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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불상의 머리만 가져간 도둑들

기자명 이숙희

밤에 사라진 불상 머리, 누가 왜 가져갔을까?

통일신라시대 조성 추정되는
강원 횡성 상동리 석불 좌상
1989년 머리 없어진 채 발견

경주 건천 석조비로자나불상
마을 앞 연못 부근 방치되다
2006년 불상 머리만 사라져

경주박물관에는 분황사 출토
목 잘린 13구 불상군 전시도

횡성 상동리 석불좌상, 통일신라, 머리높이 43㎝. ‘도난문화재도록Ⅲ 지정편’(문화재청, 2010).

강원도 횡성군 공근면 상동리에 있는 통일신라시대의 석불좌상은 강원도 유형문화재 제20호로 지정되어 있다. 광배만 파손된 채 불상과 대좌가 완전한 상태로 남아 있었으나 1989년 10월20일 밤 10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 사이에 불상의 머리만 도난당했다.(사진 1) 불상 머리의 도난 과정이나 범인들에 대해서는 전혀 알려진 내용이 없다.

현재 불신만 남아 있는데 대체로 신체비례가 적당하며 양감 있고 부드러운 조형감을 보여준다. 도난당한 불상의 머리는 높이 43cm로 굵은 나발(螺髮)이 표현되어 있고 그 위에 큼직한 육계(肉髻)가 놓여 있다. 얼굴은 둥글고 볼이 통통한 편으로 미소가 사라진 근엄한 표정이다. 불신은 넓고 당당한 어깨와 잘록한 허리, 양감 있는 두 다리로 앉아 있는 좌상이다. 법의는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통견으로 입었는데 어깨 위에 옷깃이 살짝 접혀 있으며 그 안으로 비스듬히 입은 내의가 표현되었다. 오른손은 무릎 위에 두고 아래로 향하고 있는데 반하여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위에 놓여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손 모양을 하고 있다. 촉지인의 불좌상은 석가모니가 보리수 아래에서 선정에 들면서 모든 악귀를 물리치고 부처가 되었을 때 취한 불상형식으로 통일신라시대에 등장하여 크게 유행하였다.

대좌는 팔각연화대좌로 상·중·하대로 구성되었으나 현재 하대는 땅속에 묻혀 있어 그 형태를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앙련으로 구성된 원형의 상대와 안상(眼象)이 새겨진 팔각의 중대는 통일신라시대에 흔히 볼 수 있는 전형적인 대좌형식이다. 광배는 파손되어 단편으로 흩어져 있을 뿐 정확한 형태를 알 수 없다. 횡성 상동리 석불좌상은 불신만 남아 있지만 안정감 있는 신체비례나 양감 있는 불신, 세련된 조각기법, 팔각의 연화대좌 등에서 통일신라 후기에 조성된 불상으로 봐도 크게 무리가 없다. 그러나 최근 불상의 머리를 새로 만들어 올려놓아 예스러움을 완전히 잃어버렸다.

경주 신평리 석조비로자나불상, 통일신라, 높이 110㎝. ‘도난문화재도록Ⅳ 비지정문화재’(문화재청, 2014).

유사한 예로 불상 머리가 없어진 경상북도 경주 건천읍 신평리 석조비로자나불상이 오랫동안 하원신 마을 앞에 있는 연못 부근에 방치되어 있다가 2006년 4월30일에 도난당했다.(사진 2) 불상의 원소재지에 대해서는 알 수 없으나 처음 발견되었던 곳은 ‘삼국유사 권1'에 나오는 신라 선덕여왕과 관련 있는 영묘사(靈妙寺) 옥문지(玉門池) 근처에 있는 여근곡(女根谷)과 가까운 지역이다.

경주 신평리 비로자나불상은 전반적으로 마모가 심하여 불신의 세부표현이 뚜렷하지 않으나 비로자나불을 상징하는 지권인을 하고 있다. 어깨와 다리의 폭이 크게 차이가 없고 두 팔을 몸에 붙이면서 허리의 표현이 없어 방형에 가까운 모습을 보여준다. 앉아 있는 자세는 통일신라시대 비로자나불상이 일반적으로 취하는 오른쪽 다리를 왼쪽 다리 위에 올려놓은 길상좌(吉祥坐)를 하고 있다. 두 손은 가슴 앞에 꼭 붙이고 오른손으로 왼쪽 둘째손가락을 감싸면서 두 손을 붙인 채 비스듬히 쥐고 있는 지권인의 형태이다.

지권인이란 이(理)와 지(智), 중생과 부처, 미혹함과 깨달음이 원래 하나라는 뜻이다. 지권인을 결하면, 보리심이 일어나 견실한 지혜가 갖추어지고 빠르게 깨달음을 얻게 된다는 의미가 있다. 흔히 지권인을 하고 있는 불상은 비로자나불상으로 보고 있다. 비로자나불(Vairo cana)은 그 성립과 기원에 대해 분명하지 않지만 광명신 또는 태양신의 성격이 강하여 오래전부터 일본 학자들은 인도 고대 신화에 나오는 대표적인 신인 아수라(Asura)에서 유래된 것으로 알려져 왔다. 따라서 비로자나불은 태양이 지닌 특성에 비유하여 온 세계의 모든 것을 두루 비추어 어둠을 없애주고 그 광명은 항상 빛나고 생멸하지 않는다는 뜻에서 세상의 모든 것을 밝게 해준다는 것을 의미한다. 경주 신평리 비로자나불상은 오랜 세월에 마모되고 머리가 파손되어 없어졌지만 통일신라시대에 조성된 불상이라기엔 왠지 어깨가 왜소하고 너무 힘이 빠져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야외전시장의 불상들.

경주 지역을 돌아다니다 보면, 유독 목이 잘린 불상이나 여러 조각으로 동강이 나서 머리만 남아 있는 불상들이 여기저기 어지럽게 널려 있다. 경주 굴불사지사면석불을 비롯하여 용장사지 석불좌상, 장항사지 석불입상, 삿갓골 석불입상, 철와곡 발견 석불 머리, 약수계 마애불입상 등 어디에나 있다.

머리가 없는 섬뜩한 모습의 불상을 만나게 되면 “도대체 누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사람들이 저지른 무모한 짓인가 아니면 불교를 믿지 않는 집단들의 소행인가, 그도 저도 아니면 우울증에 걸린 사람들의 단순한 행동이었을까? 실제로 경주 남산 주요 유적지에는 곳곳에 일제 잔재가 남아 있다. 경주 내남면 용장리 남산자락에 위치한 보물 제187호 석불좌상 옆에는 ‘조선총독부’라는 글귀가 선명하게 새겨져 있고 또 문화말살의 목적으로 유적지를 가로질러 만든 철도가 아직도 존재하고 있다.

국립경주박물관 뜰에도 경주 분황사에서 출토되었다고 하는 일련의 목 잘린 불상군이 전시되어 있다.(사진 3)이 13구의 불상들은 1965년 12월 분황사의 뒷담에서 북쪽으로 33m 정도 떨어진 우물 속에서 보살입상 1구, 불상 머리 5구, 광배 1점과 함께 발견된 것이다. 분황사는 신라 선덕여왕 3년인 634년에 창건되었으나 13세기 전반의 고려 때 몽고 침입으로 완전히 불타 없어진 사찰이다. 분황사에서 발견된 불상들은 크기가 일정하지 않고 손모양도 각기 달라 다양한 형식을 보여준다. 경주박물관 경내에 있는 목 잘린 불상들은 언제 파손되었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아마도 조선조 500년간 내려온 유교가 만든 폐해로 보인다. 불교에 대한 억압이 한창 심할 때 우물 속에 넣고 메우면서 생긴 흔적으로 여겨지는 것이다. 천년의 세월을 견디어 용케 살아남은 불상들이다.

이숙희 문화재청 문화재감정위원 shlee1423@naver.com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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