 자신의 고집을 버리고 사람과 세상을 평화롭게 보는 눈, 자신의 내적 가능성과 성숙의 발견이 무엇보다 큰 기쁨이 되는 인생관과 세계관의 전환을 경험하는 것이다.

이 전환을 경험하고 난 후의 관계는 자기 내부와의 교류이든 타인과의 교류이든, 생명체와의 교류이든 무생물과의 교류이든 그 관계는 풍요로울 수밖에 없을 것이다. 바깥의 어떤 물질을 더 갖고 싶어서 이 풍요로움을 포기할 것인가.

내가 절망의 늪을 지나 변화해왔듯이 다른 사람들도 그런 과정에 있음을 언제나 기억하자. 그래서 다른 사람과 나를 있는 모습 그대로 받아들이고, 서둘지 않으면서 길을 걸으며, 기다리자고 스스로를 다독이자. 기다림과 정성이 있으면 변화는 어느 날 갑작스런 모습으로 다가오니까.

이 전환점이 문득 나타나기를 기다린다. 치매할머니에게도, 장애아이에게도, 일하기 싫어하는 자활후견기관의 아저씨에게도, 고집쟁이 할머니에게도, 함께 일하는 동지들에게도, 자원봉사자에게도… 그리고 가장 절실하게 나에게.



이 춘 옥 햇빛가정봉사원파견센터 소장 road1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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