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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 벽화-하

기자명 주수완

사실 표현과 엄격한 종교 규범 절묘하게 융합시킨 지오토 벽화

종교적 틀 강요했던 중세와
사실 중시 르네상스 연결한
과도기에 지오토 존재 중요

자신 최대한 드러내지 않고
성인의 신비로움을 담아내

경건함이 충만한 고려불화
지오토 그림과도 일맥상통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상부 성당과 지오토의 프란치스코 성인 일대기 연작 프레스코 벽화. 더 화려하고 역동적인 성당은 많이 볼 수 있었지만, 이보다 경건함을 주는 성당은 찾아보기 어려웠다.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은 상부와 하부 성당으로 나뉘어 있는데, 쉽게 말하면 2층 구조이다. 하부성당으로 들어가 안쪽까지 관람하고 여기서 일단 밖으로 통하는 계단을 따라 박물관 등이 있는 수도원 공간으로 나왔다가 다시 상부 성당으로 관람을 이어가게 된다.

하부 성당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건축으로 그 위에 세워진 상부의 고딕 양식보다 오래된 형식이다. 벽화 역시 이 성당에서 가장 오래된 중세 벽화로부터 지오토의 후학이라고 할 수 있는 삐에트로 로렌제티(Pietro Lorenzetti, 1280~1348) 등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시기의 작품들이 축적되어 있다. 상부 성당에도 마찬가지로 지오토의 스승인 치마부에의 벽화로부터 지오토의 벽화에 이르기까지 걸작들을 나란히 볼 수 있다. 흔히 치마부에는 마지막 중세 화가로도 불리는데, 이는 그의 제자 지오토에서부터 새로운 르네상스 회화가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세의 회화로부터 어떻게 르네상스 회화가 탄생했는가를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것은 프란치스코 성당의 매우 특별한 매력이다.

예를 들어 프란치스코 성인이 새들과 대화하는 장면을 그린 중세의 그림과 지오토의 그림을 비교해 보면 차이가 확연히 느껴진다. 중세에 그려진 그림 속의 나무는 등장인물들에 비해 높이가 낮을 뿐 아니라 나뭇잎의 묘사는 마치 접시에 그려진 도안처럼 장식적인 넝쿨무늬로 되어 있다. 그에 반해 지오토의 그림에서는 실제 나무의 모습을 그린 것처럼 잎사귀들이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물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이 나무는 나무가 아니라 브로콜리를 보는 것처럼 어색한 부분이 남아있기는 하다. 중세의 그림들에서는 우상숭배를 금지한다는 십계명의 규율에 따라 자연 그대로의 사물을 묘사하기를 꺼렸던 당시 화가들의 조심스러움을 엿볼 수 있다면 지오토는 아직 완전한 자연 그대로의 나무는 아닐지라도 부분적으로는 자연을 닮은 나무를 심은 셈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을 묘사한 부분에서도 차이는 확연하다. 중세 벽화 속의 프란치스코는 극도로 가느다란 뻣뻣한 인체에 옷자락은 평면적인 모습이어서 새들을 쫓아버리는 모습인지, 새들에게 모이를 주는 모습인지 분명하게 느껴지지 않는다. 반면 지오토의 프란치스코는 살아있는 표정을 통해 얼마나 인자하게 새들을 바라보고 있는지, 얼마나 세심하게 귀 기울여 새들의 소리를 듣고 있는지 금방 알아차릴 수 있으며, 옷자락과 얼굴에는 음영법에 의한 입체감이 뚜렷하다.

새들과 대화하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그린 프란치스코 대성당의 두 벽화 비교. 위쪽은 중세에 그려진 작품이고 아래쪽이 지오토의 작품이다.

그렇다고 해서 중세의 그림이 지오토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것을 설명하려는 것은 아니다. 만약 지오토의 그림을 앞서 로마에서 봤던 미켈란젤로의 벽화들과 사실적이고 역동적인 측면에서만 비교한다면 지오토가 한 수 아래의 화가가 될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비교는 무의미하다. 중세의 화가도, 지오토도 결코 다만 그들의 능력이 거기까지 뿐이라 이렇게 정적이고 순진한 그림을 그릴 수밖에 없었던 것이 아니었다. 자연의 사물을 모방해서 재현하는 그 어떤 우상숭배도 허락되지 않았던 당시의 시대적 상황이 그들을 제약 속에 가둔 것이고, 그들은 소박하게나마 그림의 의미를 명료하게 전달하기 위해 그 제약이 허락하는 극한의 경계선에서 약간의 위험을 감수하고 때때로 선을 조금 넘어가며 최선을 다해 자연을 그렸을 뿐이다. 무엇이 그 엄격했던 중세의 틀을 벗어버리도록 했었는지는 끊임없는 화두이겠지만, 여하간 그 사실성의 탐색이라는 새롭고 깊은 바다에 처음 뛰어든 펭귄이 지오토였으므로 그에 대한 경의는 당연하다.

나아가 지오토의 역할을 단지 초보적이지만 이러한 사실성을 처음 탐색하기 시작했다는데 만 국한한다면 너무나 억울하다. 만약 예술의 위대함을 보고 싶다면 당연 미켈란젤로를 보기를 우선적으로 권하겠지만, 만약 진정한 기독교를 보고 싶다면, 그리고 복음을 접하고 싶다면 맨 먼저 지오토를 보기를 권하겠다. 새들과 대화하는 프란치스코를 미켈란젤로가 그렸다면 어땠을까? 어떤 인물을 그리더라도 인간적 고뇌와 막중한 중력이 느껴지게끔 그렸던 미켈란젤로 그림 속의 프란치스코는 지오토의 그림처럼 순수하고 순박한 인물로 그려졌을 것 같지는 않다. 그야 실제의 프란치스코 성인도 마냥 완벽한 인간은 아니었으리라. 굳이 무슬림 나라인 이집트에까지 가서 기독교를 전파하겠다고 했던 그의 행적을 보면 무척이나 고집스럽고 깐깐하기도 했던 인물이리라. 미켈란젤로는 그런 프란치스코의 면까지도 낱낱이 까발려 그럼에도 성인으로 칭송되었던 그의 다양한 면모를 새롭게 조명했으리라. 그래서 성인이라기보다는 영웅에 가까운 그를 재창조했으리라.

그러나 그럼에도 우리가 기대하는 프란치스코는 딱 지오토가 묘사한 그 단계까지의 신비로운 존재로서의 모습이다. 우리는 프란치스코에게서 영웅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성인을 구한다. 비교하자면 시스틴 체플은 들어가서 맨 처음 “아, 미켈란젤로여!”라고 외치게 하는 힘이 있다면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당에 들어서면 “오, 주여!”를 외치게 하는 그림이라는 것이다. 시스텐 체플이 압도적이라면 프란치스코 성당은 참선수행을 경험하는 듯하다. 지오토는 오로지 그림의 소재인 기독교와 프란치스코 성인을 돋보이게 하려고 자신은 그림 뒤에 숨겨 버렸다.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예술을 단지 작가의 결과물로만 볼 것이 아니라 그것이 사용되었던 종교적 목적까지 포함해서 본다면 분명 지오토의 그림이 보다 더 하나님 곁에 다가가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제서야 왜 지오토가 위대한 화가로 칭송 받는지 깨닫게 되었다.

그리고 돌아다보니 지오토의 그림들은 묘하게 우리의 불화들과 닮아있다. 부분적으로는 사실적이고 정교하면서도 전체적으로 보면 도안화된 엄격한 틀 속에 갇힌 듯한 모습에서 종교적 경건함을 느끼게 만드는 것이 같은 중세를 살았던 화가들이 동서양에서 공통적으로 느꼈던 것인가 하는 기묘한 공간의 초월이 느껴졌다. 예를 들어 아시시의 주교였던 테오발도 폰타노(Teobaldo Pontano)가 무릎을 꿇은 채 성모 마리아의 손을 잡고 있는 지오토의 벽화를 보자. 거대한 성모 앞에서 마치 어린아이처럼 작게 묘사된 폰타노 주교는 그 어린아이같이 순수한 모습을 통해 그의 경건함을 드러내고 있다. 이와 같은 완전한 신에 대한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으로의 ‘귀의’는 말 그대로 불교에서 ‘나무석가모니불’이라고 할 때의 ‘나무(나모)’ 즉 ‘귀의’의 정신이 기독교에서의 신에 대한 사랑과 서로 일맥상통함을 느끼게 된다. 마치 주교의 손을 이끄는 듯한 성모 마리아의 모습에서 극락왕생하는 영혼을 인도하는 아미타불의 모습이나, 선재동자를 마주한 관음보살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은 전혀 어려운 일이 아니다. 어쩌면 이러한 열렬한 귀의, 완전한 경건과 헌신을 묘사하는데 있어서만큼은 그 어떤 화풍보다도 지오토의 화풍이나 고려불화의 화풍이 가장 최적화 되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성모 마리아와 아시시의 주교 테오발도 폰타노를 그린 지오토의 벽화(위)와 관음보살에게 선지식을 구하는 선재동자를 그린 파리 기메미술관 소장 고려 수월관음도(아래).

우리는 막연하게 고려불화의 화풍이 서양의 사실적인 화풍과 비교해볼 때 너무 평면적이고 장식적인 그림일 뿐이라고 치부할 수 있다. 그러나 지오토의 회화가 그를 계승한 다빈치나 미켈란젤로, 그리고 라파엘로에 의해 유행한 훨씬 사실적인 화풍들이 휩쓸고 지나간 다음에도 변함없이 고고히 그 명성을 잃지 않고 이곳 아시시에서 빛나고 있는 이유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는 오로지 종교적 경건함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그 어떤 사실성도 지오토를 능가할 수 없었기 때문이며, 지오토의 화풍과 닮은 고려불화들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충분히 이해하게 되는 것이다.

종교와 회화뿐 아니라 당사자인 성 프란치스코 성인과 지오토 자신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성당 안에서 완연한 일체가 된 듯하다. 프란치스코의 순수한 신앙심은 지오토를 만나 온전히 후대에 전해졌고, 지오토는 프란치스코 성인을 만나 그의 화풍을 완벽하게 드러낼 수 있는 기회를 잡았던 것이다. 지오토는 비록 그림 뒤로 자신을 숨겼다지만 오히려 그렇게 함으로써 지오토 자신도 마치 프란치스코 성인과 마찬가지로 순박하고 고결한 사람이 아니었을까 자꾸만 연상된다. 그렇지 않고서야 이 성인을 어쩌면 이렇게 완벽하게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었을 것인가?

그런데 이 성인과 화가의 콜라보 행보에 참여한 또다른 예술가가 있으니 바로 헤르만 헤세다. 널리 알려진 책은 아니지만 그의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 Franz von Assisi’라는 책은 헤세가 성인의 행적에 감동을 받아 그를 연구하고 저술한 책이다. 아마도 지오토의 그림을 보며 더 큰 영감을 받지 않았을까 생각되는데, 마침 이 책의 번역본에는 프란치스코 성당에 지오토가 성인의 행적을 담아 그린 프레스코화 연작이 함께 실려 있어 유용하다. 더 자세한 내용과 그림은 이 책에서 읽어보시길 권한다.

주수완 문화재전문위원 indijoo@hanmail.net

[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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