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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반시, 일승법계도 그림의 의미

기자명 해주 스님

붉은색 줄과 검은 글자, 흰 바탕 세 가지는 삼종세간을 상징

나 스스로 부처라는 것을
의상 스님 반시로 드러내

54각으로 이어진 도인과
210자의 글자 모습으로
다양한 수행방편 제시해

54각은 54선지식 뜻하고
210자 의미는 보현보살이
이백 질문에 열 대답 비유

4면과 4각 구성된 도인은
사섭법과 사무량심 의미

통도사 화엄칠처구회도.

‘법성게’는 ‘법계도인’과 합해서 ‘반시’라는 그림으로 그려졌다. 그래서 ‘법성게’ 의 내용을 살펴보기 전에 반시의 그림 모양이 상징하는 의미부터 먼저 짚어보기로 한다.

경의 내용을 한눈에 쉽게 알 수 있게 그림으로 그린 것을 변상도라고 한다. ‘화엄경’ 변상도는 주로 80권 ‘화엄경’의 변상도인데 7처9회도, 80권 각권의 변상도, 사경과 목판본 앞에 그리거나 새겨진 그림 등이다.

의상 스님이 60권 ‘화엄경’의 전 내용을 그려 보인 반시는 그림이기는 하나, 그 모양이 변상도와는 많이 다르다. 그것은 210자의 시(詩)인 ‘법성게’가 그림의 두 요소 가운데 하나로 들어있기 때문이다.

의상 스님이 일승(一乘) ‘화엄경’의 세계를 법계(法界)라 명명하고, 그 법계를 시와 도인을 합한 합시일인으로 그렸으므로, 반시를 ‘일승법계도합시일인’이라고도 이름 한다.

반시에서 붉은색(朱色)의 한 줄[一道]과 검은 글자 그리고 흰 바탕의 세 가지는 각각 지정각세간(智正覺世間), 중생세간(衆生世間) 그리고 기세간(器世間)의 삼종세간을 상징한다. 지정각세간은 불보살을 말한다. ‘화엄경’에 출현하는 보살은 부처님과 같이 지혜로 정각을 이룬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줄과 글자와 종이가 한자리에 있듯이, 삼세간이 다른 세계가 아니고 하나이므로 융삼세간(融三世間)이다. 지정각세간과 중생세간은 정보(正報)이고 기세간은 의보(依報)이므로 의정불이(依正不二)의 삼세간이 융삼세간이다. 이러한 삼세간은 모두 불세계를 벗어나지 않는 융삼세간불(融三世間佛)의 불세계이다. 즉 중생세간도 융삼세간불로서의 중생세간이고, 기세간도 융삼세간불로서의 기세간이다.

삼세간은 석가모니불이 해인삼매(海印三昧)에 의해 펼친 화엄법계의 일체 모든 존재이다. 해인삼매란 바다에 파도가 잠잠하면 모든 물상이 다 비치는 것에 비유한 것이다. ‘화엄경’에는 10종 삼매에 포섭되는 백천삼매가 있는데. 해인삼매는 그 모든 삼매를 포섭하는 총정(總定)이다.

‘현수품’에서는 부처님이 안 계신 곳에서 정각을 이루고, 법문을 설하고, 갖가지 모습으로 중생을 제도하는 등이 해인삼매의 힘이라고 교설하고 있다. 그리고 하늘에서 천제와 아수라가 싸우는 광경이 세세하게 맑은 물에 다 비치는 비유를 들고 있다.

‘보왕여래성기품’에서는 해인을 부처님 보리의 여래성기(如來性起)와 관련시켜 설하고 있다.

“불자야, 비유하면 대해가 일체중생의 색상의 인이 되므로 대해를 인이라고 부르는 것처럼, 여래 응공 정등각의 보리(菩提)도 이와 같아서 일체 중생의 심념(心念)과 제근(諸根)이 보리중에 나타나지만 나타나는 바가 없기 때문에 여래를 일체각(一切覺)이라 한다.

비유하면 모든 대해에 일체 중생들의 색상이 모두 현현하므로 일체인이라 하는 것처럼, 시방 세계중의 일체 중생들이 무상보리해(無上菩提海)에 나타나지 않는 법이 없다.“

이와 같은 ‘화엄경’ 말씀에 의거해서 ‘일승법계도’에서는 해인삼매를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다.

“인(印)이라고 하는 것은 비유에 의해 이름붙인 것이다. 왜냐면 대해가 지극히 깊고 밝고 맑아서 밑바닥까지 다 드러나 보여서, 천제가 아수라와 싸울 때에 모든 병사들과 일체 무기들이 그 가운데에 분명히 현현하는 것이, 마치 인에 문자가 나타나는 것과 같으므로 해인(海印)이라고 이름 하는 것이다.”

의상조사상. 낙산사의상기념관 소장.

이어서 바닷물이 밑바닥까지 드러날 정도로 청정하고 밝기 때문에 삼종세간이 그 가운데 현현해서 해인이라고 이름하며, 이 경계는 법성(法性)을 궁극적으로 증득해 깨달음에 의한 것이라고 한다.

“법성을 궁극적으로 증득하여, 밑바닥이 없어서 구경에 청정하고 담연명백하여 삼종세간이 그 가운데 현현하므로 해인이라고 이름붙인 것이다.”

이 해인삼매는 부처님의 삼매이다. 해인에서 바닷물은 불정각보리심을 상징한다. 바다에 온갖 물상이 비치듯 부처님 보리심바다에 중생들의 온갖 번뇌가 다 나타난다. 그런데 보리심바다는 물에 비친 중생들의 번뇌에 의해 더럽혀지지 않을 뿐 아니라, 실은 중생들의 번뇌가 다 부처님보리심 뿐인 것이다.

바다에 비친 물상은 실은 물상이 아니라 바닷물뿐이듯이, 해인삼매의 경계는 온전히 불경계이다. 따라서 해인삼매에 번출된 삼종세간이 모두 다 불경계인 것이다.

고요하고 맑은 물에 비친 일체 존재가 다 물이듯이, 부처님의 보리 마음에 비친 중생들의 마음 역시 부처님의 보리 마음이다. 그래서 모든 세계는 오직 보리 마음에 의한 깨달음의 세계이다.

바꾸어 말하면 중생들이 자기 마음에 떠올린 존재는 자기 마음 그대로이고 그 마음이 만든 존재인데, 그 마음과 그 존재가 청정하지 못하다면 미혹 망상 때문인 것이다. 일체가 해인삼매의 경계임을 몰라서, 중생세간이 융삼세간불임을 모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미혹 망상을 없애고 본래 자기로 돌아갈 수행방편이 필요한 것이다.

이와 같이 의상 스님은 해인삼매에 의해 펼쳐진 융삼세간불의 경계를 ‘반시’로 드러내어 자기 마음이 바로 부처님 마음이고 자신이 바로 본래 부처임을 깨닫게 한 것이다. 이것이 일차적으로 ‘반시’를 통해 증득하는 수행법이라 할 수 있다.

‘반시’는 또 54각으로 이어진 도인과 210자의 글자모습으로 다양한 수행방편을 제시하고 있으며, 다음 ‘법성게’에서도 의상 스님이 강조한 수행법을 다시 만날 수 있다.
먼저 도인과 글자 모양을 소개하고 그 의미를 통한 수행법을 살펴보자.

⓵도인이 한 길(一道)이다. 한 길은 여래의 일음을 나타내기 때문이니, 여래 성기음(性起音)이다. 성기음이란 부처님이 음성으로 여래출현을 보이시는 것이다. 부처님 음성은 부처님의 성품이 그대로 일어난 것임을 뜻한다. 부처님은 일음으로 설법하시는데 중생들은 근기 따라 달리 알아듣는다. 그래서 한 길은 하나의 훌륭하고 교묘한 방편을 뜻한다.
⓶도인에 굴곡이 많다. 굴곡은 중생의 근기와 욕망이 같지 않은 것을 따르기 때문이니, 곧 삼승의 가르침에 해당한다. 삼승은 일승에서 흘러나온 것(所流)이고 일승을 목표로 한 것(所目)이라 하여, 일승과 삼승이 주반상성임을 보이고 있다. 굴곡 외에 일도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⓷도인에 시작과 끝이 없다. 시작이 끝이고 끝이 시작으로 계속 이어지고 있다. 이것은 선교방편이 일정한 방소가 없어서[善巧無方] 법계에 응하여 걸맞고[應稱法界] 십세에 상응하여(十世相應) 원융만족(圓融滿足)함을 나타내 보이는 것이다. 이러한 원융한 화엄교설이 원교(圓敎)이다.
⓸크게 4면과 4각으로 되어 있다. 4면 4각은 사섭법과 사무량심을 나타낸 것이다. 사섭법은 보시섭· 애어섭· 이행섭· 동사섭으로서 십지 가운데 초지에서 제4지까지 차례로 시설되어 있다. 보시하고, 부드러운 말하고, 이로운 행을 하고, 더불어 함께하는 보살도를 수행의 기본으로 한 것이다.
그리고 사무량심은 대자· 대비· 대희· 대사로서, 노사나(비로자나) 부처님의 과거 인행시 십종 수행 중 네 가지 수행법에 속하기도 한다. 불본행(佛本行)이 곧 대승보살의 인행(因行)인 것이다.
⓹54각 210자이다. 이 의미에 대해서는 의상 스님이 직접 언급하고 있지는 않다. 법손들이 54각은 54선지식의 인지식(人知識)이고, 210자는 ‘이세간품’ 2000법문의 법지식(法知識)에 해당하는 것으로 이해하기도 하였다.

‘입법계품’ 에서 선재동자가 만난 선지식은 일반적으로 53선지식이라고 일컬어지고 있으나, 덕생동자와 유덕동녀가 한 장소에 함께 있으므로 54선지식이 된다. 그러므로 54선지식의 해탈법문과 보살행이 입법계(入法界)하여 해탈하는 주요 수행방편이 된다.

‘이세간품’의 2000자량이 210자에 해당한다는 것은 200가지 질문에 보현보살이 각각 10가지로 답한 것에 의미를 둔 까닭이다. ‘이세간품’은 화엄수행계위로 볼 때 마지막 묘각단계인데 이 단계에서는 온전히 중생교화를 위해 다시 중생계로 회향하는 곳이므로 화엄수행 전체를 포섭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입법계품’의 선지식 법문은 ‘이세간품’까지의 모든 법문을 다시 한 번 선재의 선지식 법문으로 펼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화엄경’의 모든 수행방편을 54각의 도인과 210자의 ‘반시’ 형태로 나타내었음을 알 수 있다.

⓺글자가 시작과 끝이 있다. 이 점은 수행의 방편을 기준으로 하여 원인과 결과가 같지 않음을 말한다. ⓻글자 중에 굴곡이 많다. 이것은 삼승의 근기와 욕망이 달라서 같지 않음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⓼시작과 끝의 두 글자가 그림의 한가운데 놓여있다. ‘법’자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불’자로 끝나는, 첫 글자와 끝 글자를 한 중앙에 같이 둔 것이다.[始終兩字 安置當中] 이것은 원인과 결과의 두 자리가 법성가의 진실한 덕용이며 성이 중도에 있음을 나타낸 까닭이라고 한다.(表因果兩位 法性家內 眞實德用 性在中道故)

무슨 의미인가? 의상 스님은 이 도리를 육상(六相)으로 설명하고 있다. 이 점 지면을 달리하여 언급하기로 한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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