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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케마 ③

기자명 김규보

“똥주머니에 사로잡히지 않겠다”

남편도 케마 출가 막지 못해
유혹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
정진 15일 째, 아라한과 성취
‘지혜제일’ 비구니로 존경받아

빔비사라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사랑하는 둘째 왕비가 붓다의 말씀을 받들어 자만심을 버리길 원해왔지만 출가까지 바란 건 아니었다. 당황하여 뒷짐을 지고 하늘만 바라보다 케마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허영의 탁한 기운은 사라지고 평온함만이 가득했는데, 죽림정사에 도착했을 때와는 전혀 다른 사람이 되어 있었다. 마치 성자를 앞에 둔 듯해 빔비사라는 자못 경건해지기까지 했다. 붓다의 설법을 듣고 한 순간에 깨달음을 이룬 이를 많이 봤지만 케마가 그러리라고는 생각해보지 않았다.

“그대가 여기까지 온 이상 어찌 출가를 허락하지 않을 수 있겠소. 기꺼이 받아들이겠소. 대신에 죽림정사로 가는 길은 내가 준비하도록 할 터이니 그렇게 알고 계시오.”

빔비사라는 높고 넓은 마차를 만들도록 한 뒤, 한편으로는 황금을 모아 마차에 입혔다. 구석구석을 황금으로 덮어 먼 곳에서 보아도 눈이 부실 정도였다. 그 사이 왕비가 출가한다는 소문은 빠르게 퍼졌다. 출가하기로 한 날 아침, 수많은 사람이 축하하기 위해 왕궁으로 몰려왔다. 케마가 탄 황금마차가 자신의 앞으로 지나가면 사람들은 꽃을 뿌리고 환호성을 보냈다. 그렇게 축복을 받으며 죽림정사에 도착한 케마는 안으로 들어가기 전, 황금마차에서 내려 신발을 벗고 조심스럽게 붓다를 향해 걸어갔다.

“붓다시여.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고 모든 번뇌를 여읠 때까지 정진을 멈추지 않겠습니다.”

붓다의 발등에 이마를 대고 절을 올린 케마가 뒤로 물러나 앉자 몇몇이 다가와 머리카락을 잘라냈다. 탐스럽게 반짝이던 머리카락이 땅바닥으로 떨어져 무수히 흩어졌다. 이렇게 쉽게 떨어져 나가는 것을…. 얼마 되지 않은 허영의 잔재마저 저것들처럼 낱낱이 흩어지고 있는 것 같아 기쁨의 눈물이 흘러내렸다. 일어나 붓다에게 예배하고 비구니들과 함께 그들의 처소로 향했다. 붓다에게 설법을 들은 당시 수다원의 경지에 올라선 케마는 이제 아라한과를 성취하기 위해 무섭게 정진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가부좌를 틀고 앉아 명상에 잠긴 케마에게 악마가 다가왔다. 지금처럼 정진하면 얼마 지나지 않아 아라한이 될 것을 안 악마는 케마를 유혹하여 다시 교만과 아집의 늪으로 빠뜨리고자 했다.

“너처럼 아름다운 사람을 본 적이 없구나. 게다가 젊기도 하니 방에 앉아 눈만 감고 있기엔 아깝지 않느냐. 나 역시 너처럼 젊으니, 케마여. 다섯 가지 악기를 연주하며 함께 아름다움과 젊음을 즐겨보도록 하자.”

어떠한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겠다고 다짐했지만 젊고 아름답다는 말에 마음이 미묘하게 움직이는 것을 느꼈다. ‘아직도 남은 게 있었구나. 붓다의 말씀처럼 모든 건 변한다. 젊음도 아름다움도 마찬가지다.’ 케마는 결연한 눈빛으로 악마에게 말했다.

“병들어 악취를 풍기게 마련인 육신에 시달려왔으며 혐오를 느끼고 있다. 나는 더 이상 피고름과 똥주머니에 사로잡히지 않는다. 집착은 사라졌다. 너는 쾌락을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것이 즐겁지 않다. 쾌락의 즐거움은 무너져 내렸고 무명은 부수어졌다. 참 스승에게 귀의하여 그 가르침을 실천해 모든 괴로움에서 벗어났다. 악마여. 너는 패배했다.”

패배했다고 말하는 순간, 악마는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케마가 눈을 떴다. 악마가 자신에게 속삭였을 자리엔 등잔불만이 타오르고 있었다. 불꽃이 문틈을 비집고 들어온 미세한 바람을 따라 춤을 췄다. 한 순간도 머물러 있지 않은 불꽃을 보며 문득 무상의 진리가 확연해졌다. 정진을 시작한 지 15일째 되던 날, 케마는 아라한과를 성취했다. 깨달음을 이룬 뒤에도 정진을 멈추지 않아 어느덧 비구니승단 최고의 수행자가 되어 존경을 받은 케마. 붓다는 “비구니 가운데 제일의 지혜를 가진 제자”라고 칭찬했다. 자신의 아름다움에 취해 공허한 아만의 삶을 살았던 케마 왕비는 집착을 끊고 무명을 걷어내 결국 ‘지혜제일’ 비구니가 되었다. <끝>

[1444호 / 2018년 6월 20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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