詩語에 담긴 禪 한 폭의 선화로…
선을 말로 표현할 수 없다는 선사들의 가르침을 모를 리 없는 시인은 선을 시어로 풀어내는데 조심스럽다. 그래서 일까. 사찰을 소재로 한 시이지만 조형물에 대한 집착을 버리고 산사의 정취를 한껏 담고 있다. 그 정취 속에서 시인은 불교를, 선의 한 자락을 그려내고 있다.
싸락눈 흩뿌린 뜨락/큰 스님 작은 발자국/발자국 속 작은 모이/참새들이 쪼고 있다/오늘은 비질을 하지 말자/고요 속의 작은 행복(작은 행복-어느 요사채에서)
어쩌다 댓돌에 얹혀/거미줄 친 흰 고무신/눈이 오고 비가 오고/저마다 인 풀빛 화두/마음엔 종이배 하나/하늘길로 가고 있다(선3-무금선원에서)
큰 스님과 작은 발자국, 참새와 모이. 시인은 작은 발자국에 큰 스님의 고매한 정신을 응축해 놓고 있는 듯 하다. 그 발자국 속에서 미물의 작은 참새가 모이를 쪼고 있는 산사 풍경. 묵으로 그려 낸 한폭의 선화를 보는 듯 하다.
시인은 댓돌에 놓인 거미줄 친 흰 고무신을 보며 면벽정진하는 스님을 떠올린다. 어쩌면 그 스님은 시인 자신일 것이리라. 시인이 든 화두는 그냥 화두가 아니라 ‘풀빛 화두’이다. 그의 시를 감상하며 ‘풀빛 화두’가 무엇인지를 탐닉해봄직 하다.
시인이 담아 낸 70여편의 시는 한결같이 이처럼 간결하지만 긴 여운으로 남아있다.
이상범 시인의 "풀빛 화두"에는 우리가 부처님의 품 안에서 느낄 수 있는 자연스러운 삶의 향기를 담고 있다. 그 향기에 빠지는 것이 삼매에 드는 건 아닐런지. (책만드는집, 5500원)
채한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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