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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끌어안는 곳

체코는 세계 최초로 '빛 공해'를 규제하는 법을 제정하였다. 빛 공해란 야간에 조명이 너무 강해 밝히려는 범위 이상 빛이 퍼지는 것을 말한다. 하늘의 달이나 별은 여전하지만 도시에서 별이 잘 관측되지 않는 것은 위쪽으로 투사되는 조명이 별이나 행성관측을 방해하고 있기 때문이다. 체코에서는 새 법에 따라 프라하의 가로등을 비롯한 조명시설들을 재정비해야 한다. 이제 체코의 밤하늘은 좀더 어두워지게 되는 것이다.

밤늦게 절에서 나올 때가 있다. 대부분은 스님의 후래쉬 불빛에 의존한다. 스님의 배웅을 멀리하고 나면 빛에 익숙해진 우리의 시신경은 어둠 속에서 한참을 헤매 인다.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는 발걸음. 문득 온몸을 감싸 안는 차가운 산 기운, 잠시 고개를 들어 하늘을 쳐다보면 어둠 속에 빛나는 별빛들이 있다. 한 걸음 두 걸음, 걸음을 살피며 일주문을 향해 걸어 나오는 발걸음은 또 하나의 깨달음이다. 하지만 최근 대형불사를 자랑하는 유명 사찰들에 가면 이런 경험은 여지없이 깨지고 만다. 절 마당 구석구석에서부터 일주문에 이르기까지 친절하게도 밝혀 둔 수많은 전등불빛 들. 굳이 밤하늘을 올려다 볼 이유가 없다. 불빛에 따라 적절한 시야를 유지하며 안전하게 걷기만 하면 되는 것. 하늘 한번 올려다볼 여유를 갖지 못하게 된다.

불교에서의 어둠은 무명이다. 무명을 깨치고 빛으로 나아가는 것. 이것이 곧 수행이다.

종교적 의미에서건 자연적 의미에서건 어둠과 밤을 밝히려는 노력은 유사이래 계속되어왔다. 미혹과 미망과 어둠을 깨치려는 종교의 노력이나 학문의 진보에 대해서는 굳이 언급할 필요도 없는 것. 그리고 이러한 노력은 분명히 계속되어야 한다. 다른 의미에서 밤을 밝히려는 인간의 노력은 집안의 화롯불이나 마당의 모닥불로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나무 진이나 동물 기름을 이용한 횃불, 식물성 기름을 주전자에 담은 뒤 꼭지 쪽에 심지를 박아 불을 붙인 주전자 램프나, 유리관으로 겉 부분을 둘러친 본격적인 램프로까지 발전해 간다. 에디슨이 뉴욕의 주택가나 호텔에 인류 최초의 전등 설비를 완비한 것은 1882년경이었다. 1883년 고종은 유길준 등 사절단을 미국에 보내게 되는데 이때만 하더라도 전등을 처음 본 유길준은 서양악마의 힘으로 불이 켜지는 것으로 여겼다고 한다. 에디슨이 전등을 발명한지 불과 7년만인 1887년 3월 아시아 최초의 전등인 백열등이 경복궁에서 빛을 발했다. 이렇게 해서 도입된 전깃불은 도시에서 시골로, 시골에서 다시 산 속으로 퍼져나가 이제는 깊은 산 토굴이나 암자에서까지도 전깃불 없는 세상을 상상할 수조차 없게 되었다. 정확히 20년 전 전라도 화순 땅 어느 절에서 촛불만으로 겨울방학을 보냈던 적을 돌이켜 보면 이제 아득하기만 하다.

별 하나에 사랑을 노래했던 윤동주 시인의 밤하늘과 그 별은 이제 더 이상 도시에는 없다. 범죄 방지를 위해 골목길마다 CCTV까지 설치하겠다는 것이 서울의 어느 구청이다. 이런 마당인데 도시에서 불빛을 줄이고 조도를 낮추자는 체코의 새로운 법률이 담고 있는 생각을 우리 땅에 가져올 수는 없을 것 같다. 그런 만큼 생산성을 높이고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한 도시나 공장이나 골목길에서의 불빛은 여전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같은 도시라도 지나친 네온사인 간판이나 교회 첨탑의 십자가를 둘러맨 야광불빛은 언제 보아도 낯설다. 같은 낯설음일 순 없지만 시간의 흐름조차 멈춘 듯 한 산사에서 깊은 고요와 수행마저 깨뜨리는 듯한 지나친 불 밝힘도 내게는 어색하기만 하다. 종교적 의미에서 어둠을 몰아내는 것과는 정 반대로 자연 질서에 순응하는 의미에서 어둠을 끌어안는 곳. 그곳이 바로 산사였으면 한다.


최재천(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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