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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후가이 에쿤의 ‘지월포대도(指月布袋圖)’

기자명 김영욱

달 보는데 손가락 거칠 필요 없다

손가락으로 달 가리키는 지월
선수행 단적으로 비유한 고사
달은 궁극적인 진리를 상징해
손가락 집착하면 달을 잃을 것

후가이 에쿤(風外慧薫, 1568~1654?) 作, ‘지월포대도(指月布袋圖)’, 1650년, 종이에 먹, 32.9×43.7㎝, The Metropolitan of Art.
후가이 에쿤(風外慧薫, 1568~1654?) 作, ‘지월포대도(指月布袋圖)’, 1650년, 종이에 먹, 32.9×43.7㎝, The Metropolitan of Art.

情存見道還迷道(정조견도환미도)
心要求安轉不安(심요구안전불안)
安到無安見無見(안도무안견무견)
方知此事勿多般(방지차사물다반)

‘도를 보는 것에 뜻을 두면 오히려 도에 미혹되고, 마음으로 편안함을 구하면 도리어 편안하지 않게 되네. 편안함이 편안치 않음에 이르고 보는 것이 보는 것이 없음에 이르면, 바야흐로 이 일이 복잡하지 않음을 알게 되리라.’ 충지(冲止, 1226~1292)의 ‘도안 장로에게 부치다(寄道安長老)’.

먼 옛날, 무진장이라는 비구니가 혜능을 찾아와 ‘대열반경’의 가르침을 구했다. 혜능은 자신이 글자를 모르니 경전을 독송하여 들려준다면 가르침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이에 무진장이 글자를 모르는데 어찌 진리를 알겠느냐고 물으니, 혜능이 달을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진리란 문자와 무관한 것이니, 마치 밤하늘의 달과 같다네. 반면 문자는 그대와 나의 손가락이나 다름없네. 손가락은 달을 가리킬 수는 있어도 달 자체는 아니니, 달을 보는데 반드시 손가락을 거칠 필요는 없지 않겠는가?”

후가이 에쿤(風外慧薰, 1568~ 1654)의 ‘지월포대도(指月布袋圖)’는 포대화상이 손가락을 들어 달을 가리키고 있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작은 몸집의 포대화상이 엄청 큰 포대를 둘러메고 손가락을 들어 하늘 위에 보이지 않는 달을 가리키고 있다. 엷은 먹을 묻힌 짧은 몽당붓의 터치로 표현된 의복과 진한 먹으로 그린 옷자락이 절묘한 대비를 이룬다. 짧은 붓놀림을 통한 농묵의 대비와 빈 공간에 의미를 부여한 구성 방식에서, 그가 앞선 선종 화가들의 화풍을 계승한 사실을 엿볼 수 있다.

특히 포대의 늘어진 배를 그린 듯 몸을 가로질러 빠른 속도로 뽑아낸 선(線)의 여운은 작가의 탁월한 감각을 보여준다. 감각적인 선의 흐름은 초서체로 적힌 시로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그는 자신의 삶에 만족했던 포대화상을 길가에 서서 달을 가리켜 바라보는 늙은 손님으로 묘사했다.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지월(指月)’은 선종의 수행을 단적으로 비유한 고사이다. 달은 궁극적인 진리인 선(禪)을, 손가락은 선으로 연결하는 수단을 말한다. 나의 마음을 저 달을 통해 앎으로써 자신이 궁구하는 선에 도달한다는 의미이다. 동시에 손가락을 주시하며 달을 찾는 우매한 중생의 경계를 암시한다.

진정으로 보는 것에는 보는 것이 따로 필요 없다. 인위적인 마음을 갖게 되면 보기 위한 행위에만 집착한다. 마찬가지로, 편안함을 구하고자 하는 마음은 편안함과 불편함을 의식적으로 분별한다. 집착과 분별을 버리고 본다는 건 전혀 복잡하지 않다. 포대화상이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킨 것처럼, 그저 그거면 된다.

‘능엄경’에 적힌 한 구절을 인용하며 글을 맺는다.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손으로 달을 가리켜 보인다면 그 사람은 손가락을 따라 당연히 달을 보아야 한다. 만약 손가락을 보고 달의 본체로 여긴다면, 그 사람이 어찌 달만 잃었다고 할 것인가, 또한 그 손가락도 잃어버린 것이다.”

김영욱 한국전통문화대 강사 zodiacknight@hanmail.net

[1442호 / 2018년 6월 6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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