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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카츠보로 소년 사건

  • 데스크칼럼
  • 입력 2018.06.11 11:10
  • 수정 2018.06.15 06:23
  • 호수 1443
  • 댓글 0

거짓 진술로 흑인들 사형 위기
미투운동 최대 걸림돌도 거짓말
사실 아니면 엄히 책임 물어야

1931년 3월, 미국에 대공황이 휩쓸던 시절 수백만 명이 직장을 잃고 일거리를 찾아 기차에 올랐다. 이때 테네시에서 조지아를 거쳐 앨라배마로 가는 화물열차에도 많은 사람들이 타고 있었다. 한참을 달리던 중 몇몇 백인들이 흑인들에게 돌을 던지며 기차에서 내리라고 고함을 질렀고, 흑인들도 이에 맞섰다. 그곳에는 14살에서 19살에 이르는 흑인 청소년 9명도 있었다. 기차가 앨라배마에 정차했을 때 경찰이 출동해 흑인 소년들을 스카츠보로 유치장에 집어넣었다. 부랑과 질서파괴 혐의였다. 억울하더라도 경범죄였기에 곧 풀려날 것으로 보였다.

허나 그곳에 타고 있던 두 백인 여자의 진술로 상황은 확 바뀌었다. 흑인소년들에게 총과 칼로 위협을 받았으며, 구타와 강간도 당했다는 것이다. 이들 진술에 따라 경찰이 수색 작업을 벌였지만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했고, 의사들도 두 여자 모두 다친 곳이 없다고 증언했다. 하지만 백인 판사와 배심원들은 이들 흑인이 유죄임을 확신했고 재판 4일 만에 제일 어린 소년을 제외한 8명을 3개월 뒤 사형에 처할 것을 선고했다.

이 같은 소식이 알려지자 흑인인권단체를 비롯해 남부 이외의 지역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다. 나중에는 국제노동수호회까지 소년들을 돕기 위해 나섰다. 그 덕에 사형집행일이 연기됐고 재판을 거듭하면서 소년들이 하나둘 풀려났고, 19년 뒤 마지막 소년도 출감할 수 있었다.

미국 흑인 시민권 운동의 어머니로 불리는 ‘로자 파크스 나의 이야기’(문예춘추사)에는 ‘스카츠보로 소년 사건(the Scottsboro boys)’을 비롯해 흑인들이 백인 여자들의 거짓 진술로 목숨을 잃거나 힘겨운 상황에 내몰리는 얘기들이 나온다. 이 책 후반에는 거짓 증언에 분노한 변호인이 “빌어먹을 거짓말쟁이 백인여자는 어디에나 있다니깐”라며 분개하는 모습도 나온다.

지난해 10월 미국에서 시작된 미투 운동은 여성들이 겪었던 상처를 드러내고 책임을 묻는 일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올 초 현직 여성 검사가 검찰 내 성폭력 실상을 고발하면서 문화예술계, 정치계 등 각계로 확산됐다. 이 과정을 거치며 시인, 극작가, 배우, 정치인, 종교인 등 긍정적인 이미지 저편에 감춰진 폭력과 선정성에 많은 이들이 놀라워했다. 또한 성추행이나 성폭행이 상대에게 얼마나 큰 상처를 줄 수 있는지를 새삼 일깨우는 계기도 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진실공방이 끊이질 않고 있다. 불자연예인으로 잘 알려진 김흥국씨는 30대 여성 보험설계사의 성폭력 의혹 제기에 엄청난 비난에 직면해야 했다. 경찰 조사 결과 무혐의 및 불기소 처분을 받았지만 심리적 고통과 밑바닥까지 추락한 그의 이미지는 회복이 어려운 상태이다.

이재형 국장
 

지난달 17일 유튜브에 ‘저는 성범죄 피해자입니다’라는 영상을 올렸던 여성의 ‘성추행 의혹 스튜디오 사건’ 진실공방도 격해지고 있다. 그는 3년 전 ‘비공개 촬영회’에서 성추행과 협박을 당했으며, 촬영사진이 유출됐다고 주장했다. 여기에 유명배우까지 가세함으로써 해당 동영상 조회수가 700만에 육박했다. 그러나 스튜디오 운영자가 3년 전 주고받았던 문자메시지를 공개하면서 이제는 사전 합의된 자발적 행위였는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조계종 교육원장 현응 스님이 성추행했다고 미투 게시판에 올리고 PD수첩에도 출연했던 여성의 주장도 그대로 신뢰하기는 어렵다. 그 여성이 해인사에서 성추행당했다고 추정했던 날에 현응 스님은 서울에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진실공방은 경찰 조사 결과 밝혀지겠지만 사실이 아니라면 누구든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한다. 거짓말은 어렵게 용기를 낸 수많은 피해자를 위축시킬 수 있는 행위로서, 흑인 소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던 몇몇 백인 여성들의 거짓 진술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mitra@beopbo.com

[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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