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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박경일 경희대 교수

기자명 박경일
  • 교계
  • 입력 2004.08.10 16:00
  • 댓글 0

중관사상 바탕한 다원주의 문화 경향

논리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이분법적 갈등구조 거부
데리다·푸꼬 등 이론 확립…구조·해체주의 등 포함돼

포스트모더니즘은 이제 전세계적으로 언어, 문학, 예술, 철학, 정치, 사회 등 문화 전반에 걸쳐 널리 팽배하고 있으며, 우리의 문화 속에도 이미 깊숙이 침투해 있다. 지난 십수년간 우리 주변에서도 이에 대한 관심과 논의가 증대되어 왔다. 이같은 상황에서 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 간의 관계를 자리매김해 보는 것은 의미있는 일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우주의 중심으로서의 ‘신’(神), 세계의 중심으로서의 인간의 ‘주체성’(불교적 표현으로 바꾸면, 자성), 인간의 사유와 행동을 지배하고 이끌어 나가는 중심으로서의 ‘진리’, 그리고 인간의 삶을 포함하여 우주 내에서 일어나는 일체의 현상들을 설명하여 주는 영구불변의 틀로서의 ‘원칙/구조’(예컨대, 인간적 우주적 현상들을 선/악, 참/거짓, 음/양, 자연/문화 등의 2분법적 2항대립적 갈등구조로 파악하여 설명하는 따위) 같은 것들에 대한 믿음을 거부한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이런 것들이 영구불변하는 자성을 갖는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으려 하며, 이같은 중심들이허구적인 미망일뿐임을 보여주려고 한다.

한마디로 말해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자율성(自律性), 자존성(自存性), 자족성(自足性), 영구불변성을 주장하는 일체의 중심들(의 허구성)을 해체하고자 한다. 이런 의미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은 “전반적인 탈중심적 또는 중심해체적 다원주의 문화경향”이라 말할 수 있으며, “이성과 합리주의에토대를 둔 서구(西歐) 계몽사상을 계승하는 모더니즘(근대주의)에 대한 급진적인 지적(知的) 문화적 비판과 반동”이라고 잠정적으로 정의될 수 있을것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플라톤 이래의 로고센트리즘(logocentrism:로고스중심주의, 이성/말/논리중심주의)에 대한 저항이라는 점에서 종래의 로고스중심주의적 모더니즘 전통과 그 패러다임을 달리 한다.

이같은 광범한 의미에서의 포스트모더니즘에는 구조주의, 현상학, 해석학, 포스트구조주의(탈구조주의, 후기구조주의), 해체주의, 정신분석비평, 신(新)역사주의, 신(新)실용주의, 여성주의 등이 포함될 수 있다. 그리고 이같은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끄 데리다, 미셸 푸꼬, 자끄 라깡 등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들의 비판이론들과, 이들의 선구들인 프리드리히 니체, 마르틴하이데거, 지그문트 프로이트로부터 그 사상적 이론적 뒷받침을 얻고 있다. 또 포스트모더니즘의 주요한 사상적 배경을 제공하고 있는 포스트구조주의와 해체론은 주체, 역사주의, 의미, 철학에 대한 근원적인 비판을 제기하고 있으며, 일체의 불변 자성(自性)을 거부하는 반(反)형이상학적 탈(脫)형이상학적 비판정신과 회의주의, 상대주의, 다원주의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지배적인 지적 환경을 형성하고 있다.

근래 서구의 여러 학문 분야에서 포스트모더니즘을 불교, 특히 나가르주나(龍樹)의 사상과 접목시키려는 다양한 시도들이 나타나고 있고, 국내에서도 불교가 포스트모더니즘의 뿌리라는 연구가 나오고 있으며, 짙은 불교적 작품세계를 보여주는 남미 아르헨티나 출신의 작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를 포스트모더니즘의 사상적 원천으로 꼽는 주장도 나와 있다. 보르헤스가 불교에 정통하고 불교 관련 저서까지 출판한 바 있다는 사실은 이같은 주장
에 대한 뒷받침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국내의 경우, 예컨대, 이정호 교수(서울대. 영문학)의 지적처럼, ‘근원이 없는 세상’과 ‘빈 중심’ 또는 ‘중심부재’에 대한 인식, 그리고 이성과 말과 논리로서의 로고스에 대한 신뢰(logocentrism)를 배격함에 있어서 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은 공통점을 가질 수 있다. 또 김홍근 교수(외국어대. 중남미문학)의 지적처럼, “20세기 후반부에 세계 지성을 리드하는미셸 푸코, 자크 데리다, 모리스 블랑쇼, 쥬네트 등 프랑스 후기구조주의 철학자들과 평론가들 그리고 존 가드너, 토마스 핀천, 존 바스 등 미국의 포스트모더니스들”이 “한결같이 그들의 사상의 원천으로서, 정신적 아버지로서” 지목하고 있는 보르헤스가 보여주는 “이성중심주의적 이분법-주체와 객체, 자아와 타아 등-의 붕괴”가 보여주는 “불교사상과의 밀접한 관계”를 통해 불교와 포스트모더니즘은 만나고 있는 것일 수 있다.

김형효 교수(한국정신문화연구원. 철학)는 데리다의 해체철학에서 불교를 포스트모더니즘과 연결시킬 수 있는 두가지 실마리를 발견해내고 있다. 김교수에 의하면, 첫째-우리의 부자가 약이 될 수도 있고 독이 될 수도 있듯이-약이면서 독이기도 한 파르마콘(pharmakon)에 대한 데리다의 사유는 불교적인 논리를 보여준다. 파르마콘은 참/거짓, 안/밖, 선/악, 본질/가상 등이 공존하는 2중적/양가적(兩價的) 상태, 양자공존의 논리, 동거(同居)의논리, 이중긍정의 논리인 동시에 이중부정의 논리를 보여준다. 또 불교의 ‘색즉시공, 공즉시색’, ‘색불이공, 공불이색’에 나타나는 색(色)과 공(空)의 동거와 접목, 그리고 이와 함께 가는 ‘비색비공’(非色非空)의 초탈의 논리는 기독교적인 로고스의 논리와 다른 파르마콘의 논리에 해당한다. 둘째, 파르마콘이 상호이질적인 것들을 수용하고, 이 상호이질적인 것들이 서로 얽혀 차이를 형성하고, 그 차이가 또 다른 차이를 만들어내기 때문에, 파르마콘의 끊임없는 차이짓기와 연기하기의 과정은 곧 불교의 연기(緣起)와 다를 바 없다. 이같은 지적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을 불교의 핵심 교의인 연기설 및 불일불이(不一不二) 사상과 접맥시킬 수 있게 해주는 소중한 통찰이다.

불교적인 관점에서 포스트모던적 현상의 사상적 바탕을 들여다보려는 해외의 주요 시도들은 대체로 나가르주나의 사상과의 유사성에 주목하고 있는것처럼 보인다.

가톨릭 사제로서 불교적 데리다 연구를 수행하고 있는 로버트 매그리올라는 그의 저서 《수리 중인 데리다》(1984)에서 “현대인이 데리다 없이는나가르주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쓰고 있다. 나가르주나를 데리다, 해체론, 포스트구조주의의 문맥 하에서 다루려는 선구적 시도를 보여준매글리올라는 데리다가 동양은 “로고스중심주의의 변형들” 이상을 제시하지 못한다고 말했으나, 이는 잘못된 정보 때문이라고 지적하고, 나가르주나의 중도가 “로고스중심주의적 중간”(a logocentric middle)이 아니라 “사이의 길”(the way of the between)이고 “존재와 비존재 사이의/로부터의 미끌어짐”이며, 이는 데리다의 지속적 관심사인 “그리고/또는 사이의그리고/또는”이라는 회피의 전략과 다를 바 없다고 주장한다. 더욱이 나가르주나는 로고센트리즘을 부정하면서도 동시에 이를 복권시킨다는 점에서 로고센트리즘의 극한적 해체에 집착하는 데리다의 한계를 극복한다. 매글리올라에 의하면, 데리다의 해체적 방법론의 특징은 1) 적을 자기 모순에 빠뜨리기, 2) 다른 결론을 제시하기, 3) 이 결론을 지우기, 4) 지운 흔적들로부터/사이에서 디페랑스(differance:관계짓기/차이짓기/연기하기, 差延)에의해 발생된 ‘희미한 빛’(lueur)을 인지하기 등이며, 이 모두가 나가르주나적인 특징이다. 매그리올라는 나가르주나의 공을 데리다의 디페랑스와 동일시한다.

이같은 주장들에 의하면, 나가르주나는 데리다의 선구이고 불교는 포스트모던적 현상의 사상적 원천이다. 여기서 우리는 “데리다 없이는 나가르주나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매그리올라의 말을 바꾸어, “나가르주나없이는 데리다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며, “불교 없이는 포스트모던적현상의 뿌리를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플라톤이래의 서구 로고스중심주의에 대한 근원적 저항과 전복의 과정/결과로서 나타나고 있는 사상적, 문화적, 사회-정치적인 포스트모던적 격동은 분명 서구 전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며, 또한 반(反)서구적이다.

양차대전을 전후해서부터 거듭돼온 서구의 정신적 지적 위기는 밖으로부터이 위기를 타개할 사상적 철학적 원천들을 모색해왔으며, 그같은 원천들 중의 하나가 불교사상이라는 지적들이 서구인들 자신에게서 나오고 있다. 불교사상은 서구인들의 정신적 밑텍스트(subtext)를 이루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롤랑 바르뜨, 쥘리아 크리스테바 같은 프랑스 포스트구조주의 세대의 사상가들이 공개적으로 동양에 대한 그들의 인식을 논의하고 있으며,경우에 따라서는 푸꼬의 경우처럼, 그가 동양사상 특히 나가르주나의 공사상과 친숙했으며 그의 텍스트들이 동양적 국면들을 시사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동양(사상)에 관해 거의 언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푸꼬의 저작들에는 동양적 담론이 감추어져 있다. 우타 리프만 샤우프에 의하면, 푸꼬는 동양적 사상의 입장에서 서구 문화를 비판하고 있다. 쇼펜하워가 그랬고 니체가 또한 그랬다. 니체의 서구문명 비판 중에서 《선과 악을 넘어서》와 《도덕의 계보학》은 인도철학의 영향을 가장 많이 받은 저서들이며, 이 저서들은 포스트구조주의자들에 의해 가장 빈번히 인용되는 저서들이다.

샤우프는 푸꼬의 텍스트들, 특히 1968년에 출판된 텍스트들은 불교와 나가르주나의 사상체계와 유사한 국면들을 보여준다고 지적하면서, 하나의 입장을 채택하고 방어하는 대신, 고정된 입장들을 피하려고 노력하고, 예컨대니체의 허무주의 철학과 마르크스주의 유물론 철학에 동시적으로 탐닉하는푸꼬의 자세는 바로 이같은 면을 보여주는 단적인 예라고 주장하고 있다. 푸꼬가 ‘극한적인 현상학적 실증주의’와 ‘극한적인 허무주의’로 동시에 비난받는 것은 바로 이같은 연유에서이다. 하나의 입장에 집착하는 것은 극단이며, 극단에 빠지지 않는 것이 곧 불교의 중도이다. 동양사상과의 관련성에 관한 푸꼬의 침묵에도 불구하고 그는 중도적인 사유의 실천자이다.

불교적인 포스트모더니즘 읽기에서 흔히 간과되고 있는 것은 불교의 공사상의 토대를 이루는 연기설의 중요성에 대한 인식이다. 불교의 중심철학은 나가르주나의 중관사상이며, 중관사상의 핵심은 연기설인 것으로 널리 지적되고 있다. 포스트모던적 사상의 주요 배경을 제공하는 니체와 푸꼬의 계보학, 데리다의 해체철학의 핵심인 텍스트 이론, 그리고 포스트구조주의와 해체론의 집중적 공격 표적이 되고 있는 관념론 철학에서 제기되고 있는 ‘진리의 일관성의 이론’과 ‘사실들의 상호의존의 이론’에 나타나는 연기적(緣起的) 국면들과 이들이 가지는 포스트모던적 의미에 대한 탐구는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실로 연기설을 통해 얻어지는 공의 인식은 탈중심적 탈자성적 포스트모니즘 사상들의 진정한 요체가 아닐까.


박경일/경희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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