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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한국불교, 이 시대·사회 책임지라 ③ 휴암 스님, 1987년 ‘한국불교의 새얼굴’

기자명 법보

형식 무시하는 게 ‘무애인’ 아니다

자력종교라는 말만 존재할 뿐
문제 발생하면 국가권력 의지
사상적 개혁의 길 스스로 막아

돈이라면 똥 묻은 것도 좋다하는 그런 사람은 실로 폭이 넓은 이도 아니며, 무애인도 아니요, 오히려 그런 이는 도리에 어둡고 욕망에 오염된 사람이 아니겠는가? ‘정의와 원칙을 지지함에 목숨도 두렵지 않노라’ 할 그런 걸림 없는 무애도 있을 법하지 않은가? ‘억만가지 이익도 원칙과는 바꾸지 않겠노라’ 할 그런 무애는 없는 것인가? 아무렇게나 하고 적당히 형식도 잘 깨뜨리는 사람은 무애인도 아니며 푹 쉰 사람도 아니요, 오히려 의지도 약하고 이익에 어두우며 경계에 물듦이 심한 사람이다. 오늘날 불교가 무사상에 빠지고 노덕스님들이 한 결 같이 원칙에 어두운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 분명히 파헤쳐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대체 사상으로서 볼 때 다른 종교에서는 사랑이니 박애니 하는 이름 밑에 ‘사형제도를 없애야 한다’느니 ‘고문을 추방시키자’느니 한다. 또 전쟁을 반대하고 집총을 거부하다가 매 맞고 옥에도 갇히면서 자기 종교의 가르침을 세상 속에 심기 위해, 순진하게도 세속 국가와의 충돌도 불사하고 마침내 국가와 세계조차도 자기 종교의 진리관대로 운영되기를 의욕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의 불교도 자기 자신의 가치관이 있고 자기 자신의 사상에 입각한 자신의 고유한 이상이 있을 것 아닌가. 그렇다면 그 사상과 그 가치관과 그 이상으로써 세속 국가를 변화시키고 사회를 교화시켜보겠다는 어떤 노선이 있을 법하지 않을까?

나는 호국불교라는 것으로도 불교를 발전케 하고 사회와 인류를 평화롭게 살게 할 충분한 지표가 될 수만 있다면 누구보다 앞장서서 발 벗고 호국불교를 강조하겠다. 그러나 호국불교가 아무 내용도 없는 구호이고, 그것이 불교의 발전을 도리어 막고 있고, 그런 것이 종교로서 나라를 위하는 바른 길도 될 수 없으며, 또한 그런 것은 오히려 백성의 애달픈 기대를 등지기만하는 길이었다면, 놀란 듯이 하던 짓을 중지하고 부끄러워하는 것이 참 종교인이 아닐까한다.

그러므로 이제 우리의 불교는 차라리 정치나 권력이나 세속과는 아예 인연을 끊고 산중에서 순전히 도만 닦든지, 그렇지 않고 종교로서 세속이나 국가 정치에 적으나마 관심을 보이려면 적어도 호국불교 운운하는 식으로 해서는 안된다는 정도의 상식은 지니고 할 일이다. 호국불교라고 했을 때, 우리는 이미 고등한 종교로서 인류나 세계를 넘겨다 볼 기백과 사상적 자각을 스스로 짓밟고, 국가라는 낮은 울타리 안에 갇히자는 생각으로 주저앉은 것임을 천만번 깨달아야 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해서 국가나마 제대로 위했느냐하면 그것도 아니다. 오늘날 우리의 불교가 세상의 불신을 받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소위 호국불교 때문이었고, 불교가 본래의 정신적 기백이 꺾이고 자기 모습을 상실하고, 침체의 수렁에 빠지게 된 것도 자력종교임을 내세우는 불교가 도리어 제 집안일을 자력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사상성 없는 빈 구호뿐인 소위 호국불교와 결탁하여 사사건건 해결을 권력에 기대려 했던 탓이다.

휴암 스님

우리 불교의 오늘날이 이 모양으로 되었으며, 스님들끼리 사분오열되어 존경심이 사라지게 된 원인도 바로 그와 같은 이유다. 슬프고 원통한 일이다. 역사적으로 불교가 인류와 세계, 그리고 자신이 소속된 지역 사회를 한 정신으로 묶고 통합하는 능력을 발휘함에 미흡했던 것은 불교와 스님들이 사상의 힘을 이해하는 소양이 부족했고, 불교가 호국이니 하는 권력적 개념과 결탁함으로써 불교의 사상적인 개혁의 길이 막혀버린 데 결정적인 이유가 있다. 또한 불교 속에 은근히 사바세계에서의 불교의 수명이 마치 국왕이나 권력의 비호 유무에 좌우되어있는 듯한 저열한 사고방식이 암암리에 흐르게 된 근본 원인도 불교가 사상의 힘을 이해하는 소양이 부족했던 탓이다.

[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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