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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선사 범어연구소장 현진 스님

원전(原典)이 품고 있는 생동감이 한국불교 새 지평 열 원동력!

뿌나서 8년 집중 수학 후
산스크리트·팔리어 ‘독파’

귀국해 범어연구소 설립
어학교재 편찬·원전 강독

원전 연구·번역 학자가
권위·명성얻는 시대 도래

원전 강독하며 자신도 공부
“긴 호흡 두고 경전번역 할 터”

‘지붕을 촘촘히 잇지 않으면/ 하늘에서 비가 올 때 새듯이/ 마음을 단속해 행하지 않으면/ 음탕한 생각이 이것을 뚫는다. (蓋屋不密 天雨則漏 意不惟行 淫泆爲穿)’

‘법구경’ 쌍요품에 나오는 구절의 일반적인 번역이다.

대부분의 경전이 그러하듯 ‘법구경’도 두 언어로 쓰여 졌다. 팔리어로 쓰인 것을 담마파다(Dhammapada)라고 하는데 이는 남방으로 전해졌고, 산스크리트어로 쓰인 것을 다르마파다(Dharma pada)라고 하는데 이는 북방으로 전해졌다. ‘개옥불밀(蓋屋不密) 천우즉루(天雨則漏) 의불유행(意不惟行) 음일위천(淫泆爲穿)’ 게송은 다르마파다를 한문으로 번역한 것이다.

‘팔리어로 내려온 법구경은 어떤 느낌일까?’하는 호기심이 늘 있었는데 마침 현진 스님이 번역한 ‘담마빠다(조계종 출판사)’가 손에 잡혔다. ‘치문경훈(시공사)’과 ‘빤짜딴트라(인연)’를 통해 접한 역자여서 낯설지 않게 책을 펼쳤는데 한문본 번역부터 예사롭지 않다.

‘지붕 잇기가 조밀치 않으면/ 하늘에서 비 내린 즉 새고 말 것이요 /생각이 사려 깊게 행해지지 않으면/음욕이 끓어올라 뚫리게 될 것이다.’

한역본에 나타난 의불유행(意不惟行)의 의(意)를 ‘마음’이 아닌 ‘생각’으로 표현했다. 자연스럽게 팔리어본 번역에 눈길이 꽂힌다. 여기서는 의(意)를 ‘의식(意識)’으로 풀었다.

‘마치 지붕이 잘못 이어진 집에/ 비가 새듯이/ 그처럼 가꿔지지 못한 의식(意識)에 탐욕이 스며든다.’

한문본 번역에서는 우리가 떠올리는 생각 하나도 함부로 하지 않아야 한다는 사실을 날카롭게 지적했고, 팔리어본 번역에서는 우리의 의식이 언제든 왜곡 또는 오염될 수 있음을 직설적으로 짚었다. ‘일상에서의 수행 의지를 결코 간과하지 말라’는 메시지가 읽혀진다.

출가 전 속가에 몸담았던 중학교 시절부터 승가를 동경했다. ‘공부 하나만은 걱정 없이 할 것 같아서’다. 친구들과 만나면 “언젠가 출가할 것”이라고 입버릇처럼 되뇌던 청년은 대학교 중국어·중문과에 입학해 번역에 몰두하며 “출가하면 역경불사에 뛰어 들겠다”고 서원했다. 그의 역경원력을 엿본 지인이 월운 스님에게 청년의 꿈을 전하며 봉선사와 인연이 닿았다. 1996년 월운 스님을 은사로 삭발염의 하고 현진(玄津)이라는 법명을 받았다.

중앙승가대 역경학과를 졸업한 후 2002년 티베트어 유학 차 인도 다람살라로 떠났다.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흘렀을 즈음 새로운 결단을 내렸다.

“부처님 말씀을 올곧게 새겨보려면 원전을 보아야 한다!”

인도 푸나대학으로 발길을 돌렸다. 한국어로 번역된 어학교재는 전무했다. 하여, 세 명의 교수들로부터 영어를 매개로 한 일대일 형식의 집중적인 지도를 받아가며 독파해 갔다. 8년이라는 시간을 쏟아 부은 현진 스님은 끝내 산스크리트어·팔리어 두 산맥을 넘어 2012년 한국 땅을 밟았다.

2013년 봉선사에 범어연구소(cafe.daum.net/sanskritsil)를 설립했다. 산스크리트어·팔리어 보급을 최우선 과제로 삼은 현진 스님은 봉선사 사부대중의 지원에 힘입어 자신이 연구 편찬 한 ‘산스끄리트 문법’, ‘빠알리 문법’, ‘산스끄리트·빠알리 표모음집’ 3000질을 법공양했다. ‘담마빠다’ 원전의 어휘, 문장, 문법을 체계적으로 분석한 ‘담마빠다 어학·강의 교재’ 역시 4000여권을 보급했다.

봉선사 범어연구소는 ‘산스끄리트 문법’, ‘빠알리 문법’, ‘산스끄리트·빠알리 표모음집’ 3000 질을 법공양했다.

인도 언어에 관심도가 낮음을 직시한 현진 스님은 강의만큼은 서울에서 진행했다. 2012년 12월 광진구 ‘아오마 요가원’에서 첫 강의를 시작한 후 중구 불광산사, 송파구 불광사에 이어 2018년 3월부터는 충무로 한문아카데미 강의실을 빌려 강의하고 있다. 산스크리트·팔리 문법은 물론 ‘담마파다’, ‘바가바드기타’, ‘금강경’ 원전도 강독하고 있다. ‘원전 금강경’은 2019년 내놓을 예정이다. 인도의 고전 언어 보급에 매진하는 연유가 궁금했다.

“인도에서 쓰인 경전을 완벽에 가깝게 번역하려면 산스크리트어·팔리어는 기본입니다. 여기에 중국어(한문학) 혹은 서장어(西藏語·티베트어)까지 능통한다면 금상첨화입니다. 물론 교학적 지식은 필수입니다. 근·현대사에서의 한국불교는 한문경전에 치중돼 있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팔리어로 쓰인 니까야가 본격적으로 번역되기 시작한 건 불과 10여년 전입니다.”
원전(原典)이 품고 있는 에너지를 한국불교의 새 동력으로 쓰겠다는 의지의 표출일 터다.

한문본과 원전의 차이가 어느 정도일지가 더욱 더 궁금해 앞서 살핀 ‘담마파다’ 한 구절을 내어 보였다.

현진 스님은 ‘샌다’는 의미의 ‘사마티비자티(samativijjhati)'에 대한 주(主)를 가리켰다. 인도어원학으로 분석하면 ‘sam(더불어)+ati(지나치다)+vijjhati (새다)’라고 한다. 따라서 깊이 있게 분석하면 ‘지나치게 샌다’이다. ‘샌다’와 ‘지나치게 샌다’에 어떤 차이가 있는 것일까?

“콘크리트로 지은 아파트가 아닌 시골 마을에 서 있었던 우리의 초가집을 상상해 보세요. 지붕을 촘촘히 잇는다 해도 비가 내리치면 미량의 빗물이나마 샙니다. 집이 갖춰야 할 기본적인 통기성(通氣性)은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엉성하게 지붕을 이은 초가집은 같은 양의 비가 내림에도 사람이 앉아 있거나 눕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나게 새고 맙니다. 이 정도는 인정할 수 없습니다. 생각이나 의식, 마음 또한 그렇다고 ‘법구경’은 전하고 있는 겁니다. 이 대목을 어떻게 가름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교훈 또한 달라지기도 합니다.”

자신의 형편에 구입할 수 없는 고가의 가방을 본 직후 ‘언젠가는 사겠다’는 생각은 할 수 있다. 비는 샐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바람을 넘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지금 당장 갖겠다”고 작정한다면 이건 ‘비가 지나치게 새는’ 격이다. 의식에 탐욕이 스며드는 순간 강탈도 마다하지 않을 수 있다.

“산스크리트어는 어휘와 문장 속에 다양한 의미를 집약시켜 놓는 다중적 구조의 특색을 강렬하게 보입니다. 행간의 의미를 이중, 삼중으로 짜놓은 셈인데 팔리어도 이에 못지 않습니다.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진 원전(原典)에서 무엇을 움켜 쥘 것인가는 전적으로 해석에 달려 있습니다. ”

한역본과 산스크리트어의 차이도 궁금해졌다. 현진 스님은 ‘불소행찬(佛所行讚)으로 알려진 ‘붓다차리타(Buddha carita)’의 사문유관 한 대목을 즉석에서 번역해 보였다.

‘몸은 바짝 마르고 배는 퉁퉁 붓고/ 숨소리 길게 헐떡거리며/ 팔다리 뒤틀려 바싹 마르고/ 슬프게 울면서 끙끙 앓고 있었다.’(한역본 번역)

‘한껏 부풀어 오른 배에/ 헐떡이는 숨결로 몸을 들썩이며/ 어깨와 팔이 축 쳐져 나약하고 창백한 몸을 한 채/ 다른 이를 부여잡고 엄마(amba)∼라고 애처롭게 말을 내 뱉는 저 사람은 누구인가?’(산스크리트어본 번역)

봉선사 연지를 산책하고 있는 현진 스님.

간략하면서도 핵심을 찔러주는 한역본도 좋지만 리얼리티가 살아 있는 산스크리트어본에 좀 더 끌리지 않을 수 없다. 인간이 태어나면서 겪어야 하는 고통을 직접 마주하려는 2500년의 전의 부처님을 바로 볼 수 있게 하지 않는가! 그렇다 해도 한문이 갖고 있는 장점을 놓쳐서는 안 된다고 했다.

“한문은 간단명료하면서도 심오한 특성을 갖고 있습니다. 견(見)은 ‘그냥 보다’입니다. 그러나 ‘관(觀)’은 큰 눈을 가진 수리부엉이가 천적을 응시하며 바라보는 눈매입니다. 따라서 수행 의미의 관조(觀照)란, ‘편안히 앉아 보는 것’이 아니라 ‘내 목숨을 걸고 지켜보는’ 겁니다. 지관(止觀)의 ‘관’ 또한 같은 맥락입니다. 따라서 한문에 능통한 사람이 산스크리트어와 팔리어로 쓰인 경전을 탐독한다면 그로 인해 얻을 수 있는 시너지 효과는 실로 엄청나다고 확신합니다. 일례로 무상, 무아, 고를 풀어내는데 있어서도 고답적 설명에 그치지 않고 자신만의 독특한 아이디어를 발현해 다양하면서도 심오하게 풀어 낼 수 있습니다.”

역경 원력을 세운 불자가 아니더라도 불교학에 포커스를 맞춘 사부대중이 귀담아 들어야 할 대목이다. 한 가지 더 궁금했다. 산스크리트어 전문가인 만큼 경전 번역에 매진했다면 몇 권의 역저를 남겼을 터인데 2017년 내놓은 ‘담마빠다’가 전부다.

“번역은 삼세를 관통해야 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우선 2500년 전의 부처님 뜻과 그 말씀을 언어로 기록한 사람의 마음을 새겨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오늘을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이해될지를 고뇌해야 합니다. 나아가 100년, 1000년 후의 사람들이 번역가의 뜻을 어떻게 이해할지도 간파해야 합니다. 부족하나마 긴 시간을 두며 최선을 다하려 합니다.”

‘담마빠다’를 4년 동안 강의한 후인 2017년에야 정식 번역본 ‘담마빠다(조계종출판사)’를 내놓은 뜻이 여기 있었다. 강의하는 내내 자신의 공부 또한 더 깊어지고 있을 터다. 명확하면서도 풍미 넘치는 원전이 현진 스님의 손을 거쳐 나오기를 희망한다. 무엇보다 봉선사 범어연구소를 통해 수많은 산스크리트·팔리어 인재들이 육성되기를 기대한다. 아울러 현진 스님이 마음 놓고 강의할 수 있는 공간이 하루빨리 확보되기를 바라는 마음 크다.

채문기 상임논설위원 penshoot@beopbo.com

 

인도 북방의 산스끄리트 판본이 한문본으로 옮겨진 ‘법구경’이 아닌, 빠알리어 판본에서 바로 옮겨진 ‘담마빠다’에는 한문본 ‘법구경’에서 느끼지 못하는 인도 문화의 생동감을 실감할 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우리가 굳이 남방 경전을 새삼스레 끌어 와 읽어 보려는 까닭이다.

- ‘담마빠다’(조계종 출판사)·역자 현진 스님의 머리글에서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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