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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나도 이 곳, 머물러도 여기

기자명 금해 스님
  • 세심청심
  • 입력 2018.06.11 12:52
  • 수정 2018.08.07 10:58
  • 호수 1443
  • 댓글 0

불교, 어려움 겪으며 현재 모습 정착
최근 불거진 종단 소식에 마음 복잡
청소년 법우, 학교서 종단 주제 토론
대답 대신 생활속 여법함 환기시켜

가장 환희로운 축제인 ‘부처님 오신 날'을 봉행하면서도 TV방송에서 나온 종단 소식으로 내내 마음이 복잡했습니다. 더구나 청소년 법우가 학원에서 윤리사상시간에 이 문제를 주제로 토론했다는 이야기를 듣고, 아이들의 질문에 어떠한 답도 찾아 줄 수 없었습니다.

다음 날 불현듯 도반스님과 만행을 떠나, 땅끝에 숨어있는 섬과 섬을 찾아다녔습니다.

작은 섬의 작은 마을에도 교회는 꼭 하나씩 있는데, 사찰은 여러 섬을 통틀어 겨우 4개 정도밖에 되지 않았습니다. 그중에 찾아간 작고 오래된 절은 섬에서도 가장 높은, 올라가기도 힘든 곳에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새의 노랫소리가 가득했지만, 정작 인기척이 없었습니다. 법당은 겨우 서너 사람 들어설 정도로 작았고 오랜 불단은 나무 사이가 벌어져 금방이라도 떨어질 것 같았지요. 삼배를 올리고서 낡고 낡은 법당에서 흩어지는 바람을 안으며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 사이 돌아온 노스님은 주인 없는 절에 머문 비구니들을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바짝 마르고 주름진 손으로 내어주시는 찻잔에 마음이 쓰렸습니다.

홀로 낡은 암자를 지키는 노스님은 “예전에는 이 작은 섬으로도 만행 오는 젊은 스님들이 많았는데 요즘에는 전혀 없다”며 세월의 덧없음을 이야기했습니다. ‘차비도 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노스님의 정이 아쉬워서 몇 번이나 절을 올렸습니다.

또 다른 작은 절에서는 젊은 상좌의 기제사를 지낸 노스님의 점심공양을 받았습니다. ‘떠난 놈 칭찬해야 무슨 소용이냐’면서도 오랜 추억을 나누는 공양 시간은 마치 오랜만에 만난 가족들의 잔칫상 같았습니다. 십여 년의 세월을 되돌아간 듯했습니다.

생로병사(生老病死) 중생의 흔적은 언제, 어디서나 만납니다. 떠났다고 해서 떠난 것도 아니며, 머문다고 머문 것도 아닙니다. 떠나도 이곳이고, 머물러도 여기입니다.

금해 스님
금해 스님
 

한국불교는 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현재에 이르렀습니다. 시절이 좋아졌다고 하지만 시골의 작은 사찰은 겨우 유지하기도 어려울 정도고, 불법을 배우려는 신도는 도시에서도 만나기 힘듭니다. 이제 겨우 불교를 자신의 종교로 받아들이려는 청소년과 젊은이들은 작은 혼란에도 쉽게 흔들리고 떠나갑니다.

조주선사에게 학인스님이 찾아와 가르침을 청했을 때, 스님은 “아침은 먹었는가?”하고 물었습니다. ‘먹었다’는 학인스님의 답에 “그럼, 발우는 씻었는가?”라고 되물었습니다. 수행자에 대한 질문이자 답이기도 합니다.

청소년 법우들에게 법정 스님의 마지막 가사 한 벌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합니다. 그러나 이미 죽은 옛 고승의 수승함을 칭찬하는 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지, 지금 흔들리는 아이들에게 어떤 답이 될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아침 공양은 여법했는지, 발우는 청정하게 잘 비웠는지, 아이들의 시선 끝에 있는 나 자신에게 몇 번이나 되묻습니다.

금해 스님 서울 관음선원 주지 okbuddha@daum.net

[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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