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모르는 사람 중에는 동시가 어른 독자의 시보다 쉽게 쓸 수 있을 것으로 생각는 이가 있다. 쉬운 낱말로 쉽게 쓴 것이니 그러려니 하는 추측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일반 시인들이 이런 고민을 털어놓는다.
“손주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으니 이놈을 독자로 하는 시를 썼으면 하는데 당최 그게 안 되네. 어떻게 하면 동시를 쓰지?”
이 말만 들어봐도 동시가 쉽지 않다는 걸 알게 된다. 동시는 첫째, 표현이 투명해야 한다. 내용이 훤하게 들여다보여야 되는 것이다. 그것이 어렵다. 그러한 동시 중에서도 더 어려운 시가 유아동시(幼兒童詩)다. 줄여서 ‘유아시’라 한다. ‘시를 어렵게 쓰기는 쉽지만 쉽게 쓰기는 어렵다’는 말은 유아시를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유아시의 역사는 오래지 않다. 유치원 교육이 보편화되면서 유치원생 연령에 맞는 문학장르가 생겨났다. 동시에서 장르를 나눈 것이 유아동시요 유아시다.
유아시 명작 한 편을 감상해보자.
아가가
밥 한 숟갈 먹고
곰 인형 먹여주고
또 한 숟갈 먹고
오리 인형 먹여주고
또 한 숟갈 먹고
여우 인형 먹여주고
밥공기가 비었을 땐
식탁 위 여기저기
하얀 밥풀꽃
인형들 입에도
한 개 두 개
밥풀꽃
-박예자, 유아동시집 ‘오줌 싸서 미안해요, 할머니’에서
아이가 태어나서 두 돌 지나 세 살쯤이면 밥을 제 손으로 먹겠다며 숟가락을 쥐고 나선다. 그러나 동작이 서툴러 입에 들어 간 것이 적다.
볼에, 옷에 밥풀이 붙고, 식탁에도 수두룩 흘려 놓는다. 밥풀을 수두룩 붙인 아기를 가리켜 옛부터 우리는 ‘밥풀나무’라 했다. 그러나 붙은 밥풀, 흩어 놓은 밥풀을 ‘하얀 밥풀꽃’으로 표현한 것은 시인이 만든 시어다. 밥풀나무에 ‘밥풀꽃’이라니 표현이 제격이다.
그런데 아기일수록 세상만물을 자기와 같은 등식(等式)에 놓으려는 심리가 있다. 내가 배고프니 갖고 놀던 인형도 나처럼 배고플 거라고 생각는 것이다. 그런 생각에서 아기는 동물 인형에게 밥을 먹여주기로 한다.
나 한 숟갈 먹고 “곰아, 너도 맘마 먹어”하고 곰 인형에게 먹여준다. 또 한 숟갈 먹고 “오리야, 너도” 하며 오리인형에게 먹여준다. “여우야, 너도 한 숟갈”하며 여우 인형에게 먹여주고 나니 밥공기가 비었다.
그런데 식탁 위 여기저기에 하얀 밥풀꽃이다. 아가 볼에도, 밥풀꽃이요, 곰·오리·여우 입에도 하얀 밥풀꽃이 피었다. 아가의 숟가락질이 손에 익지 않아서 재미나는 꽃예술이 이루어진 것.
시의 작자 박예자(朴禮子) 시인은 순천출신으로 우리문단에서 유아시의 선주자로 알려져 있다. 동시시인 사이에서도 쓰기에 어렵다는 유아시만 써서 이 분야의 선주자로 존경을 받는다.
박 시인은 손자·손녀 여럿을 키우면서 그들의 지껄임과 장난기와 행동 및 생각을 철저히 관찰한 것이 유아시 창작의 비법이었다고 한다. 박 시인에 의하면 아기는 걸음걸이와 손짓·발짓이 모두 예술이요 시란다.
이러한 철학을 내용으로 한 ‘아가는 시예요’라는 유아시집을 낸 일이 있다. 책으로는 예문에 소개된 ‘오줌 싸서 미안해요, 할머니’ 등 여덟 권의 유아시집이 있고, 또 한 권의 유아동시집이 근간되리라는 소식이다. 이주홍문학상, 자유문학상 등을 수상하였다.
신현득 아동문학가·시인 shinhd7028@hanmail.net
[1445호 / 2018년 6월 27일자 / 법보신문 ‘세상을 바꾸는 불교의 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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