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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는 불교적인가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6.04 10:31
  • 수정 2019.07.09 15:29
  • 호수 1442
  • 댓글 0

기도 서적 5145종 중 불교는 2.3%
불교학계 기도 다룬 논문도 극소수
기도 외면할수록 불교 종교성 퇴색

사찰에서 기도는 일상적으로 쓰이는 용어다. ‘초하루기도’ ‘삼칠일기도’ ‘백일기도’ ‘천일기도’ ‘철야기도’ ‘관음기도’ ‘지장기도’ ‘다라니기도’ ‘방생기도’ 등 숱한 기도들이 있다. 그럼에도 기도는 종종 부정되거나 평가절하된다. 명망 있는 스님들조차 “불교는 자력종교이고 수행의 종교이므로 빌고 바라는 것은 올바르지 않다”라거나 “기도는 하근기 중생들을 위한 방편”으로 표현한다. 이러다 보니 모든 절에서 기도가 행해지지만 정작 불교 안에서 기도의 위상은 대단히 낮다.

이러한 모순된 현상은 출판계와 학계에서 선명히 드러난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기도 관련 서적이 5145종에 이른다. 이 가운데 개신교 서적이 총 3470종으로 전체의 67.4%, 가톨릭 서적은 373종으로 전체 7.2%를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불교는 116권으로 전체 2.3%에 그쳤다. 그나마 품절이나 절판된 책을 제외하면 67종에 불과하며, 이 67종 중에는 불교의 기도와 무관한 책들도 포함돼 있어 실제적으로는 더욱 적은 실정이다.

책을 펴낸 저자들도 기독교는 목회자, 신학자, 문인, 신도 등으로 다양하지만 불교는 대부분 스님과 출판사 편집부, 몇몇 재가자들로 한정돼 있다. 특히 불교학자들이 기도에 관심을 갖고 책을 내는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이런 가운데 불교문예연구소가 지난 4월말 개최한 학술대회에서 ‘불교의 기도는 행복을 불러오는가’(김재권)라는 논문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했다. 발표자는 기도의 정의와 유형, 불교의 기도와 행복의 상관성 등을 다뤘다. 이를 통해 그는 “수행명상은 넓은 의미에서 기도의 일환으로 이해된다.… 결국 기도는 일상적인 행복의 차원에서 영원하고 완전한 행복의 차원으로 승화시키는 징검다리가 될 수 있다”고 밝혔다.

발표자 말처럼 기도가 수행의 일종일 수 있음에도 불교학계에서 기도는 철저히 외면받아왔다. 2018년 6월 현재 한국교육학술정보원이 제공하는 ‘학술연구정보서비스(www.riss.kr)’에는 지금까지 등재(후보)학술지에 발표된 기도 관련 논문이 2471건인 것으로 나타난다. 이 가운데 절대다수가 기독교와 가톨릭 계통 논문으로 불교 명상법을 활용해 신과 가까워지고 영적 안정감을 모색한 논문까지 있다. 반면 불교의 기도를 다룬 논문은 ‘진각종 기도법에서 불공·불사의 의미와 특징’(김치온, 2012)과 ‘만공의 민족운동과 유교법회·간월암 기도’(김광식, 2016)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이 같은 수치는 불교학자와 지식인들이 불교현장에서 이뤄지는 기도를 외면하거나 부정적으로 보고 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자력종교에 대한 과도한 편중은 심각한 문제를 불러올 수 있다. 불교의 종교성을 탈색시킴으로써 불교가 힘겨운 상황에 처한 이들의 의지처가 되기 어려울 수 있음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이재형 국장
이재형 국장

가산불교대사림에는 불교의 기도를 두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부처님이나 신에게 적극 빌어 초자연적인 위신력을 기계적으로 구하는 현세 이익적인 기도, 부처님 등 숭배대상에 귀의해 믿음을 가지고 참회해 죄를 소멸하고 감사·보은·찬탄·숭앙 등을 위해 부르는 비공리적 기도가 그것이다. 전자가 민간신앙, 후자는 밀교의 삼밀가지와 정토의 염불 등을 꼽을 수 있다. 처음 기복적인 요소로 불문에 발을 들였더라도 경전을 읽고 법문을 들음으로써 점차 기복을 넘어 깨달음으로 이끌었던 것이 불교의 전통이었다. 그 토대가 바로 기도인 셈이다.

중앙승가대 명예교수 종범 스님은 “기도는 악을 멸하고 선을 닦는 것으로 기도가 수행이고 수행이 기도다. 기도를 낮게 보는 것은 이해 부족에서 오는 것”이라고 안타까워했다.

기도는 지극히 불교적이다. 기도 없이 서원이 단단해질 수도 없다. 학계에서 이제 기도에 관심을 갖고 정당한 복권을 시도해야 한다. 그럴 때 불교의 종교성이 풍성해지고 기도하는 불자들도 당당해질 수 있다.

mitra@beopbo.com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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