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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편리함의 대가

기자명 최원형

1만미터 마리아나 해구 속에도 비닐봉지가 산다

19세기말 워싱턴서 빨대 유행
편리함 부각되면서 세계로 퍼져
한 번 사용 후 버려져 환경오염
잔류성 유기오염물질 발견돼

점심식사를 마치고 거리에 쏟아져 나온 이들 손에 1회용 음료수 컵이 들려있다. 쓰레기 대란이 벌어진 뒤에도 우리 일상에서 달라진 모습은 잘 보이지 않는다.

물건의 비닐 포장도 여전하고 날이 더워지니 생수병을 휴대하고 다니는 이들을 어렵잖게 만나게 된다. 이런 풍경을 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의식 안에 이 지구가 하나뿐인 우리의 집이라는 생각이 있기는 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1회용품 사용에 조금도 거리낌 없는 모습을 보면 지구를 혹사시켜도 이주해 갈 행성 몇 개쯤 지니고 있는 사람들처럼 보인다. 최근 1회용 플라스틱 컵뿐만 아니라 플라스틱 빨대 사용마저 금지하거나 친환경 재질로 대체하려는 분위기가 유럽을 중심으로 번지고 있다.

빨대가 보편적으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말 워싱턴의 한 술집에서였다. 더운 날 위스키 잔에 손을 대면 뜨듯해져 맛이 변하기에 손을 대지 않고 먹으려 밀집조각이 쓰였다고 한다. 그런데 밀집 특유의 냄새 때문에 위스키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었던 어떤 예민한 이가 종이를 말아 빨대로 사용하기 시작했다. 이 종이 빨대는 순식간에 사람들에게 인기를 끌게 됐고 급기야 이 사람은 빨대 회사를 차리게 됐다. 이렇게 시작된 빨대가 플라스틱이 발명되면서 세계인들에게 널리 사랑 받게 되었다. 빨대의 사용 범위도 무척 광범위해졌다. 빨대는 컵을 들어 올리지 않아도 중력의 역방향으로 얼마든지 액체를 마실 수 있도록 해 줄뿐만 아니라 빨대 덕분에 움직이는 차 안에서 단 한 방울도 흘리지 않고 음료를 마실 수 있게 됐다.

빨대의 장점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데 한 번 더 생각해보면 우리는 편리함의 이면에 놓인 그림자를 간과했다. 빨대는 여러 번 사용이 불가하다. 게다가 빨대는 음료를 사면 언제나 공짜다. 그러니 굳이 필요하지 않아도 손이 가는 물건이 됐고 소비가 급증했다. 이렇게 쉽게 쓰인 빨대는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지구상 가장 깊은 바다로 알려진 마리아나 해구의 해저 10킬로미터쯤에 사는 바다생물 몸에서 독성물질이 검출됐다. 그것도 중국의 오염된 강에 사는 생물보다 50배 높은 수치로 말이다. 그 독성물질은 잔류성유기오염물질(POP)이다. 잔류성유기오염물질은 일단 배출이 되면 분해가 거의 되지 않고 계속 축적되면서 생물 몸에 지속적으로 농축되는 특성이 있다. 그리고 생물 몸에 들어가게 되면 안정적으로 축적되면서 내분비계를 교란시킨다. 문제의 심각성을 깨닫고 국제사회는 2004년 스톡홀름 협약이후 더 이상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생물체 몸을 오염시키고 있다. 더구나 사람의 접근이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멀고도 깊숙하게 떨어져있는 해구에 사는 생물의 몸에 오염물질이 축적되고 있었다. 이 사실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과학자들은 오염경로로 몇 가지를 추정하고 있다. 이미 오염되어 해구로 떨어진 생물의 사체를 통해서 혹은 미세플라스틱을 통한 오염일 것으로 보고 있다. 미세플라스틱은 오염물을 축적하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로써 전 세계 바다의 깊은 밑바닥까지 완전히 오염이 되었다는 것과 축적된 오염물질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하게 됐다.

며칠 전에는 마리아나 해구 1만 미터가 넘는 바닥에서 비닐봉지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접했다. 마리아나 해구 5000미터쯤에서는 스팸 깡통이 버려져 있기도 했다. 에베레스트 산의 높이가 해발 8800여 미터쯤 되니 에베레스트 산보다도 아래로 훨씬 더 깊은 곳에서. 마리아나 해구 바닥에까지 비닐봉지가 떠밀려가 있었다는 것은 커다란 충격이었다. 과학자들이 분석해본 결과 비닐봉지는 생산된 지 30년쯤 되었다고 한다. 21세기 들어서 비닐봉지를 비롯한 플라스틱 사용량은 훨씬 더 증가했는데 그렇다면 그 많은 쓰레기들은 지금쯤 어느 바다 속에 그득 쌓여있는 걸까? 얼마나 많은 생물들의 몸 또한 그로 인해 오염되어 있을까? 잔잔한 해수면만 바라봤을 땐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빨대 사용을 금지하자는 분위기만 있는 것은 아니다. 일부 기업들은 빨대 사용 금지에 불편한 내색을 보이기도 한다. 누구나 알만한 햄버거 회사는 빨대 사용 금지를 주주총회에서 부결시켰다. 그 안에도 나름의 사정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저런 이유에도 우리는 좀 더 큰 틀에서 지금의 소비 습관을 조망할 필요가 있다. 세간의 삶이라는 게 인과의 법칙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으니 오늘 누린 편리함의 대가는 분명 있다. 그 대가를 누가 그리고 어떻게 받을 것인가에 대한 생각을 진지하게 해 본다면 과연 우리의 소비 습관을 이대로 지속시킬 수 있을까?

최원형 불교생태콘텐츠연구소장 eaglet777@naver.com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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