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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드라마’ 속 보수의 운명

기자명 이중남

6월13일 치러진 제7회 지방선거 결과는 놀라웠다. 1987년 민주화 이후 호남을 고립시키고 나머지 여야 3당이 통합함으로써 지속되어온 보수의 지역 우위구도가 작년 대통령 선거에서 붕괴되더니, 이번에는 대구와 경북, 단 두 곳만 남기고 전멸했다. 이 결과가 말 그대로 ‘보수의 궤멸’이냐, 일시적인 후퇴냐를 놓고 전문가들의 견해는 갈리고 있다.

지방선거 전부터 보수의 대패를 예견하는 전문가들은 많았다. 개중에는 전직 대통령들이 보수의 가치를 외면하고 실정과 부정을 저지른 데 대한 환멸, 현 대통령의 높은 인기와 야당 지도자들의 부적절한 처신 등 정치인 개개인에 초점을 맞추는 견해도 있고, 집권 초기에 실시되는 선거는 대개 집권당이 이긴다는 타이밍 가설도 있다. 이런 견해들은 대체로 이번 결과를 일시적 후퇴로 해석한다. 반면 청년기에 민주화를 경험한 세대들은 진보를 지지하는 경향이 강하며, 그들이 이제 50대가 되어 자녀 또래와 함께 계속 진보를 지지함으로써 유권자 구성의 기저가 바뀌었다는 세대교체 가설이 있다. 이런 견해는 이번 결과를 보수 궤멸의 징조로 본다.

하나같이 일리 있는 주장이지만, ‘친노 그룹’이 폐족(廢族)을 선언한 지 10년 만에 이렇듯 당당하게 중원을 석권하는 ‘K-드라마’ 앞에서 향후 한국의 정치 지형이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눈앞의 일을 해석하기도 버거운 필자로서야 하물며 꿈도 못 꿀 일이다.

역사적으로 얘기하자면, 한국의 보수는 해방 후 수립된 자유민주주의와 시장질서 지지세력인 우익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곧이어 냉전질서가 자리 잡으며 친미-반공이라는 외교군사 노선과 결부되었다. 박정희 정권 때 재벌 중심의 성장 논리를 지지했고, IMF 구제금융 이후 구조조정과 민영화, 대기업 감세, 복지 축소 등 신자유주의 논리를 따랐다. 현재 한국의 대강을 형성해 온 주도적 행위자는 이들 보수였다고 할 수 있다.

보수와 진보 간 경기부양 정책의 차이는, 소득 양극화 해법으로도 제시되는 낙수(落水)효과와 분수(噴水)효과를 대조해 보면 뚜렷해진다. 신자유주의 논리인 낙수효과란 대기업과 부유층의 소득이 늘면 더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 경기가 부양되고, 결과적으로 저소득층에게 혜택이 돌아간다는 논리다. 이명박 대통령이 취임하자마자 종합부동산세를 인하하고 이미 걷은 돈마저 환급한 일이 여기에 해당한다. 반대로 분수효과는 부유층에 대한 세금을 늘려 저소득층에 복지비용을 지출하면 소비가 촉진되고 경제가 살아난다는 논리로, 복지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 현 정부의 입장이다.

대북정책에 관해 보수와 진보는 더욱 현저한 대척점에 서왔다. 탈냉전 이후 들어선 김대중-노무현 정부는 한미동맹을 유지하면서도 북한과 교류하고 협력할 논리와 정책을 개발해 실행에 옮겼다. 현 정부는 선임 정부들의 노력을 ‘4‧27 판문점 선언’으로 되살렸고, 연이어 중재외교를 통해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켰다. 반면에 보수는 야당이 된 뒤에도 대북 강경책으로 일관하고 있다. 미국에 전술핵을 요청하러 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온 뒤에는, 미국이 끝내 응하지 않으면 자체 핵무장을 할 명분이 생겨서 좋다는 주장까지 내놓는 실정이다.
민심의 평가는 나왔다. 이것을 보수의 일시적 후퇴라고 해석하는 견해는 선거를 너무 기술적인 차원이나 정치인 개인 중심으로 접근해, 지난 10년간 추진된 보수정책에 대한 국민의 부정적 판단을 경시하는 듯하다. 국민은 보기보다 훨씬 현명하다. 물론 민심은 변화하기 때문에, 궤멸로 단정하는 것도 옳지 않다. 다만 그 마음을 다시 얻으려면 보수 스스로 과거를 반성하고 시대정신에 비추어 가치와 정책을 재정립해 나가야 할 텐데, 요즘 보면 그리 깊이 있는 성찰을 하고 있지는 못하는 듯하다.

이중남 마하이주민지원단체협의회 운영위원 dogak@daum.net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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