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 소박했던 첫 연등축제
68. 소박했던 첫 연등축제
  • 이병두
  • 승인 2018.06.12 10:45
  • 호수 14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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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휴전 중 1955년 첫 제등행렬

오늘날과 같은 모습 연등회
휴전 2년 차 조계사 일대서
광목천에 “불국토 건설하자”
칠보사 어린이 합주단 인기
1975년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동국대에서 열린 연등축제.
1975년께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동국대에서 열린 연등축제.

매년 봄 ‘부처님오신날’을 맞아 열리는 연등회는 불교인만의 축제를 넘어선지 이미 오래 되었다. 이제는 아시아 각국 출신 이주민 불자들이 적극 동참하게 되면서 우리나라의 외교력 향상에도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이 연등회는 지난 2012년 중요무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어 국가 차원에서 공식적으로 예산 등 다양한 지원을 받게 되었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30여년 전으로만 돌아가도 종이를 접어 크기에 맞추어 자르고 철사를 구부려 틀을 만들며 얇은 종이를 물들여 유리병에 감고 철사로 칭칭 감아 주름을 잡아 꽃잎을 만든 뒤 풀을 쑤어 붙이는 연등을 만들려면 몇 달 전부터 준비를 해야 했고 손가락마다 붉게 물들고 옷에 풀이 잔뜩 묻어 곤혹스러웠던 적도 많았다.

요즈음 연등축제에 참여하는 이들은 크고 작은 전자 등을 들고 편하게 걷지만 10여년 전까지만 해도 촛불이 꺼지는 일이 숱하였고 자칫 잘못하면 불이 옮겨 붙어서 등을 태워버려 울상을 짓는 일도 많았다.

연등회의 연원은 신라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겠지만 오늘날과 같은 모습은 한국전쟁이 휴전에 들어간지 2년이 채 안 된 1955년 ‘부처님오신날’(당시에는 초파일로 칭함)에 행한 제등행렬에서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그때에 ‘조계사-종로3가-을지로3가-서울시청-중앙청-안국동로터리-조계사’를 도는 거리에 만등(萬燈)을 달고 곳곳에 아치를 세워 봉축 분위기를 돋우었으며 이때부터 해가 갈수록 제등행렬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면서 화려해졌다.

그리고 승재가의 노력이 결실을 거두어 1975년 ‘부처님오신날’이 국가공휴일로 지정되면서부터 더욱 많은 인원이 연등행렬에 참여하였고 이듬해인 1976년부터는 축제 장소를 동국대에서 여의도광장으로 옮겼다가 그 뒤 동대문운동장으로 옮기게 될 때까지 여의도에서 조계사까지 이어지는 긴 구간을 행진하게 되었다.

이 사진은 동국대에서 연등축제가 열리던 1970년대 초반 연등축제의 모습이다. 참석대중 숫자도 많지 않고 스님들이 자리한 무대와 탁자도 소박하며 앉아 있는 스님들의 뒷모습에서도 순수함이 느껴진다. 교복을 정갈하게 입은 종립학교 여학생들과 한복 치마저고리를 깨끗하게 갖춰 입은 우바이들에게서도 소박함이 엿보인다.

광목천에 붓으로 쓴 “불심(佛心)으로 함께 불국토 건설하자” 등 현수막의 구호도 요즈음 젊은이들의 눈으로 보면 아주 오랜 옛날이야기처럼 느껴질 것이다. 대형 상징 등이 환하게 빛나고 사방으로 돌아가며 빛을 쏘아대는 등까지 보아온 요즈음 젊은이들은 “이런 시절이 있었느냐?”며 의아해할 게 당연하다.

이 시절 연등행렬에서 가장 인기를 끌었던 것은 어린이법회의 선구자인 석주 정일 스님이 계시던 삼청동 칠보사 어린이 합주단이었다. 어린이 불자들이 선두에서 찬불가와 행진곡을 연주하며 행렬을 이끌면 연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도 큰 박수를 보냈다. 광덕 스님이 창건한 불광법회에서는 우바이들이 녹색 치마를 입고 우바새들은 초록색 넥타이를 매고 줄을 맞추며 참여하여 눈길을 끌었다.

대형 사찰에서 큰 예산을 들여 제작한 대형 상징 등이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작은 사찰에서는 위축감을 느끼게 되는 요즈음, 칠보사 어린이 합주단이 인도하던 그 시절의 소박했던 연등행렬은 그리운 추억이 되었다.

이병두 종교평화연구원장 beneditto@hanmail.net

[1443호 / 2018년 6월 13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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