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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한국불교, 이 시대·사회 책임지라 ④ 휴암스님, 1987년 ‘한국불교의 새얼굴’

기자명 법보

기독교 극성, 불교가 역할 못했단 방증

역대 수많은 왕사·국사 가운데
백성 위한 충언 흔적조차 없어
국가를 백성 아닌 왕실로 여겨

불교는 역사적으로 민중과 가난한 백성의 편에 서서 민생의 고통을 대변해 주며 가난한 사람을 더 연민히 여기고 가까이 맞이하려는 불교정신의 강한 독자성과 자립의 길을 개척해 내지 못했다. 언제나 왕권과 부호의 그늘에 기대어 중생을 제도하는 종교가 아니라 도리어 자신이 중생과 세상의 도움에 손 내미는 자립 아닌 의타적 불교가 된 결정적인 원인도 ‘호국불교’다. 불교가 안일에 빠져, 순수히 불교적인 사상으로만 국가사회를 상대할 불교 고유의 사상세계를 개척할 현실의 필요성에 눈뜨지 못했던 것도 그 원인이라 하겠다. 이러한 의미에서 불교가 역사적으로 이 민족을 정신교육 시킬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이 백성에게 주체성과 민족적 개성을 심어주지 못한 것도, 결정적으로 불교가 국가적 종교로서 무능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기독교라는 것이 한국에서 이처럼 극성을 부리는 것도 세계에서 그 유래가 없는 것이라 하는데, 이것은 곧 이 국민에게 정신적인 주체성이 없다는 뜻이며, 정신적인 주체성이 없었다는 것은 불교가 이 땅에서 자기 할 일을 다하지 못하고 국민을 불교적으로 교육시키는 일을 전혀 하지 못하는 무능하고 무성의한 종교가 되어 왔다는 것을 단적으로 증명하는 것이다. 스님으로서 역대의 어느 국사나 왕사가 풍수지리설 따위의 견해가 아닌 불교의 고유한 사상 기준에 의해 국왕의 치세를 충고하고, 민생을 돌보는 불교적 이상에 입각한 종교 발언을 한 흔적이나마 찾아볼 길이 없다. 소위 중생을 건진다는 종교로서의 우리 불교가 얼마나 사상으로써 세상을 건지는 일에 무지했던가를 폭로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나는 역사적으로 불교의 이상을 마비시키고 오늘에 와서는 사회적으로 불교의 위신을 추락시키게 한 원흉이 다름 아닌 호국불교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호국불교는 불교가 사상의 길을 걷지 못하게 한 원흉이요, 국가를 민중이나 인류생명으로 이해하지 않고 국가를 왕실이나 어느 특정한 정권으로 오해하게 만든 악마라고 단언하는 바이다. 한국불교에 ‘호국’이란 말이 아예 처음부터 없었거나, 중간에라도 그것을 찢어 내버렸더라면 우리의 불교가 헛말이라도 소위 ‘중생’이란 용어를 백성이니 민중이니 하는 의미로 사용했을 것이고, 나아가서 인류니 생명이니 하는 뜻으로도 사용했을 것이다. 그러면 개중에는 눈이 열린 스님이 한두분 있어서 자연히 불교의 방대한 경전과 사상 속에서 백성·민중·사회·인류생명의 존엄 같은 방향에 활용할 불교의 고유한 언어들을 찾아내게 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런 언어들로 다루어진 학문을 배우는 학생이나 선생들의 의식 상태는 포교를 일부러 아니해도 자연히 동양적 불교적 체질이 되었을 것이며, 견성하고 지견난 스님들도 역시 그 방향으로 심오한 지혜를 동원하여 자유, 정의, 평등, 인권, 생명 등의 언어를 불교적으로 다루는 경향이 나타났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자연히 불교적 입장에서 사회와 국가와 인류와 문명을 판단하고 평가하고 비판할 불교적 기준과 판단과 사상이 제시되었을 것이며,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일반 학자나 문필가들도 앞을 다투어 불교적 소재를 정치, 사회, 문화 각 방면에 응용하고 활용하는 글이나 논문들이 생기게 되었을 것이다.

휴암 스님

이렇게 되면 자연히 그 어느 시대보다도 오늘날 더 많은 수준 높은 구도자들이 우리의 불문으로 몰려들게 되었을 것이고, 불교는 자연히 이 나라, 이 백성의 명실상부한 정신적 지주가 되고, 신도들도 불교 믿는 긍지와 기쁨을 새기고, 스님들도 길거리 버스 어디에서나 합장·공경 받는 스님이 됐을 것이다. 또한 산중에서 수행하는 스님들도 희망과 자부심을 가지고 수행할 수 있게 되었을 것이며, 이 나라 불교도와 스님들의 기상도 한층 드높아 졌을 것이고, 세계의 지식인들의 큰 호기심을 끌게 됐을 것이다.

[1444호 / 2018년 6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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