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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반시’-육상원융

기자명 해주 스님

육상이란 법성이 보여지는
여섯 가지의 모양들을 지칭

육상이 모두가 원융하기에
하나의 바라밀만을 닦아도
모든 바라밀의 공덕이 구족

육상은 다라니의 곳집 열쇠
법성에 들어서는 중요한 문

원인과 결과 하나인 것처럼
부처와 중생도 다르지 않아

전남 순천 선암사 7처9회도.

의상 스님은 ‘법’자에서 시작하여 마지막 ‘불’자로 끝나는 ‘법성게’의 첫 글자와 끝 글자를 반시의 한 중앙에 같이 두었다. 이는 ‘법성가의 진실한 덕용이며, 성(性)이 중도에 있음을 나타낸 까닭’이라고 한다. 이 뜻은 이해하기 어려우나 ‘십지경론’에 보이는 세친보살의 육상설 등을 인용하면서 육상(六相)의 도리로 자세하게 설명하고 있다.

육상이란 총상(總相)·별상(別相)·동상(同相)·이상(異相)·성상(成相)·괴상(壞相)이다. 즉 전체인 모양, 각각인 모양, 같은 모양, 다른 모양, 이루는 모양, 무너지는 모양이다.

이 육상의 명목은 ‘화엄경’ 십지품과 그 별행경에 해당하는 ‘십지경’에서 초지의 10대원 가운데 제4원의 내용에서 나온다. 이 제4원은 수행이리원(修行二利願) 또는 심증장원(心增長願)이라 불리는데, 중생들이 모든 바라밀을 총상·별상·동상·이상·성상·괴상으로 닦아서 마음이 증장되기를 바라는 원이다.

육상으로 바라밀을 닦는다는 것은 간단히 말하면 하나의 바라밀이든 여러 바라밀이든 철저히 닦으면 된다. 모든 바라밀을 닦는 공덕은 무진이 되나 하나의 바라밀 공덕도 모자라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바라밀에 여타의 바라밀 공덕이 구족해 있기 때문이다.

세친보살은 ‘십지경론’에서 설주인 금강장보살의 입정(入定)과 연관하여 육상을 설명하고 있다. 화엄대경의 ‘십지품’에 해당하는 ‘십지경’에서 금강장보살이 보살대승광명삼매에 드는데, 그 입정하는 연유가 열 가지로 설해져 있다. 그 열 가지 가운데 첫 번째인 ‘일체보살에게 불가사의한 제불광명을 설하여 지혜지(智慧地)에 들게 하려는 까닭이다’라는 것을, ‘십지경론’에서는 근본입(根本入)이라 이름 한다. 금강장보살이 입·출정 후 십지(十地)를 설하는데 십지의 지(地)가 지혜이니 지혜지가 십지이다. 그래서 지혜지에 들게 하려는 근본입이 총상이고, 나머지 아홉 가지 이유로 인한 입정[餘九入]은 별상이다. 여구입은 근본입의 구체적인 내용이니 총별원융인 것이다,

화엄교학에서는 바라밀 행만이 아니라, 더 나아가 모든 존재도 육상원융에 해당한다고 본다. 일체 존재 개개가 다 동등하고 평등하다는 것이다. 의상 스님은 육상이 모두 원융한 육상원융으로 ‘법계도인’의 모양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육상이란 총상·별상·동상·이상·성상·괴상이다. 총상이란 근본인이다. 별상이란 나머지 굴곡들이니 별이 인(印)을 의지하되 그 인을 만족시키기 때문이다. 동상이란 인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굴곡은 다르지만 한 가지 인이기 때문이다. 이상이란 늘어나는 모습이기 때문이니, 이른바 첫 번째, 두 번째 등 굴곡들이 달라서 수가 늘어나기 때문이다. 성상이란 간략히 설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인을 이루기 때문이다. 괴상이란 널리 설하기 때문이니, 이른바 번다하게 도는 굴곡들이 각각 스스로 달라서 본래 짓지 아니하기 때문이다. 모든 연으로 생겨난 법이 육상으로 이루어지지 않음이 없다.” (‘일승법계도’)

하나의 근본인은 총상이고 굴곡은 별상이다. 굴곡은 도인의 부분이지만 굴곡이 없으면 도인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따라서 굴곡인 별은 근본인인 하나의 도인을 의지하되, 굴곡인 별은 총인 근본인을 만족시킨다. 굴곡은 다르지만 한 가지 도인인 것은 동상이고 굴곡이 늘어나는 모양은 이상이다. 54굴곡이 모두 하나의 도인의 모양이고 54굴곡 각각은 서로 다른 모양이다. 간략히 설함은 성상이고 널리 설함은 괴상이니, 성상은 인을 짓는 것이고 괴상은 굴곡이 각각 스스로 달라서 본래 짓지 않는다. 굴곡이 각기 제 역할만 하는 것이 괴상의 측면인 것이다.

처음의 굴곡은 원인과 같고 뒤의 굴곡은 결과와 같은데, 처음과 뒤가 한가운데 있는 것은 비록 원인과 결과가 뜻은 다르나 오직 스스로 그러함에 머무름을 뜻한다고 한다.

노사나불입상. 돈황막고굴제428굴 좌벽중앙부.

의상 스님은 이러한 육상을 다시 다양하게 설명하기도 한다. 육상은 연기의 실상인 다라니의 곳집을 여는 좋은 열쇠이며, 연기의 무분별 도리를 바르게 나타내는 것이며, 법성가에 들어가는 중요한 문이라고 한다. 그리하여 ‘법계도인’에 대한 육상 설명도 중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성기(性起) 법성으로 귀결시키고 있다. 그것은 육상으로 설명되고 있는 도인이 지정각세간이면서, 또한 전체적으로 융삼세간불의 불세계인 데서도 추정할 수 있다.

돈황천불동에 모셔져 있는 노사나부처님의 가사에 육도중생들이 다 그려져 있다. 부처님과 중생들의 육상을 떠올리게 한다. 부처님과 중생의 관계를 육상원융으로 설명한 ‘진수기’의 글이 ‘총수록’에 수록되어 있다.

즉 부처님은 총상이고 중생들은 별상이다. 노사나불(비로자나불)은 가장 높으시고 중생들은 가장 하열하나, 중생의 몸은 따로 자체가 없고 온전히 노사나 부처님의 몸으로 이루어져 총별원융이다.

중생의 몸을 기준으로 하면 다른 사물이 없고 오직 부처님 몸뿐인 것이 동상이니, 중생의 몸이 저 부처님을 거느리고 있다. 그런데 비록 중생의 몸이 저 부처님의 몸을 거느리고 있으나, 능히 거느림을 움직이지 않고 항상 중생인 것이 이상이다. 거느림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같음이 있고, 중생의 뜻을 기준으로 하면 다름이 있다는 것이다.

또 성상과 괴상이란 당체가 존재함이 있고 무너짐이 있다는 말이다. 하열한 중생의 몸이 곧 바로 높으신 부처님의 몸으로서 조금도 부처님의 몸과 다른 때가 없고 하나일 뿐임이 성상이다. 그리고 차별 있는 중생의 몸이 각각 스스로 움직이지 않음이 괴상이다. 이것은 법계의 법이 곧 중생의 몸 가운데 진실한 덕용이며 성이 중도에 있는 것이라 한다.

이와 같이 시작과 마지막, 원인과 결과가 한자리인 것처럼 육상원융의 도리를 요달해서 중생과 보살, 보살과 부처, 중생과 부처도 본래 다른 존재가 아님을 통찰하게 한다.

법성가(法性家), 중도, 해인삼매 등을 포함한 법성 세계를 잘 담고 있는 ‘법성게’ 시에 의하여, 이제 의상 스님의 화엄사상을 살펴보기로 한다. ‘반시’의 독시법에 따라 읽어 가면, 오늘날에도 여전히 우리가 즐겨 독송하고 있는 7언 30구 210자의 시(偈頌)가 된다. 의상 스님이 ‘법성게’로 드러내고자 한 ‘화엄경’의 근본 도리를 자세히 살펴보기 위해서, 먼저 210자의 게송을 함께 읽고 해석해보자.

법성원융무이상(法性圓融無二相) 법성은 원융하여 두 모습 없고,
제법부동본래적(諸法不動本來寂) 제법은 부동하여 본래 고요하다.
무명무상절일체(無名無相絶一切) 이름도 없고 형상도 없고 일체가 끊어져,
증지소지비여경(證智所知非餘境) 증득한 지혜로 알 바이고 다른 경계가 아니다.
진성심심극미묘(眞性甚深極微妙) 진성은 매우 깊고 극히 미묘하여,
불수자성수연성(不守自性隨緣成) 자성을 지키지 않고 연(緣)을 따라 이룬다.
일중일체다중일(一中一切多中一) 하나 가운데 일체이고 많은 것 가운데 하나이며,
일즉일체다즉일(一卽一切多卽一) 하나가 곧 일체이고 많은 것이 곧 하나이다.
일미진중함시방(一微塵中含十方) 하나의 미세한 티끌 속에 시방을 포함하고,
일체진중역여시(一切塵中亦如是) 일체 티끌 중에도 또한 이와 같다.
무량원겁즉일념(無量遠劫卽一念) 한량없는 먼 겁이 곧 일념이고,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 일념이 곧 무량겁이다.
구세십세호상즉(九世十世互相卽) 구세와 십세가 상즉하면서도,
잉불잡란격별성(仍不雜亂隔別成) 흐트러지지 않고 따로 이룬다.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 처음 발심할 때가 문득 정각이며,
생사열반상공화(生死涅槃常共和) 생사와 열반이 항상 함께이다.
이사명연무분별(理事冥然無分別) 이와 사가 명연하여 분별이 없으니,
십불보현대인경(十佛普賢大人境) 십불과 보현보살의 대인 경계이다.
능입해인삼매중(能入海印三昧中) 능히 해인삼매 속에 들어가,
번출여의부사의(繁出如意不思議) 번출의 여의함이 불가사의하다.
우보익생만허공(雨寶益生滿虛空) 보배비가 중생을 도와 허공을 채우니,
중생수기득이익(衆生隨器得利益) 중생이 근기 따라 이익 얻는다.
시고행자환본제(是故行者還本際) 그러므로 행자는 본제에 돌아가,
파식망상필부득(叵息妄想必不得) 망상을 쉬지 않을 수 없고,
무연선교착여의(無緣善巧捉如意) 무연의 선교로 여의를 잡아,
귀가수분득자량(歸家隨分得資糧) 귀가함에 분수 따라 자량 얻는다.
이다라니무진보(以陀羅尼無盡寶) 다라니의 무진한 보배로써,
장엄법계실보전(莊嚴法界實寶殿) 법계의 진실한 보배궁전을 장엄하여,
궁좌실제중도상(窮坐實際中道床) 마침내 실제의 중도자리에 앉으니,
구래부동명위불(舊來不動名爲佛) 예로부터 부동함을 부처라 한다.

이 30구에 대해 의상스님은 크게 3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자리행(自利行), 이타행(利他行), 그리고 수행자의 방편과 이익 얻음[修行者方便及得利益]이다. 자리행은 다시 증분과 연기분으로 나누고, 연기분은 다시 여섯으로 나누어 설명한다. 다음부터 30구 210자를 차례로 살펴보기로 한다.

해주 스님 동국대 명예교수 jeon@dongguk.edu

[1444호 / 2018년 6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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