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1년 3월, 미국에 대공황이 휩쓸던 시절 수백만 명이 직장을 잃고 일거리를 찾아 기차에 올랐다. 이때 테네시에서 조지아를 거쳐 앨라배마로 가는 화물열차에도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중 몇몇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돌을 던지며 기차에서 내리라고 고함을 질렀고, 흑인들도 이에 맞섰다. 그곳에는 14살에서 19살에 이르는 흑인 청소년 9명도 있었다. 기차가 앨라배마에 정차했을 때 경찰이 출동해 흑인 소년들을 스카츠보로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부랑과 질서파괴 혐의였다. 억울하더라도 경범죄였기에 곧 풀려날 것으로 보였다.
허나 그곳에 타고 있던 두 백인 여자의 진술로 상황은 확 바뀌었다. 흑인소년들에게 총과 칼로 위협을 받았으며, 구타와 강간도 당했다는 것이다. 이들 진술에 따라 경찰이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고, 의사들도 두 여자 모두 다친 곳이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백인 판사와 배심원들은 이들 흑인이 유죄임을 확신했고 재판 4일 만에 제일 어린 소년을 제외한 8명을 3개월 뒤 사형에 처할 것을 선고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흑인인권단체를 비롯해 남부 이외의 지역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나중에는 국제노동수호회까지 소년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그 덕에 사형집행일이 연기됐고 재판을 거듭하면서 소년들이 하나둘 풀려났고, 19년 뒤 마지막 소년도 출감할 수 있었다.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문예춘추사)에는 ‘스카츠보로 소년 사건(the Scottsboro boys)’을 비롯해 흑인들이 백인 여자들의 거짓 진술로 목숨을 잃거나 힘겨운 상황에 내몰리는 얘기들이 나온다. 이 책 후반에는 거짓 증언에 분노한 변호인이 “빌어먹을 거짓말쟁이 백인여자는 어디에나 있다니깐”라며 분개하는 모습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겪었던 상처를 드러내고 책임을 묻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초 현직 여성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문화예술계, 정치계 등 각계로 확산됐다. 이 과정을 거치며 시인, 극작가, 배우, 정치인, 종교인 등 긍정적인 이미지 저편에 감춰진 폭력과 선정성에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다. 또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우는 계기도 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진실공방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불자연예인으로 잘 알려진 김흥국씨는 30대 여성 보험설계사의 성폭력 의혹 제기에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및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심리적 고통과 밑바닥까지 추락한 그의 이미지는 회복이 어려운 상태이다.
지난달 17일 유튜브에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라는 영상을 올렸던 여성의 ‘성추행 의혹 스튜디오 사건’ 진실공방도 격해지고 있다. 그는 3년 전 ‘비공개 촬영회’에서 성추행과 협박을 당했으며, 촬영사진이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유명배우까지 가세함으로써 해당 동영상 조회수가 700만에 육박했다. 그러나 스튜디오 운영자가 3년 전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면서 이제는 사전 합의된 자발적 행위였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성추행했다고 미투 게시판에 올리고 PD수첩에도 출연했던 여성의 주장도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그 여성이 해인사에서 성추행당했다고 추정했던 날에 현응 스님은 서울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진실공방은 경찰 조사 결과 밝혀지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누구든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거짓말은 어렵게 용기를 낸 수많은 피해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행위로서, 흑인 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몇몇 백인 여성들의 거짓 진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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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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