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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도기관사의 철야정진

기자명 리경재
남들은 잠자리게 들 시각인 밤11시. 작업복을 갈아입고 안쓰러운 눈으로 바라보는 아내를 뒤로하고 대문을 나선다. 쏟아지는 빗줄기가 가로등 불빛에 반짝인다.

오늘밤은 경주행 화물열차를 운전하여 400리 길을 꼬박 밤을 새워야 한다.무거운 짐을 가득 실은 나의 철마는 새벽1시 영주역을 출발하여 빗속을 달린다. 언제나처럼 보례진언을 시작으로 삼보님께 인사하고 금강경을 독송한다.

평소에는 경전을 두 손으로 받잡고 독경하나 운전 중에는 그렇게 할 수 없으니 그냥 암송할 수 밖에 없다. 수시로 무전기를 취급해야하고 신호 확인도 해야하지만 독송은 계속된다.

'형님, 저… 얘기하나 해도 될까요' 3독 하는 한 시간 반이 무척 지루했나보다.

'무슨 얘긴데'

'제 결혼 상대자가 요즘 기독교에 빠졌는데 어떡하면 좋지요'

'그럼 자네가 교회에 같이 나가면 되겠네'

'뭐라고요? 아니 형님이 어떻게 그런 대답을…'

너무나 의외의 간단한 대답이었나 보다.

'아니면 자네가 열심히 공부해서 상대방에게 감동을 주든지. 불교인을 만들면 되잖아. 두 사람이 종교 때문에 사랑이 깨져서는 안되지.'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동안 열차는 쉼 없이 달리고 있었다. 전조등 불빛에 놀란 산짐승하나가 머뭇거리다가 달아난다. 나는 두 손을 모으고 원을 세워준다.

'저 중생이 다음 생에는 반드시 사람 몸 받아 부처님 시봉 잘하길…'

시간은 벌써 새벽 4시를 가리키나 아직 갈 길은 멀다. '미륵존 여래불.. 미륵존 여래불…' 지금부터 도착할 때까지는 정진이다. 공경심으로 부처님 명호를 부르며 정진하는 동안 어느덧 경주에 가까이 가고 있다. 배도 고파오고 졸음이 밀물처럼 밀려온다. 숙소에 도착한 6시에 이른 아침을 먹고 잠자리를 편다. 동행한 부기관사는 피곤한지 이내 잠들었다. 나는 108배 마치고 다음 여정을 위해 잠을 청한다.



리경재 철도기관사 rodwobuddha@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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