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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복되는 일몰…장엄함은 늘 새롭다

기자명 이우상
문명과 도시는 물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인류 문명의 발상지는 모두 강을 끼고 있다.

앙코르 제국이 그곳에 터를 잡은 것은 톤레삽 호수가 있기 때문이다. 씨업리업 도심에서 남쪽으로 15Km 거리에 있다.

전지 크기로 된 4천만분의 1인 세계지도에도 표시될 만큼 동양 최대의 담수호이다.









배를 탈 수 있는 입구 마을은 무척 어수선하고 남루하다. 비포장 둑방길을 따라 양쪽으로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원두막 수준의 가옥들, A형 텐트 같은 집들이 위태롭게 늘어서 있다. 어딜 가나 풀풀 날리는 흙먼지, 쪼르르 달라붙는 행상 아이들 일색이다. 아이들을 헤치고 배들이 늘어서 정박해 있는 곳으로 간다.

15명쯤 탈 수 있는, 바나나 껍질 같이 생긴 길죽한 동력선이다. 파이프를 입에 물고 구레나룻이 그럴듯한, 중후한 풍채의 마도로스는 없다. 16,7세의 소년들이 선장이다. 조수는 막내 동생뻘 되는 열살 안팎의 소년들이다. 내전에 아비를 잃은 소년 가장들이 상당수이다.

시간에 관계없이 배를 한번 빌리는 값이 5∼13달러이다. 인원수에 따라 배삯의 차이가 난다. 톤레삽의 석양이 일품이라 오후 무렵 관광객들이 몰려든다. 제법 큰배인데 신혼부부인 듯 달랑 두 명만 탄 모습도 보인다. 꼬마 조수가 삿대를 저어 좁은 수로를 묘기하듯이 빠져나간다. 수상 가옥들이 양쪽에 늘어서 있다.

숲과 물, 집과 배들이 만들어내는 풍경화가 일품이다. 가까이 다가가 그들의 남루한 삶의 정경을 목격하지 않는다면, 코를 찌르는 악취를 맡지 않는다면 말이다.

땅을 딛고 사는 사람들보다 물위에 사는 이들이 더 많은 이곳, 프놈끄롬도 있을 것은 다 있는 소도시이다. 학교, 경찰서, 공연장, 프놈펜을 오가는 대형 여객선 등이 보인다. 이곳 사람들은 물 위가 더 편하다. 땅에 오르면 땅멀미를 한단다.

프놈펜까지 이어진 100km 물길

티벳고원에서 발원한 메콩강이 중국 윈난성을 지나 라오스와 타이의 국경을 이루며 흐르다가 베트남에 이르기 전 중간에 잠시 쉬기 위해 머무르는 곳이 톤레삽 호수이다. 메콩강의 옆구리에 튀어나온 불룩한 물자루가 톤레삽이다. 인도차이나 여러 나라 사람들이 이 강물을 먹지 않는 이가 없고 이 강물에 오줌방울을 떨구지 않는 이가 없다. 그들은 결국 같은 강물을 젖줄로 하는 가족이다. 그 가족들의 선조가 일궈낸 것이 앙코르이다.

우기에 물이 불어 호수로 역류하면 제주도 넓이의 1.5배, 홍수 때는 4배까지 호수가 넓어진다. 건기에는 호수의 물이 메콩강을 통해 빠져나간다. 톤레삽은 주걱처럼 생겼다. 호수의 위쪽은 넓고 아래쪽은 길다란 막대 같다. 호수는 이곳에서 프놈펜까지 100Km 이상 이어져 있다. 사람과 물류 수송의 중요 통로이다.

쾌속선을 타면 프놈펜까지 5시간 걸린다. 대형 화물선은 이틀이 걸린다. 앙코르 제국 건설과 유지에 필요한 물자들이 이 호수를 통해 조달되었다. 번성기의 앙코르에 100만명이 살았다니 톤레삽 호수는 제국의 혈액이었을 것이다. 홍수 조절 기능에다 어업과 농업의 보고이자 자원이다.

지금도 캄보디아 인구의 약 절반인 450만명이 톤레삽 호수에 매달려 산다. 톤레삽 호수 근처에 앙코르 제국을 건설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수상 가옥의 모습이 다양하다. 좁은 난간에 화단을 조성해 놓은 집도 있다. 지붕에 TV 안테나가 설치된 집도 가끔 보인다. 사공 소년은 불어식 영어발음으로 부지런히 설명을 해대지만 요란한 모터 소리와 피차 익숙하지않은 언어인지라 드문드문 알아들을 뿐이다.

작고 비쩍 마른 열 일곱 살 소년 선장에게 운명을 맡기고 톤레삽을 향해 통통통 소리를 내며 앞으로 나아간다. 뱃머리에 꽂힌 장대에는 앙코르가 그려진 붉은 캄보디아 국기가 펄럭인다. 한참 나아가다가 수상 가옥으로 만들어진 휴게소에 들렀다. 비록 장사집이지만 수상 가옥의 구조를 살펴볼 수 있었다. 침대가 놓인 침실, 주방 그리고 화장실 등 주거의 충분조건을 갖추었다.

두레박을 늘어뜨리면 식수를 퍼 올릴 수 있고 생활 하수와 배설물은 수직으로 쏟아져 거기에 합류한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의 경지가 이런 것인가. 피쉬 농장이라고 이름 붙여진 이 가게는 딸부자집이다. 스무 살 처녀부터 일곱 살 꼬마 여자아이까지 있다.

배에서 내린 이국의 아이들과 금방 친해진다. 굵은 팔뚝만한 뱀을 목에 걸어보라고 권하는 것이 가장 짜릿한 대접이자 경험이다. 꼬리를 바싹 내리던 아이들이 금세 다투어 뱀을 빼앗아 목에 두른다. 단순함과 친함과 순수함은 동의어인가보다. 앙코르 맥주를 사니 안주로 삶은 새우 한 사발을 공짜로 준다.

갓 잡아 올린 통통한 새우이다. 한국에서 사먹을려면 비싼 요리인데. 그 맛에 홀려 관광객 아이들이 와르르 달려들어 정신 없이 집어먹는다. 물건을 팔려고 쪼르르 몰려드는 현지 아이들처럼 체면이고 뭐고 없다.

뭍에 오르면 땅멀미를 하는 사람들

배는 톤레삽의 가슴을 향해 나아간다. 허리까지 물 속에 잠긴 숲을 보며 바다 같은 호수의 가운데로 나아간다. 일몰을 보려는 배들이 집어등 켤 시간을 기다리는 오징어잡이배처럼 군데군데 떠서 일렁거린다. 우리도 시동을 끄고 물결이 시키는 대로 몸을 맡겨둔다.

무료함을 달랠 겸해서 옷을 입은 채 풍덩 호수에 뛰어들었다. 동승한 아이들도 풍덩풍덩. 다리통을 물어뜯는 악어가 있다고 소리치니 비명을 지르며 배 위로 기어오른다.

악어는 없다. 바지 주머니에 넣어둔 달러 몇 장을 악어가 아닌 호수가 삼켜버렸다. 거대한 호수의 자양이 다시 한번 발휘되어 이 나라의 빈곤을 떨치는 힘이 되길 빌어본다.

학교-경찰서도 물 위에 '둥둥'

태양이 서서히 수평선을 향해 다가간다. 선장 소년도 수평선 쪽을 바라본다. 매일 반복되는 일몰이지만 장엄함은 늘 새롭다. 이 장엄함을 보면서도 역사와 삶에 대한 사색과 성찰이 없다면 인간자격이 없다는 건방진 말을 혼자 중얼거려본다.

일몰이 끝나고 주변이 어둑어둑해지자 선장 소년은 시동을 건다. 다시 뭍을 향해 다가간다. 땅에서 넘어진 자, 땅을 집고 일어서라고 했지. 톤레삽 수평선 너머로 사라진 태양이 앙코르의 영광과 인류 공영의 빛으로 다시 솟길 기원한다.



글·사진=이우상〈소설가·대진대 문창과 겸임교수〉asdfsang@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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