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비종교 불교가 최악의 형벌 탄생에 일조”
“자비종교 불교가 최악의 형벌 탄생에 일조”
  • 이재형
  • 승인 2018.06.22 11:56
  • 호수 1445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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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수 전남대 법전원 교수
법률용어에 나타난 불교 검토
불경에 서술된 끔찍한 지옥이
서서히 죽이는 ‘능지’에 영향
같은 물도 뱀에겐 독이 되듯
형벌도 쓰는 자 따라 천양지차
“그러니 어찌 불경을 탓하랴”
불경에 나타나는 지옥의 형벌을 그림으로 그린 18세기 조선의 감로탱. 자수박물관
불경에 나타나는 지옥의 형벌을 그림으로 그린 18세기 조선의 감로탱. 자수박물관

불경에 서술된 지옥의 끔직한 내용이 ‘능지처사(陵遲處死)’ 혹은 ‘능지처참(凌遲處斬)’이라는 미증유의 잔혹한 형벌을 탄생시키는데 일조했다는 주장이 나왔다.

동양법제사와 법철학을 전공한 김지수 전남대 법전원 교수가 최근 ‘외법논집’ 제42권 제2호에 투고한 ‘동아시아 법률용어에 끼쳐진 불교 영향’이란 논문을 통해 능지처사, 계약, 상속 등 법률용어를 불교와 관련지어 그 의미의 연원과 역사를 고찰했다.

이 가운데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이 능지처사다. 논문에 따르면 ‘능지’는 구릉처럼 기울기가 완만한 경사를 뜻하는 말로 오대(五代) 및 송(宋) 이후 사형 집행을 아주 느릿느릿 천천히 죽이는 참혹한 형벌이란 의미까지 덧붙여졌다. 이전에 한나라 여태후가 고조의 총애를 받던 척(戚) 부인을 질투해 고조가 죽자마자 팔다리를 자르고 눈을 파낸 뒤 측간에 넣어 인분을 먹다가 죽게 하는 등 정사(正史)에도 끔찍한 사례가 아예 없지는 않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우발적이고 감정적인 형벌에 가깝지만 오대와 송 이후에는 공식 사형제도로 정착됐다. ‘송사(宋史)’의 ‘형법지(刑法志)’에는 ‘능지란 먼저 사지를 자르고 나서 목을 치던 당시의 극형이었다’고 기록돼 있으며, 이후 금·원·요 등 나라들도 능지를 공식 사형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이러한 형벌은 명을 거쳐 청말 형률을 수정하면서 능지는 비인도적 야만형벌이라는 이유로 영구 폐지되기 전까지 숱하게 시행돼 왔다.

남송 효종 때 육유(陸遊)가 오대(五代)의 능지 형벌을 기록한 ‘위남문집’에는 “살점을 다 발라냈는데도 숨은 아직 끊이지 않고 헐떡거리며, 간과 염통이 이어져 팔딱이고 보고 듣는 감각이 아직 남아있다”고 적고 있다. 금(金) 대에도 해릉왕이 도적들을 포획해 모두 능지처사하고 더러 손발을 불로 태우고 톱으로 자르기까지 했다. 뿐만 아니라 ‘살을 발라내는 형, 뼈까지 긁어내는 형’이라는 의미에서 통속어로 ‘과형(剮刑)’이 집행됐는데, 명나라 반역죄인 류근(劉瑾)은 4700차례의 칼질에 죽었고, 명말 정만(鄭鄤)은 3600번의 칼질에 처형당했다고 전한다.

김 교수는 후한 때 불교가 처음 동아시아에 전래된 이래 꾸준히 번역·소개돼 보급된 불경이 율령체계를 근간으로 하는 세속 국법질서에도 직간접으로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고 분석했다. 불경에는 극악무도한 죄인들이 지옥에 떨어져 받는다는 혹독한 형벌과 그런 무명 중생들을 위해 악업과보를 대신 받으며 미몽을 일깨우려는 보살들의 인욕수행이 나타난다.

'시왕도-제1진광왕'. 고려 후기. 미국 하버트 아서 새클러박물관 소장. ‘시왕도’는 지옥을 관장하는 열 명의 왕을 한 폭에 한 명씩 그린 그림으로 그 중 제1진광대왕은 첫 번째 7일동안의 심판을 맡은 왕으로 일반적으로 칼이 심어진 ‘도산지옥’을 다스린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서는 구렁이가 죄를 지은 남녀를 휘감고 있는 모습과 목에 칼을 쓴 죄인을 그렸다.
'시왕도-제1진광왕'. 고려 후기. 미국 하버트 아서 새클러박물관 소장. ‘시왕도’는 지옥을 관장하는 열 명의 왕을 한 폭에 한 명씩 그린 그림으로 그 중 제1진광대왕은 첫 번째 7일동안의 심판을 맡은 왕으로 일반적으로 칼이 심어진 ‘도산지옥’을 다스린다고 전해지는데 여기서는 구렁이가 죄를 지은 남녀를 휘감고 있는 모습과 목에 칼을 쓴 죄인을 그렸다.
'지옥'. 송나라 때 조성된 대족 보정산 석굴조각. 죄인의 다리를 자르는 옥졸, 키를 쓰고 있는 죄인, 목을 조르려는 지옥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지옥'. 송나라 때 조성된 대족 보정산 석굴조각. 죄인의 다리를 자르는 옥졸, 키를 쓰고 있는 죄인, 목을 조르려는 지옥의 모습이 생생하게 조각되어 있다.

‘중아함경’에는 염라왕의 귀졸이 악업으로 지옥에 떨어진 죄인을 직접 머리부터 발끝까지 껍질을 벗기거나 발끝부터 머리까지 살갗을 벗긴 뒤 불길이 훨훨 타오르는 달군 쇠수레에 묶어 살과 뼈가 타게 한다. 또 살을 발라내며 힘줄을 끊고 뼈를 부수며 골수까지 드러나게 죄인을 다스리는 장면도 나온다. 심지어 오대 및 송대 이후의 능지처사를 묘사라도 하듯 ‘살갗을 벗겨 절구통에 넣어 찧고 맷돌에 갈며, 산 채로 살을 저며 육회를 떠서 죽인다’(‘불본행경’)는 구절이 나오며, ‘살갗을 벗겨내고 살을 발라내며 뼈를 긁고 골수를 쳐내며 창자를 뽑아내고 허파를 꺼낸다’(‘불설불명경’)는 얘기도 나온다.

보살의 인욕 수행도 형벌과 고문의 측면에서 볼 수 있는 요소들이 적지 않다. ‘대방등대집경’에는 보살이 인욕 수행을 할 적에 포악한 중생이 칼과 몽둥이를 들고 쫓아와 “보리심을 내는 자는 몸을 참깨 씨나 대추 잎만큼 잘게 갈기갈기 찢어 부숴놓겠다”고 하는가 하면, 부처님이 전생에 인욕선인일 적에 가리왕이 자기 몸을 여덟 조각으로 찢어 갈랐는데도 인욕을 잘 수행한 인연공덕으로 칼에 베인 상처에서 붉은 피 대신 흰 우유가 흘러내렸다고 나와 있다. 또 보살이 간절한 보리심에서 진리말씀을 얻어듣고 자기 살갗을 벗겨 종이를 만들고 뼈를 쪼개 붓을 만들어 피를 먹물 삼아 진리[불경] 말씀을 기록해 수미산보다 더 높이 쌓는다는 법공양 수행이 ‘화엄경’을 비롯한 많은 경전에서 나타나고 있다.

김 교수는 이런 불경의 표현들이 살을 발라내고, 뼈를 부수거나 긁어내는 중국의 엽기적인 형벌의 탄생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다. 나아가 국가의 공식적인 형벌뿐 아니라 몽둥이로 손발을 사정없이 후려치는 ‘도시’, 나무와 밧줄로 목 양쪽을 옥죄는 ‘협방’, 머리에 밧줄을 묶고 나무로 쐐기질해 옥죄는 ‘뇌고’, 팔을 뒤로 묶어 땅에 무릎 꿇려 엎드리고 단단한 나무토막을 두 허벅지에 단단히 묶은 뒤 옥졸이 그 위에서 뜀박질하는 ‘초곤’ 등 뼛속까지 극심한 고통을 겪으며 까무러치게 한다는 송대의 극심한 고문방법도 직간접적으로 불경의 확산과 무관하지 않다고 추정했다. 불경에서 죄업을 경계하고 보살의 자비를 강조하기 위한 의도가 권력자들에 의해 전혀 다르게 해석되고 ‘인간생지옥’으로 현실에 재현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 교수는 ‘어진 사람은 남들 좋은 점을 보고 배우는데, 그렇지 못한 사람은 남들 나쁜 점을 보고 본받기 마련’이라는 옛말을 인용했다. 이어 책이나 영화의 폭력적·선정적 내용이 모방 범죄를 불러일으키듯 오대 이래 혼란한 시대 포학한 집권자들이 자신의 분노와 증오 충동을 이기지 못해 불경에 적힌 잔혹한 지옥 형벌을 현실에 스스럼없이 연출하는 것도 불가능한 것은 아닐 것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같은 물도 소가 마시면 우유를 내지만 뱀이 마시면 독을 뿜고, 같은 칼과 무기도 도둑이 잡으면 사람을 죽이고 의사나 경찰이 잡으면 사람을 살리듯 같은 법과 형벌도 누가 어떤 마음으로 쓰느냐에 따라 그 효용과 결과는 천양지차로 달라진다”며 “그러니 어찌 불경을 탓할 수 있으랴”고 말했다.

한편 김 교수는 역대 정사(正史) 및 고전과 대장경을 검색해 능지처사 이외에도 고대 율령체제에 시행된 십악, 계약, 상속, 조정 등 법률용어에 끼친 불교의 영향을 구체적으로 검토했다. 이를 통해 그는 불교가 국가 및 민간 생활 전반에 끼친 지배력은 정치권력보다 훨씬 막대했으며, 그런 상황에서 공식·비공식 말글에 끼친 불교 영향력도 우리 상상을 훨씬 초월하고 있음을 밝혔다. 이와 함께 기독교에서 번안 용어로 채택한 천당, 천국, 천사, 천주, 장로, 지옥, 악마, 마귀 등은 모두 불경에서 흔히 사용되는 용어이고, 심지어 신부(神父)도 ‘대지도론’을 비롯한 경론에 12번이나 나오고 있는 불교용어임을 밝힌 점도 눈길을 끈다.

이재형 기자 mitra@beopbo.com

지장보살. 고려시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원컨대 미래겁이 다하도록 죄의 대가로 고통받는 육도 중생을 모두 해탈케 하리라”는 것이 지장보살님의 서원이다. 사진 제공=조정육 미술평론가
지장보살. 고려시대. 미국 메트로폴리탄박물관 소장. “원컨대 미래겁이 다하도록 죄의 대가로 고통받는 육도 중생을 모두 해탈케 하리라”는 것이 지장보살님의 서원이다. 관련 사진들 제공=조정육 미술평론가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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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덜덜 2018-06-25 09:25:56
정말 섬득하네.. 자꾸 상상하면 읽게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